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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r 28. 2022

잔소리가 맞겠지요?

To. 현아


"현아야, 무슨 일 있나?"

무척 지친 표정이라 물었지만 괜찮다 했었잖아. 하루 종일 공부하고 와서 피곤한가 보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왔어. 과자 좀 사서 넣어주고 집으로 올라가려고 다시 들렀을 때 할머니랑 이야기 나누다 운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새내기 되고 얼마 안 되어 중간고사 기간도 맞았고 아르바이트는 두 달이 다 되어가도 능숙해지지 않아서 자꾸 지적을 받게 되는 게 속상하다고 할머니에게 털어놓고 있었잖아. 공부는 해도 해도 줄지 않고 아르바이트 갈 생각만 하면 우울해지고. 자꾸 지적하는 그 파트너 언니와 함께 하는 날은 더 힘들다고. 세상에 내 새끼 마음 부대 끼는 일만큼 걱정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이모는 '용돈은 어른들이 챙겨줄 테니 공부하기에도 바빠 보이는데 학과 공부에 집중하는 게 어떻겠니'라고 했지.

"6개월 이상 하기로 하고 들어갔는데 이 일도 못해내고 그만두면 나중에 아무 일도 못해내는 사람이 될까 봐 그게 무서워."

너의 그 대답이 잊히질 않았다.


친구와 음식을 먹으러 갔더니 카드결제기가 달린 14인치 태블릿이 테이블마다 하나씩 다 있더라.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결제를 마치고 음식을 받어. 편하고 좋으면서도 놀라웠어. 인구도 줄고 일자리도 줄고 AI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는 AI가 수술도 더 정교하게 하고 바둑도 두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고 하는 세상이 여전히 낯설다. 사회가 변화하면 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이모 같은 기성세대들은 잔뜩 졸아있어. 여전히 키오스크 같은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아 때로는 꼰대처럼 판매원 앞에서 주문을 하기도 지.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시속 300km는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감하니 멀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시속 60km로 달리는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핸드폰 23 신상품이 출시되면 22는 단번에 구식이 되는 것을,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이제 전혀 새롭지도 않고 자율주행 자동차도 당연하게 받아들일까? 이런 게 놀라운 건 이모가 여전히 책만 읽는 샌님 스타일이라서 그럴까? 직업을 찾고 내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은 젊은이들은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언제든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지만 그래도 직업이 있고 레이스의 반을 돌아 달려온 기성세대와 이제 스타트라인에 선 젊은 세대들의 불안이 같을 수는 없을 거야. 길은 더 좁아졌고 날씨도 더 험해졌어. 그렇기에 조언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 같아.


친구가 밥을 먹으며 해 준 지인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까.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일하는 친구의 부서에 서른두 살 된 신입이 들어왔데. 지금껏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으니 그동안의 고생도 보답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을 거야. 부모가 자가용으로 편하게 태워다 주고 태우러 오며 출퇴근하는 모습이 좀 유별나 보이기도 했다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일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는 거야. 전송 버튼 하나 누르기도 힘들어하니 그 일을 나누어 맡아야 하는 선배나 동기들의 눈총도 없진 않았겠지. 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부모의 반대, 후임자 선정 등의 문제로 사직서를 반려당하고 힘들어한다는 이야기였어. '학교 공부에 집중하는 게 더 좋겠으니,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나의 조언은 과연 너에게 유익한 말이었을까 되돌아본다. '용돈은 어른들이 줄 테니 너는 공부나 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다. 험한 세상으로부터 아이를 더 오래 보호해주고 싶다는 어른의 마음이 결국 엄마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만 큼 아이로 만드는 거 아닐까 생각하니 아찔하더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면 뭐든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나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동안 책상 밖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은 다 잃어버리는 거야. 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계산법일까. '사'자 붙은 전문직, 대기업 사원, 공무원도 더 이상 안정적인 직업군이 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아무리 계획을 잘 짜서 대비를 한다고 해도 내 뜻대로 계획대로 살기가 쉽지 않아. 너무나 많은 변수들로 법칙이란 것이 존재해 않는 게 인생이더라. 삶은 원래 불안정한 거야.  그것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울해지기만 할 뿐이고. 그렇다고 대비 없이 아무렇게 살자는 말은 아니야. 그렇게 되지도 않아. 다만 여지를 좀 두면 좋겠어.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을 수도 있고 부당한 일에 화를 낼 수도 있어. 다른 사람을 나처럼 웃게 해주고 싶어 노래도 부르고 나처럼 억울하지 않게 하기 위해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어. AI가 하지 못하는 것, 책상 앞에 앉아서는 익힐 수 없는 것 그런 것을 우리의 무기로 길러보는 시간들도 필요한 것 같아.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눈으로 쫓아 가 보기도 하고, 혼자 기차 안에 앉아도 보고,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도 써 보고, 친구와 싸우고 잘 화해하는 법을 경험으로 배우기도 하고  말이야.

나를 예쁘게만 봐주지 않는 사람과 얼굴 붉히지 않고 대처하는 방법을, 자존심 상하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굽힐 줄 아는 윈윈의 말들을 스스로 찾고 실험해보는 기회로 여겨도 좋을 것 같아.


그 선배 언니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저도 속상하네요.' 하고 말해. 정말 안된다면 나는 그런 일엔 도무지 소질이 없구나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번에 이모가 너에게 한 수 배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 편한 것만 못하다는 내 경험 상의 어떤 믿음으로 언젠가부터 마음에 부대끼는 일들을 너무 간단히 포기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나 돌아보는 시간이었어.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을 만큼 참 예뻤어. 이번 주 일요일 아르바이트를 가도 좋고 과감히 그만두고 함께 벚꽃 나들이에 동참해줘도 좋겠다.


근데, 현아야 이거 긴 잔소리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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