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볼거리를 찾아 넷플릭스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제목도 훑어보고, 예고편도 몇 개 보고, 후기까지 찾아서 읽어보지만, 영화 한 편을 딱 골라서 진득하게 보기가 쉽지 않다. 순식간에 30분이 흘렀으나 아직도 탐색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염없이 스크롤만 내리다가 결국 TV를 끈다. 이제 와서 뭔가를 보기엔 너무 피곤했기에 더 늦기 전에 이만 잠자리에 든다.
- <전념>, 18p
우리는 무한 탐색 모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보 사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주위에는 온통 다양한 정보들이 널려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옷과 가방을 살 때도, 심지어는 이성을 선택할 때도 그저 탐색만 하면 된다. 탐색의 가장 큰 장점은 새로움이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새로운 정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는 언제든 부담 없이 클릭 한 번으로 새로운 선택지를 무한히 탐색할 수 있다. 문제는 언젠가는 이 모든 달콤함이 쓴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그야말로 '선택의 역설'인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자니 다른 것이 마음에 걸린다. 후회 없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데 결국 뭐가 최선인지도 몰라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결정 마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무한 탐색 모드는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진짜 끝내준다.
- <전념>, 52p
전념의 힘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전념하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이나 죽음을 외면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들과 함께 있어도 좀 더 편안할 뿐이다. 자신의 시간을 헌신하고 신성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해독제를 찾은 것이다.
- <전념>, 41p
무한 탐색 모드에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바로 무한 탐색 모드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한 가지에 오랫동안 몰두할 때만 겪을 수 있는 '더 깊이 있는 경험'을 놓친다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그래서 무한 탐색 모드가 주는 '무한'이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 '유한'한 내 삶을 좀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이게 사실 쉽지가 않다. 호기심이 많은 덕에 넓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루함도 잘 이겨내는 성격이라 무언가에 금세 싫증을 느끼는 일도 드물지만, 나 역시도 무한 탐색 모드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깊이와 결과는 비례해서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대부분은 기하급수적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내가 뿌린 씨앗의 결실을 마침내 거둘 수 있는 변곡점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힘들게 노력하며 기다려야 한다.
- <전념>, 207p
우리는 왜 무언가에 전념하는 것을 어려워할까? 전념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지루하고 힘들다. 게다가 그보다 더 한 것은 긴 시간 뒤에 맞닥뜨린 결과에 대한 후회의 두려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가지에만 깊이 몰두하기보다는 회피의 방어기제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무한 탐색만(!!!)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깊이 전념한 사람들은 자신이 새로움과 깊이를 맞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깊이가 곧 궁극적인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매일, 매년 꾸준하게 시간과 노력을 쌓아 스스로 극적인 사건 그 자체가 된다.
- <전념>, 156p
욜로보다 올바로!
앞서 나는 'dedicated(헌신하다)'라는 단어에 '무언가를 신성하게 하다'와 '오랫동안 무언가에 전념하다'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헌신함으로써 우리는 몇몇 특별한 순간을 신성하게 한다. 그리고 그 헌신을 유지함으로써 수없이 많은 평범한 순간까지도 신성하게 할 수 있다.
- <전념>, 310p
몇 년 전에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가 한참 유행했었다. 인생은 유한하니, 한 번뿐인 인생 즐기고 소비하며 살자라는 것이다.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세계 여행 가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에 하나다. 하지만 욜로하다 골로 간 사례들이 속속들이 나오면서 욜로붐은 사그라들었다. 이것은 욜로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소수 개인의 사례를 극단적으로 일반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잘못된 욜로의 의미와 대중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정보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한 번이다. 그래서 도박이 아니라 전념을 해야 한다. 관계도, 일도, 우리의 삶도 전념을 통해서 깊이 누릴 수 있다. 무한한 것은 탐색이 아니라 각자 삶의 가능성이 되어야 한다. 넓게 살되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 욜로하지 말고 '올바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무비트레일러(예고편)가 아닌, 한 편의 진득한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각자 인생이라는 영화에 헌신하는 전념의 영웅이 되기를 응원하며 이만 마친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