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희 Feb 09. 2021

오늘, 갓 버무린 김치입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나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브런치에 입문했다. 그동안 블로그에 써 오던 글들은 일기였다.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쓰다 보니 편안하고 솔직하긴 한데 정말 딱 일기 수준을 면하기 어려운 글들이다. 글의 수준을 떠나 정리된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서 하기에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 말하는 일기가 아닌 남에게 말 걸고 싶은 수필을 쓴다는 건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서부터 블로그에 일기가 사라졌다. 벅찬 느낌을 글로 남겨주고 싶은 순간이 생겼을 때, 이것을 한 편의 글로 엮기 위해서는  잠깐 기다림의 순간이 필요했다, 나는 건축가 형 타입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처음과 중간, 끝을 나누고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소재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야 마음이 놓였고 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도 엉뚱한 곳으로 가기 일쑤였다. 번뜩이는 감성으로 폭풍처럼 휘리릭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을 나름 즐기기도 하지만 걱정이 많고 여전히 소심하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결코 쪽팔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여기저기 비슷하게, 쓴다는 것은 양다리 걸치기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한쪽 다리 감당하는 것도 내게는 벅찬 일이었고 진실되지 못한 것 같은 묘한 걸림도 있었다. 방금 갓 버무린 김치는 싱싱해서 맛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김치 본유의 발효된 맛을 느끼기엔 아쉽다. 오래 익혀 묵힌 김치는 김치전, 김치찌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지만 김치를 소재로 한  요리이지 김치가 아니다. 적당히 익힌 김치는 식감도 풍미도 만족스럽다. 내 글을 넣을 김치냉장고를 한 대 들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