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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ug 28. 2021

'마음'에 서툴고 서툰 나

 나쓰메 소세키 '마음'


삶은 소설과 달리 다시 쓸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이름은 루시 바틴>은 그럼에도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알려준다. 모든 생이 감동을 준다는 루시 바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끝끝내 그토록 서툰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툴고 서툴렀던 당신들. 경이로운 생의 주인인 당신들의 이름을 나는 오늘 나직이 불러본다.

다정한 매일매일 p122


다시 쓰고 싶은 한 페이지가 있다. 단 한 장만으로도 글 전체가 진정성을 잃고 '거짓'이라고 손가락질받을 것만 같은 삶의 한 페이지. 공개할 수 없는 수치의 장면을 혹시 누가 보지 않을까 불안에 휩싸일 때면 많은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 페이지를 찢어 흔적 없이 태워버리고 싶다. 이토록 후회하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분명 다른 선택을 했으리라. 그러나 페이지는 찢을 수도, 지울 수도 없이 나만 볼 수 있는 마음에 주홍글씨로 남았다.


믿었던 숙부로부터 재산을 빼앗기는 배신을 당한 후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선생이 있다. 자신은 절대 그런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러나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를 친구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열등감과 질투심에 충동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친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그 후 친구는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한다. 유서에는 선생에 대한 원한도 그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누구도 그 자살에 선생이 관여되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예정대로 친구가 좋아했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 속죄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선생은 더 이상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외로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타인뿐만 아니라 이제 자신도 믿을 수 없어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죄의식을 품고 평생을 살아내야 하는 벌을 스스로에게 내린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마음'이란 소설에서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 이 자의식 강한 선생은 결국 메이지 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책을 읽으며 나는 한 번의 거짓말일 뿐이고 친구의 죽음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선생의 이기심을 옹호했다. 오히려 친구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짊어지게 된 선생을 불쌍히 여겼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나 자신은 멋진 인간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그 믿음이 깨지면 자유를 잃고 외로워진다'는 선생의 말 또한 너무나 절실히 공감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쉽게 용서하는 것보다 처절히 외로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과오에 너그럽지 못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 천착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고민하는 인간은 인간다울 순 있으나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사람은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는가. 자신에게 너그러운 반성에 과연 진실과 구원이 있는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만을 되풀이하게 될 뿐인 소설이다. 유난히 이런 소설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는 '나'의 한 페이지를 들쳐본다. 인간이니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가 스스로 할 말을 아니지 하며 치킬박사와 하이드 사이를 오간다.


선생이 말하듯 '처음부터 악인으로 정해진 사람이 있는 게 아니며 여차하면 돌연 악인이 되는 게 인간'이라면 조심스럽게 적어가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평생 살아야 하지 않을까. 외로운 인간으로 살아갈 각오를 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위선은 아닐까. 지키지 못할 입바른 소리가 아닐까.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그런 외로운 마음들로 힘들어지는 날,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고 "아름다운 변신"을 거듭하는 것이 삶이라는 문장에서 또 염치없이 위로받는다. 가로등 없는 골목에서 길을 찾듯 조심조심 생을 더듬으며 나아가야 할 것만 같다. 여백의 페이지가 남아 있는 한 계속 써 나갈 수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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