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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an 25. 2021

생명의 무게


내 하루의 공식적인 마무리는 아이의 동화책을 세 권 읽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세 권을 다 읽어도 잠을 재우지 못하면 “나 어떻게 자지?” 하며 보채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자장가 몇 곡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 수고로움을 피하고 싶기에 마지막 권은 불을 거의 끄고 눈을 감게 한 후 듣게 하면 대체로 다 읽어 갈 때 즈음이면 스르르 잠이 들어 있곤 하지요. 이제 막 8세가 된 아이 수준의 동화는 간혹 ‘오~’하고 감탄하게 되는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읽어주다 내가 잠이 들기도 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요.     


이번에 빌린 책은 철학 동화류의 전집이었습니다. ‘어머, 제법 재미가 있는데’ 하고 내가 생각듯 새 책에 대한 딸의 반응 평소와 달랐습니다.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자기 생각도 제법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하고 내 의견을 물어보고 “어머 좋은 생각이네.” 하고 칭찬까지 해 줄 때는 우리가 진정 책 친구가 되는 것인가 싶어 감격스러웠어요. 나도 딸의 잠자리 독서 시간이 지루한 숙제의 시간이 아니라 내심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밤 그 기대에 두 배로 화답한 책을 만났습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아귀에게 쫓긴 겁에 질린 산새가 한 마리 날아듭니다. 꼭 살려 주겠다 약속한 석가모니는 새를 품에 감춥니다. 조금 뒤 아귀가 와서 산새를 내놓으라 합니다.

     

“나는 산새에게 반드시 구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니 절대 이 불쌍한 산새를 네게 줄 수 없다.”   

   

산새를 대신할 먹이를 요구하는 아귀에게 석가모니는 산새의 무게만큼 내 살을 가져 가거라고 말합니다.    

  

“산새를 저울의 한쪽에 올려놓고 네 살을 베어 다른 한쪽에 올려놓아라. 저울 양쪽의 무게가 똑같아지면 산새를 살려주겠다.”     


석가모니가 자신의 왼쪽 넓적다리 살을 베어 올려놓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척 봐도 넓적다리 살이 산새보다 무거워 보였으나 저울은 산새 쪽으로 기울어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른쪽 넓적다리 살도 도려내 저울 위에 올렸지만 저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살을 요구하는 아귀 앞에서 석가모니는 두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눈을 번쩍 뜹니다. 그리고 비틀비틀 일어나 저울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자 꼼짝 않던 저울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놀랍게도 저울 양쪽의 높이가 똑같아졌습니다.


“저울 양쪽의 높이가 비로소 똑같아진 것은 나와 산새의 생명의 무게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산새 대신 나 자신을 내놓겠다.”      


아,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벌써 수년 전 일이지만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마음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걸어서 출근하는 어느 겨울 오후였습니다. 초등학교 앞 4차선 도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차들이 많지는 않지만 신호가 바뀌지 않으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한 대씩 지나다니는 길이었습니다. 건너편 도로에 살아있는 검은 물체가 중앙선 쪽을 향해 총총 왔다가는 차가 지나갈라치면 뒤로 총총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까마귀 같이 제법 몸집이 큰 새였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1차선 중간에 떨어진 먹이를 주으려는 것이리라 짐작했지요.   

   

새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새 공포증이 있는 저는 어서 빨리 지나가야겠단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차들의 경적과 그 검은 새의 반복된 행동이 이상하게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도대체 저렇게 목숨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먹이를 탐한단 말인가. 저는 어느새 그 미물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만큼 바로 맞은편을 지날 때 제 발걸음은 그만 얼어붙고 시선은 하늘을 향했습니다. 먹이인 줄 알았던 그 물체의 정체는 또 다른 검은 새였습니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자식인지 모를 그 새의 주검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왔다 갔다 하던 그 새가 하루 종일 떠올랐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내가 본 것이 신기루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새들의 흔적은 깜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엄마, 그래서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거구나.”라는 딸아이의 엉뚱한 해석에 토를 달지 않습니다. ‘생명의 무게’가 무슨 뜻이야 라고 묻지 않는 게 내심 고맙습니다. 조금 더 크면 해 줄 이야기를 마음에 챙겨둡니다. “모기 가족이 있었데. 매일 아빠가 일하러 갈 때 가족들끼리 이렇게 인사했다더구나. 오늘도 인간들을 피해서 저녁에 무사히 만나자.”라고.     


다행히도 자장가 두 곡으로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요? 머리를 쓰다듬고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옵니다. 내 아이와 옆집 아이의 무게를 가늠해봅니다. 이 저울이 수평을 이룰 수 있을지, 큰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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