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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노화

생리대 대신 약 주머니

by 와닿다

완경을 앞둔 몇 해,

줄어든 생리 횟수로 수영도 매일 즐기고

흰 바지도 두려움 없이 입을 수 있어 행복했다.

물론 밤에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거나 심장이

두근거려 좋아하던 커피 원두를 디카페인으로

바꾸는 변화도 겪었지만, 완경을 잘 맞이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오만이었다.


한쪽 눈 녹내장에서 양 눈 녹내장으로,

잦은 이석증 재발, 고지혈증까지 지병이 추가

되면서, 먹는 약이 늘어나고 있다. 혈압은 정상 범위이지만, 낮은 편이라 저혈압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늘어난 여유 시간을

운동으로 채운 몇 해, 지나고 보니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건강하니 생업 은퇴 시기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오만이었다.


겨울 아침 공기처럼 쨍하디 쨍한 컨디션인

날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어지러워 근무 중 아찔한 상황이

올까 늘 두려워해야 하고, 손발이 차가워

지고 머리와 목, 얼굴이 뜨거워져 찜질기와

얼음팩을 늘 준비해야 한다.


노화가 무섭게 들이닥치고 있다.


40대 초반에 녹내장, 중반에 시력 저하와

노안, 자궁 출혈로 노화가 서서히 시작됐건만,

50대 초반에 컨디션 저하의 아찔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챙기던 생리대 주머니 대신,

이제 여러 사연이 담긴 약 주머니를 챙긴다.

내 가방이 약 주머니에 공간을 할애하 듯,

내 마음도 노화에 길들여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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