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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y 04. 2022

읽기와 쓰기의 쓸모

<월든>을 읽으며

세 종류의 강꼬치고기, 900그램이 넘는 농어와 메기, 황어, 잉어, 피라미, 검은 송어, 한 마리에 1.8킬로나 되는 뱀장어, 옆구리 은색 등은 초록색인 13센티미터 작은 물고기, 깨끗한 개구리, 거북, 민물조개, 사향쥐, 밍크, 배 밑에 숨어든 커다란 자라, 들오리, 기러기, 흰가슴제비, 화살처럼 튀어나왔다 사라지는 물총새, 가슴에 얼룩점 있는 도요새, 백송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물수리, 되강오리, 황어의 보금자리일지도 모르는 호수 바닥의 돌무더기, 단조롭지 않은 호수 기슭, 숲이 비치는 수면, 제비, 태양, 호수의 잔물결, 10월 하순에 자취를 감추는 소금쟁이, 물방개, 청록색 농어, 낡은 통나무 카누, 호수를 떠다니며 보내는 여름날 오전, 사라져 가는 나무들, 사람들에게 경제적 가치로만 여겨지는 호수와 시끄러운 문명의 대표자 철길, 호수를 자주 보는 사람들의 심성.


'숲 속의 은둔자, 월든 호수'를 묘사한 소로의 글을 오늘 13page 읽었다. 하나 하나 묘사된 것들의 이름을 공책에 써보았다. 단 몇 페이지에 불과한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는 호수를 얼마나 오래, 자주, 자세히 바라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아도 자세히 오래 보지 않으면 내 문장 하나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글쓰기를 통해 느낀다. 그래서일까. 문장을 읽을 때 '글을 쓴 사람이 공을 들였구나'하는 느낌이 드는 문장을 만나면 그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 예의를 다하고 싶어 진다. 함부로 읽고 넘기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의리 지키기'라고나 할까. 


지난주 남해 바다로 캠핑을 갔다. 몽돌이 밀물에 수영하고 썰물에 선탠을 즐기는 바닷가 앞에 의자를 펼쳤다. 하릴없이 바다만 바라보았다. 햇빛이 요란스레 반짝 반짝이는 오후의 바다,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일렁이는 밤바다, 불가마니 속 항아리 익어가듯 일렁이는 새벽의 바다는 이란성쌍둥이처럼 오묘하게 닮았고 또 달랐다. 그것을 무언가에 빗대어 보고 싶어 머릿속으로 아는 단어들을 하나 둘 불러들이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얼굴 다 타니까 바다는 그만 보아라, 소리에 사금파리 같은 단어 한 조각도 발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은 무용했을까.  


아침 월든 호수에 대한 소로의 글을 읽는데 지치지도 않고 보았던 그날의 바다가 떠올랐다. 공책을 펼쳤다.

<별은 구름에 가리었다. 달은 내 뒤통수 어딘가에 있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밤바다 가로등 불빛이 한낮의 태양을 대신했다. 그들의 지시에 따라 바다는 춤사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파도는 잠이 든 것일까. 깊은 잠에 든 바다가 코 고는 소리만 낮게 들려온다. 조용하고 아스라한 바흐의 아리아 같은 변주곡. 질리지 않는 자연의 멜로디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한 문단을 썼다. 읽기와 쓰기의 쓸모에 대해 또 생각해본다. 쓸모없음의 쓸모, 무위의 시간은 헛되지 않다. 13page의 독서와 한 문단의 쓰기만으로도 나는 아침 내도록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부자였다. 


*소로의 눈부신 문장들

호수는 어떤 돌로도 깨뜨릴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바른 수은은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고, 그 거울에 입힌 금박은 자연이 계속 새로 입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폭풍우나 먼지도 맑고 깨끗한 수면을 흐리지 못한다. 거울 같은 수면에 불순물이 떨어져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아지랑이라는 태양의 솔이 쓸어 주고 햇살이라는 걸레가 닦아 주어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호수라는 거울에는 입김을 불어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호수는 자신의 입김을 수면 위 공중으로 높이 띄워 보내고, 그 입김은 구름이 되어 호수의 가슴에 조용히 비친다.

<월든 p275~276>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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