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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pr 01. 2022

선물은 마음의 포장이다

문태준 산문집 <느림보 마음>을 읽으며

선물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 선물은 마음의 포장이기 때문이다. 좋은 선물은 그러므로 시중의 상품이 아니다. 내가 최근에 받은 선물 가운데는 목걸이가 하나 있다. 조각칼로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물고기 목걸이였다. 그런데 그는 물거기의 몸에 비늘 대신 꽃잎 세 개를 새겨 나에게 주었다. 비릿함 대신 꽃잎의 향기를 담아 준 것이다. 나는 이 목걸이를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 몇 시간 동안 조각칼을 들고 나무를 다듬어 나갔을 그를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다.
좋은 선물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간곡함이 있기 때문이다. 빈 병에 담은 들꽃이나 무늬가 없는 아주 평범한 하얀 커피잔이나, 향기가 없는 종이 카네이션이나 겉으로는 분명 볼품이 없다. 그러나 그 선물을 가꾼 사람의 마음은 세속의 저울로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선물을 가꾼 사람의 마음은 산처럼 크고 바다처럼 깊기 때문이다. 진심이 들어 있는 선물이 메아리처럼 파도처럼 이 세상에 많이 오갔으면 좋겠다.

문태준 산문집 <느림보 마음> p262


책 한 권을 며칠 째 책상 앞에 두고 있다. 좋아하는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란 책이다. 한 장을 넘기면 '조승희 님, 자기 언어를 찾아서, 2021. 12. 4 은유 '라고 친필 사인이 적혀 있다. 북쪽 끝에 사는 친구가 남쪽 끝에 사는 친구를 직접 만나서 주려고 아무말 없이 세 달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받으면 기쁘겠지' 하며 내 이름으로 사인을 받는 친구의 모습을 그려보니 둘이 하나가 된다는 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석 달을 기다렸지만 결국 혼자 와 준 그 책이 2년 넘게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한 번 쓰다듬고 두 번 쓰다듬게 된다.


이모티콘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복실복실 예쁜 강아지가 '힘내라 힘'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참 잘했어요' 하고 도장을 쿵 찍어주기도 한다. '많이 힘들었어' 하고 안아주는 그 강아지를 보고만 있어도 혼자 배시시 웃음이 난다. 온라인에서 만난 글쓰기 친구가 보내 준 것이다. 다가와서 내밀어 준 손을 마음으로 덥석 맞잡았다. 이 강아지 이모티콘 하나가 얼마나 많은 미소를 주는지...... '정말 나 여기 있어요'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목소리 삶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나도 내 마음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은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선물은 마음의 포장이다'는 문구를 보20여 년 전의 검은 봉지 하나가 떠오른다. 부산 외곽에서 학원 선생으로 일 한 적이 있다. 교통이 불편한 바닷가 지역이라 나도 봉고차로 하루 두 어번 차량 운행에 나섰다. 변항에서 몇몇을 내려주고 죽성으로 가는 길은 바닷가가 바라다 뵈는 2차선 좁은 길이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그 길은 주로 토박이들만 다니는 비공식적 루트. 살 좋은 날 창문을 조금 열고 달리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해졌다.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을 훔쳐보듯 슬쩍슬쩍 곁눈질로 감상하는 짙은 색 바다는 참으로 예뻤다.


병희는 판 시골아이였다. 사시사철 구릿빛 얼굴색이 여름이면 더 짙어졌다. 집 앞바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수영을 하는 어촌마을 아이. 5학년이 되면 전교생이 50명 내외라 수학여행을 두 번 간다며 일 년 뒤 있을 일을 자랑하는 아이. 덩치는 같은 나이 또래의 1.5배나 되지만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니'하고 한 마디라도 하면 금세 눈물을 뚝뚝 보이는 겁 많고 순한 남학생이었다. 학원이 처음인 시골 아이답게 둘을 가르치면 하나를 까먹어버리는 아이였지만 다소 어리숙한 녀석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병희를 데려다주며 바닷가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은 업무가 아니라 오후의 티타임 같은 휴식시간이었다.


지금처럼 꽃이 만발한 봄 날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둘만의 드라이브를 끝내고 병희를 집 앞에 내려주었다. 횟집을 겸한 집이라 공터가 넓었다. 크게 원을 그려 차를 돌리는데 집에 들어갔던 아이가 잠깐 기다리라며 나를 부른다. 잠시 후 검은 봉지를 들고 뛰어왔다. 빠른 걸음에 불과한 그 뜀박질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엄마가 드리래요, 라는 말도 없이 웃으며 손을 쭉 뻗어 차창 쪽으로 건네는 검은 봉지. 그 안에는 가린 쑥이 들어있었다. 쑥을 어떻게 먹었는지 따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반짝이던 바닷길과 뜻밖의 선물이 주는 기쁨이 제법 생생하다.


'좋은 선물은 시중의 물건이 아니다'는 작가의 말은 옳다. 마음은 돈으로 값을 셈 할 수 없다. 양털처럼 포근한 말, 사슴처럼 순한 눈빛, 누군가 잠깐 미소 짓기를 바라는 순한 마음, 그것이 '선물(膳物)'이다. 며칠 전 아이들과 마스크 스트랩 만들기 활동을 했다. 작은 구슬을 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만들어서 '엄마'를 주겠다며 포기하지 않고 구슬을 꿰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다했다'는 환호성이 어찌나 우렁차던지 끈 매어주느라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은데도 웃음이 나왔다. 새로 만든 것을 마스크에 걸어주고, 선물하겠다는 아이들것은 포장지에 넣어 주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고픈 마음, 그건 분명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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