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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pr 27. 2022

눈빛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날

<패싱>을 보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벨벳 같은 시선은 지나가는 소녀의 몸에 고정되고 밀착하고 달라붙고, 몸속 깊이 파고드는 듯해서, 만일 그 시선을 떼어 내면 살갗도 벗겨질 것 같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p246


무언가를 욕망할 때,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울 때, 누군가가 경멸스러울 때, 그런 모든 것들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내 눈빛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눈빛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관능적인 시선을 묘사한 이 문장을 읽고 며칠 전 보았던 영화 <패싱>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1920년대 쓰인 넬라 라슨의 소설 <패싱>을 원작으로 한다. 차별을 피하기 위해 또는 백인의 혜택을 나눠갖기 위해 흑인 정체성을 숨기는 것을 패싱이라 한다. 밝은 피부를 지닌 흑백 혼혈인 클레어는 흑인임을 속이고 부자지만 인종차별주의자인 남편과 결혼하 살고있다. 아이린은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급할 때 호텔 카페를 드나들기 위해 패싱을 이용하기도 하나 흑인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지적이고 고상한 중산층 여성이다. 언제나 욕망에 충실한 클레어와 안정을 삶의 우위에 두고 욕망을 통제하며 살아온 아이린이 우연히 뉴욕에서 재회하 것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인종문제를 표면에 두고 있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여인의 삶과 심리를 잘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3인칭 선택적 시점을 택했다. 3인칭인 아이린의 입장에서 그녀의 심리만 자세히 서술되고 다른 등장인물 심리는 아이린 관찰과 짐작으로 서술된다. 클레어와 남편 브라이언의 진심은 아이린의 시선에 의존해야 하기에 그들의 진실은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호기심을 유지하기 위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지 않은 채 독자를 끌고 간다. 그러나 말도 애매하게 마무리 되는데 그게 소설의 매력이다. 책을 읽다가 조급합이 생겨 '책을 먼저 읽는다'는 내 나름의 원칙을 깨고 넷플렉스를 열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흑백영상이 주는 낯섦과 반복되는 영롱한 재즈 피아노의 선율로 나를 매료시켰다. 영화는 소설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아이린의 내면 서술을 방백으로 처리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서도 소설을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눈을 보아라'는 말을 들어보았지만 좀처럼 누군가의 미묘한 내면을 담아내는 표정을 본 기억은 없다. 일기장이라도 읽고 나서 상대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면 표정과 눈빛으로 상대의 생각을 알아맞힌다는 건 큐브 돌리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바람피우는 아내 의심하는 남편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복잡 미묘한 아이린의 심리가 배우 테사 톰슨의 눈빛 속에서 말 한마디 없이 담기는 모습을 거북목을 하고 지켜보았다. 눈빛소리 없이었다. 애매하던 결말의 의미까지 그녀의 눈빛이 더 잘 알려주고 있었다.


패싱의 문제를 떠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규범을 무시하고 욕망을 쫒는 클레어도 삶의 공허함을 느낀다. 아이린 역시 안정을 지키기 위해 '행복, 사랑, 본능적인 기쁨' 같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패싱을 선택한 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에게 속이고 패싱을 선택하지 않은 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속인다. 비단 인종의 문제를 떠나 삶의 유리한 출발선에 서게 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국적, 성적 취향, 성별, 종교, 민족, 빈부 등 많은 차별의 요소들이 있고 수많은 약자들이 있다. 크고 작은 차별이 그려놓은 얼룩진 무 위 결핍을, 욕망을, 안정에의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덧칠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의도대로 소신껏 선택 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단지 이것이었나'하고 자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는 택의 순간들이 한번씩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 하나를 두고 며칠 째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대수롭다고 대수롭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문제다. '의리를 지킬까', '자유로워질까.' '편한 대로 살아버릴까', '나아질 때까지 조금 더 애쓸까'. 내면의 고민이 선택의 면죄부가 될 수 없고 결과에 따른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다.

고통, 두려움, 그리고 슬픔은 어떻게든 사람에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감정, 심지어는 사랑조차도 우리 얼굴에 은밀한 표식을 남기는 법이었다.

<패싱> p146

 

솔직하게 내 욕망을 인정하고 싶은데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는 지금 나는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까. 숨겨지지 않는 나의 내면, 내가 보지 못하는 그 눈빛을 누군가가 몰래 찍어서 보여주면 좋겠다. 내 얼굴에 새겨진 은밀한 표식, 내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한 그 표식을 대신 읽어줄 사람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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