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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r 06. 2022

<만나지 못한 말들>을 읽고

중학교 3학년 때 단짝으로 지내던 K가 조부모의 상을 당해 며칠 쉬고 학교에 나왔다. 힘든 일을 겪고 온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나는 "괜찮아?" 하고 물었다. 그때 K가 "있잖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슬픈지 안 슬픈지 잘 모르겠더라. 엄마를 따라 울어야 할지 그냥 있어도 되는지 조금 난감했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K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아이였고 소심했고 고지식할 정도로 도덕적이었다. 그런 나에게 마음의 일들을 털어놓는 그녀는 위대한 작가 같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건 내가 느낀 감정이야,라고 표현하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검은돈을 세탁하듯 주인공들을 방패막이 삼아 내 감정들을 세탁해서 드러내 놓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었다. 소설 뒤에 숨지 않고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작가들에게 매료되는 것은 그들의 솔직함이 내가 가지지 못한 강력한 무기로서 나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채기가 아닌 움푹 팬 상처를 드러내며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존경심을 갖는다.


'글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구나' 싶은, 삶을 글로 승화해 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글은 꾸미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속수무책 부러워지지만 나는 갖지 못한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알아보면 먼저 말을 걸 수밖에 없다. '만나지 못한 말들'의 저자 '이림' 작가도 그렇게 나를 끌어당겼다. 내가 읽은 그녀의 첫 글을 기억한다. 효녀 노릇을 하기 위해 마음먹고 아버지와 데이트했던 날의 기억을 떠올려 쓴 글이었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밥도 먹고 근사한 옷 한 벌도 해드리고 싶었던 그녀. 계획한 대로 다 해주고 싶은 딸의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는 피곤해하시고 '효도 아닌 효도 데이'가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옷 한 벌 못해주고 아버지를 보내고 만 딸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흘렀다.


앞의 글들을 읽어 볼 시간적 여유도 없이 출간 계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책이 나오면 천천히 처음부터 읽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드디어 책을 통해 한 여자를 만났다. 자의식이 대단해서 쉽게 남에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여자.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 글들을 다 써낼 수 있었을까. 이렇게나 솔직하게 마음속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만나지 못한 말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생의 아픔과 후회와 그럼에도 끝내 놓지 못하는 책임감과 사랑, 끊임없이 시련 앞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운명 앞에서 잘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보여주는 비망록이었다.


그녀는 미루어두었다 후회하게 된 일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치아가 안 좋으셨던 아버지가 떠올라 당근과 감자, 고기를 되도록 작게 자르려 애쓰다가 자꾸 칼질을 멈춰야만 했다. 눈물이 차올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걸 왜 이제 와서 한다고 지랄이냐.... 이 게을러터진 것아.... 스스로를 욕하는 말들이 깊은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다음'이 있다고, '내일'이 있다고 당연하게 믿은 날들이었다. 설마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라고 막연히 믿고 그렇게 미루다가 결국 못 건넨 것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만 내일로 넘어와 있었다. 못 드린 꽃도 카레도 다 어제에 남고, 받을 사람들의 자리는 비어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잘했더라도 가족의 죽음은 돌아보면 회한이 남는 일이 리라. 가족이라면 마음과 다르게 말이나 행동이 불쑥 나갔다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자신이 한 것보다 박하게 자신을 평가하는 것을 자주 본다. 이 글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지만 그중에서 아버지가 딸이 만든 신문을 10년 넘게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에서는 조금 더 울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따님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분명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다고 할 만큼 했으니 후회 말라고 하시지 않을까. 이런 숨겨진 사랑을 그녀도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독자로서 생각해 보았다.


글쓰기의 최고 수혜자들은 글에 자신의 삶을 담고 반성을 담고 소망을 담고 후회를 담고 시행착오를 담고 희망을 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책 읽기의 최고 수혜자들은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해주는 그들을 말을 흘려듣지 않고 내면에 새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여전히 더 잘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글들을 나는 읽어가고 있다. 글 속에서 그녀가 힘들어하면 나도 아슬아슬 줄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왠지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함부로 하지 않으리란 확신도 함께 들기에 무사히 줄 타기를 마치고 함께 내려온다. 한 권의 책으로 그녀가 누군지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말해도 될 것 같다. 솔직한 그녀의 글도 단단한 삶의 태도도 본받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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