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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 the 하트히터 Sep 20. 2020

나 자신과 만나라

feat. MBTI에 대한 고찰

당신은 MBTI를 믿는가?


직업상 많은 사람과 대면하다 보니 성격 유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의 유형을 분석하고 나아가 고객과 팀원의 성격 유형을 분석하여 더 좋은 관계와 성과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경험해 오면서 느낀 점은 성격 유형이 오히려 낙인효과와 합리화의 도구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OOO 유형이라 안돼.", "OOO 유형은 역시 나랑 안 맞아.", 혹은 "나는 OOO 유형이라 어쩔 수 없어."와 같은 말을 빈번히 듣게 되었던 것이다.

몇 개월 전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ENFP(재기 발랄한 활동가) 유형이 나왔다. 성격 유형 검사 같은 것을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선호하는' 내용들이 많아서인지 내심 기분은 좋았다. 그러다가 요즘에 다시 검사해보니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유형이 나왔다. 물론 정식 기관에서 제공하는 검사는 아니라 신빙성 문제는 있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검사 횟수를 반복할수록 결과도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연 사람은 정해진 자기만의 성격 유형이란 것이 있고 그에 맞춰 일을 하고 살아가며 평가받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MBTI의 탄생과 이상한 역사


* 뉴욕타임스 평론가 선정 2018년 최고의 책
* 이코노미스트 선정 2018년 최고의 책
* 스펙터 선정 2018년 최고의 책
* 멘탈 플로스 선정 2018년 최고의 책


공신력 있는 매체나 기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엄선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첫 번째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배움으로써 나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내가 과거에 접했던 지식과 정보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지식과 정보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편향과 고정관념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두 번째는 좋은 책을 찾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이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준다는 것은 최고의 혜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MBTI가 과학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 MBTI의 근거가 되는 이론이 임상 심리학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 글로벌 기업이 산업 심리학과 자기 관리를 결합한 뒷골목에서 MBTI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 꽤나 짭짤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바다.

- <성격을 팝니다>, 15p


'메르베 엄레'<성격을 팝니다>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격 유형 검사인 MBTI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부분은 저자가 MBTI에 대해 연구를 하는 동안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고 관련 기관들은 무언가를 숨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더 자세한 연구를 위해 직접 MBTI 교육 과정에 참가했다. 게다가 MBTI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과 이 성격 유형 검사를 만든 캐서린과 이사벨 또한 아마추어에 불과했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그들이 가진 한계를 알게 되면서 MBTI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






MBTI의 이면


성격 유형 검사에는 사람들의 심리를 지배해 자본주의 속성을 영속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사벨이 말했듯이 '그들 적성에 맞는 업무를 하도록' 배치해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부추기는 도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성격 유형 검사에는 인종, 성별, 계급, 온전한 사회상과 관련해 오만불손하고 위험한 편견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 <성격을 팝니다>, 22p


성격 유형 검사는 고용주들에게 유용한 인력 관리 도구였다. 직원을 좌천하거나 해고할 근거를 제공해주었고 혹시 모를 반감을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배층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정해진 틀에 맞추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만들어 놓은 체제의 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성격 유형 검사들은 충성도 검사, 정확히는 충성 가능성에 대한 검사다. 성격 유형 검사들은 조직이 중시하는 가치들로 가득 차 있고, 그 결과 마련된 일련의 잣대에서는 체제 순응적이고 상상력이 부족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높이 평가받는다. 이로써 남 다른 능력을 지닌 개인이 희생당하게 되는데 이들이 없이는 어떤 사회나 조직도 번창하지 못한다.


성격 검사를 통해 전 인격을 갖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았다고 믿게 만들지만 사실은 각자의 개성을 뭉게 버리고 사전에 결정된 몇몇 유형으로 인간의 행동을 수평화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해 버린다.

- <성격을 팝니다>, 15p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떠한 패턴이나 법칙, 그리고 딱 떨어지는 분류법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MBTI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쉽게 규정하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이다. MBTI가 과학적이든 아니든 언제나 검사 대상들로 하여금 신속하게 자신에 대해 파악하는 기쁨을 느끼도록 해주며, 이는 응시자의 연령이나 성별, 교욱 수준, 직업, 정치의식 수준과도 상관없다. 성격 유형 검사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16개의 성격 유형 안에서 자신의 성격을 해석하고 전개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각각의 다양성을 16개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나 자신과 만나라


우리 인간은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없을뿐더러 16가지 유형으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MBTI 성격 검사를 두 번 이상 받은 사람들 가운데 50퍼센트 이상이, 그 간격이 몇 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처음과 다른 유형으로 판정받았다. 이렇듯 MBTI 검사 및 재검사의 타당성은 통계적 유의성을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것에는 본인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본인의 기준이 없다면 결국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가게 된다. 성격 유형 검사가 신뢰가 있든 없든 그것은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결국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은 정해진 기준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창조'하는 것이다.

끝으로 MBTI를 불신하는 사람, 굳게 믿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이만 마친다.







* <성격을 팝니다>, 메르베 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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