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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an 13. 2021

몸 있는데 마음 있게 하라

수처작주 입처개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중국 당나라 임제선사의 법어이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란 뜻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불교대학 3학년, 몸에 익어 입 밖으로 술술 나오는 말이다.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면 꼭 기억해야 할 여덟 글자라고 철학자 강신주도 자주 말했다. 처음엔 이 문구가 다소 어려워 ‘몸 있는데 마음 있게 하라.’는 글귀로 이 가르침을 마음에 익혔다.      


나는 자타공인 멀티태스킹의 대가다. 밥 먹으며 채점도 척척 하고 걸어가며 인터넷 강의도 잘 듣는다. TV 보며 수학 문제 풀기, 화장실에서 책 읽기 등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으면 시간이 무척 아깝게 느껴진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아서 1분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오십견으로 팔이 움직이지 않아 입원을 했을 때조차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아쉬워 일어나 앉아 책을 읽고 불 꺼진 다인실에서 밤늦도록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렇기에  ‘몸도 마음도 편히 쉬어’란 말을 끝인사 말로 자주 씀에도 나는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이다.  몸도 잘 쉬게 두지 않지만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시험 감독 같이 대놓고 할 일을 하기엔 눈치가 보이는 그런 시간도 유용하게 쓰는 법을 안다. 생각하길 즐기는 내게 그런 여유시간은 남몰래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려 정리하는 깨알같이 고소한 순간들이다. 많은 일을 착착 해내고 좋아하는 일도 챙겨서 하는 내가 열심히 잘 사는 것 같았다.


마음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건 오래지 않다. 우연히 책을 읽다 ‘念’이라는 한자어를 보게 되었다.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念’ 도 어려운데 ‘無念’이 되어야 한다니, 무슨 선방의 수수께끼 같았다. 타인에게 꺼리는 말을 한마디 했거나 들은 날에는 잠들기 전까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생각에 몰두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사람은 무슨 뜻으로 내게 그 말을 했을까?’ 하며 소처럼 되새김질했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으면 ‘아버지가 술 한 잔 하고 오시다 넘어지진 않을까, 남편이 졸음운전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하며 스스로 불안을 만들어 정체모를 두려움에 얼굴이 검어지곤 했다. 몸만 지금 여기 있을 뿐 마음은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대비하느라 늘 분주했던 것이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나는 무슨 일이든 대충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많은 것을 하고 싶다 보니 한 분야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할 때면 음악에 따라가느라 그릇에 오물을 남기기 다반사였고, 수학 문제는 더디 풀리고 TV 내용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강의 듣다 메모하고 싶은 내용은 때를 놓치고 흘러가 버렸고 매일 걷는 길목에 새로 생긴 가게들도 내 눈에 만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의 마무리를 위해 ‘몸 있는 곳에 마음 있게 하라.’를 삼일 동안 실천해 보았다. 오래된 일상의 패턴을 바꿀 수 있을지 실험을 해 보고 싶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수업할 때 아이들만 보고, 혜령이와 놀 때 딴짓하지 않으며, 커피 마실 때 커피만 마시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도 나에게만 힘든 그 일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음악에만 식사에만 놀이에만 집중하기. 몸 하나에 마음 하나. 과연 내가 단 삼일만이라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어머’ 하는 순간들은 제법 많았다. 혼자 말없이 밥 먹을 때, 밥양이 많게 느껴졌고 시간이 느리게 갔다. 두부구이가 이렇게까지 구수했나? 놀랐으며 화장실 사용 시간이 줄었다. 내가 설거지 시간을 제일 아깝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고 핸드폰은 애인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터로 가는 버스 안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다른 세계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무념무상은 하고 싶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몸도 마음도 편히 쉬어.

오늘은 진심으로 이 말을 내게도 전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이 앞으로도 잘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욱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을 자진해서 즐겨보는 건 아직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삼일의 경험이 끝나는 지금, 이 홀가분함이야말로 내가 삶이 주인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단 것을 스스로 안다.

이 순간만은 마음을 지금으로 가져와 가만히 내려두고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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