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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un 18. 2021

잠봉뵈르를 닮은 너에게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펼치며

아침에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어. 얼마 전에 잠봉뵈르란 낯선 이름의 프랑스식 샌드위치를 먹은 적이 있어. '언니, 이게 정말 맛있어요. 쉽고 간단해요.' 하며 지인이 손수 만들어 준 빵이야. 바게트 빵에 버터와 햄을 넣는 아주 간단한 레시피. 단순한 구성임에도 바게트의 딱딱한 식감과 버터의 고소함과 햄의 짠맛이 어우러지니 제법 근사한 맛이 나더라고. 어젯밤 갑자기 며칠 전에 먹은 그 샌드위치가 생각났어. 한 번 먹고 싶으면 먹을 때까지 생각날 녀석. 마침 만들어 넣어 둔 바게트도 있고 구비된 버터도 있고 로켓의 도움을 받아 햄도 예약. 그러고 잠이 들었어. 냉장고에서 꺼낸 바게트의 배를 가른다. 버터를 넉넉히 올린 후 따뜻한 오븐에서 5분간 구워준다. 햄 세 장을 올리고 배를 덮어준다. 짜잔~~ 완성. 진하게 내린 커피에 설탕도 한 스푼. 천천히 씹어 먹을 수밖에 없는 게, 잠봉뵈르의 최고 매력.



소박한 프랑스식 아침 식사. 낯설 것 같지만 친근해. 무한 감동의 맛이라기 보다는 천천히 퍼져가는 만족감. 잠봉뵈르란 이국적 이름. 문득 로코페즈란 닉네임이 떠오른 건 우연은 아닐 거야. 너의 소박한 식사를 좋아하고 너의 소소한 일상을 좋아하고 너의 모래알 같은 작은 행복들을, 나는 좋아하니까. 자신의 방식대로 즐겁게 살아가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그 값을 두 배로 부풀리는 지혜를 가진 너.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줄 아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라. 긍정적 단어를  많이 쓰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제법 큰 힘이 된다. 손에서 빠져나가기 쉬운 '모래알 같은 행복'에 대해 너그럽게 사유하게 되거든. 너의 행운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네가 만드는 행복이다 싶으면 참 존경스럽고.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구입했어. 좋아하는 작가님이 한 분 계셔. 그분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책을 정리하실 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이 있었대. 그렇게 남은 스무 권 정도의 책 목록이 너무나 궁금했어. 며칠 전 그중 한 권이 이 서한집이었다는 걸 알았어. 두근두근 책을 구입하러 서점 앱을 열었어. 책 소개 문구가 마음에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더라. 카뮈가 장 그르니에의 <섬>을 받아 안고 설레어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운 거야.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치고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가서 미친 듯이 읽고 싶다는 일념으로 내 방까지 한달음으로 뛰어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이를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


좋아하는 사람의 책을 사서 한달음으로 뛰어가는 마음, 훗날 그 책을 펼칠 사람을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하는 마음, 조금 알 것 같지 않아? 너의 책이 세상에 나와서 회한 없는 기쁨을 나도 이렇게 표현할 날이 기다려진다.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이 우리의 자양분이 되고 추억이 되어 우리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아. '책만 보는 바보' 나 '서양미술사', '오강남의 도덕경'과 논어 필사본을 볼 때, 카페 귀퉁이에서 '죄와 벌'을 읽고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에 서로의 다름이 절실히 와닿던 순간을 떠올릴 때, 문득문득 내가 부자가 될 것 같아. '채링크로스 84번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등의 책 등을 볼 때, 오늘처럼 책을 펼쳤는데 거장의 수려한 문장이 아니라 일상적 언어로 쓰인 편지 한 통이 소박하게 눈 앞에 펼쳐질 때, 여지없이 펜과 편지지가 간절해진다. 평범한 단어로 오늘 먹은, 너를 닮은 음식에 대해 한 자 한 자 떠들고 싶어 진다. 수업 시간에 편지 쓰다 들켜서 혼이 나던 그 강당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모래알 같은 행복 한 스푼, 오늘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아침이야. 이 편지를 쓰며 내도록 즐거웠어. 나의 이 편지가 모래알 같이 자잘한 너의 행운이길 기대하며. 이만 총총


ps.

1. 찾아본 레시피엔 버터도 녹이지 않고 오븐에 굽지도 않더라.

잠봉뵈르를 만들 때 오늘 만들어진 제과점의 바게트를 구입하면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을 듯.


2. 깜짝 선물을 보낸다.

적립금 모인 것으로 공짜로 구입했어^^

우리 추억의 책이 한 권 더 생길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쁘고 즐거워.


2021년 6월 18일 아침에 너의 친구 승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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