제5화. 보르로 가는 날

by 이운수

2015. 7. 15. (수), 남수단 시각 22:10, 날씨: 비(한국 시각 7.16. 04:10)


주바 트랜짓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하지만 잠은 거의 이루지 못했다.

침대 매트리스는 아동용처럼 작고, 지저분했다.

살갗에 닿는 것이 영 찝찝해서 전투복과 전투화를 그대로 입은 채 그냥 누웠다.

덥고, 이름 모를 벌레도 많고,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밤새 뒤척이기만 했다. 결국 새벽 4시에 이불을 걷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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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두 인도 군인들이었다.

'이들도 나처럼 잠 못 이루고 나온 걸까?'


가볍게 손은 흔들며 "Hi" 인사를 건네니 반갑게 받아준다. 혹시나 말을 걸까 봐 황급히 조금 떨어진 평상 의자에 앉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닌데...'

군 생활 9년 동안 야전에서 텐트 치고 자는 건 익숙했는데, 왜 이곳에서는 잠 하나 제대로 못 자는 걸까.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평상에 앉아, 멍하니 날을 새웠다.




아침이 밝고, 전투식량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당초 계획은 오늘도 주바에서 하루 더 묵어야 했지만, 헬기 한 대가 추가 협조되어 오늘 보르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헬기장으로 이동했다.

주바에서 보르까지는 약 200㎞, 한국이면 차량 이동도 가능한 거리지만, 이곳에서는 불가능하다. 주바 외 지역은 대부분 비포장 흙길인데, 이 흙이 한국과는 달라서 비만 오면 갯벌처럼 푹푹 빠져 버린다. 도로는 정비조차 되어 있지 않아 차량으로는 이동이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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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가 도착했다. 외관이 많이 낡아 보였다.(2차 대전 때 쓰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흔히 상상하는 헬리콥터처럼 수직 이륙 하지 않고, 활주로를 달리며 비행기처럼 이륙하는 방식이었다. 불안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아프리카에 온 이후로 겁이 많아진 나를 다독이며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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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과는 다르게 성능은 괜찮았다. 이륙 후 금방 구름 위로 올라갔고, 마치 비행기처럼 높게 날아갔다.(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반군이나 약탈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고공비행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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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헬기로 구름보다 위로 비행을 하니 무서웠지만, 그래도 40분 만에 보르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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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주둔지는 가까웠고, 드디어 한국을 떠난 지 3일 만에 최종 주둔지에 도착했다.

1 제대 인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간 쌓인 이야기와 웃음이 오갔다.


보르 기지는 5진 파병에 들어서면서 꽤 잘 갖춰져 있었다. 생활관엔 TV도 있었고(아리랑 TV, YTN만 나왔지만) 냉장고,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었다. 샤워장과 화장실도 깨끗했고, 공병대가 만든 정수 시설 덕분에 물도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이제야 비로소 "여기가 내가 머물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 좋은 이곳에서, 이제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해 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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