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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pr 07. 2021

기브 앤드 기브 앤드 기브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 '무주상보시의 기적'

“혜령아?”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딸을 부를 때가 있다. 혜령이는 '왜?'라고 대답하거나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엄마 무슨 말하려고 그러게?”

장난스레 물으면 딸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나 사랑한다고?”

내가 뜬금없이 '혜령아' 하고 부르면 엄마가 사랑한다고 그려려는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차린다.

“엄마가 혜령이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알지?”

손바닥을 살살 간질이면 '당연히 알지' 하고 되받아 손가락으로 손을 살살 긁어준다.

    

“오빠, 많이 많이 사랑해. 나는 오빠가 너무 좋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이렇게 남편에게 말을 한다. 카톡 안부의 마지막도 항상 '사랑해' 로 마무리하는 편이다.

“우리 엄마가 참 좋다.”

저녁을 먹고 집에 가려고 일어서면 따라 일어서서 문 밖으로 나오는 엄마를 안아주며 말한다. 그러면 질투 난 혜령이가 엄마와 나 사이를 파고들며 '할머니는 나를 더 좋아하거든.'하고 할머니 품에 쏙 안긴다. 어떤 애정 행각도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고등학생 현아, 현준이도 '내 사랑들아' 하고 두 팔 벌려 안으려 하면 그 어색한 표정 감추지 않으면서도 호응해준다.   


은근히 담아두는 사랑도 멋이 있겠지만 나는 아끼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편이다. 지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선과 그들이 받을 부담감을 생각하여 자제하는 편이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한 번씩 전달하고 싶다. 내 마음을 편히 고백할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대나무 숲을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기쁘고, 불러보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해 왔다.


 과연 그것이 '사랑'이니? 하고 묻는 작품들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도 그랬다. 삶은 사랑의 준말이란 노래 가사처럼 삶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인공 로봇 클라라가 인간 소녀 조시를 살리기 위해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주려할 때, 아들을 위해 자존심 따위 다 버리고 구걸하듯 용서를 비는 핼렌을 볼 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하는 보살의 모습을 본다. 보시(布施)란 ‘남에게 내 것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며, '상(相모양)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조건 없는 사랑, 대가 없는 희생이다. 해줘서 기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조차도 경계하는 철벽같이 굳건한 말이다.


황제의 신분으로 중국의 불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양 무제가 달마대사를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왕이 된 후 수천 개 절을 지었고 수만 개의 탑을 쌓았으며 수많은 경전을 펴냈고 끊임없이  승려들을 보살펴왔습니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공덕이 있습니까?"

자신이 한 일이 자랑스러워 칭찬을 받고 싶었을 양 무제에게 돌아온 대답은 '소무공덕(小無功德)' 이었다.


 습관적으로 ‘안녕’ 대신 ‘사랑해’ 하고 인사해 왔던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안정된 생활이 아니라 풍파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가 자문해본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한에는 내가 변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사랑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잘 키워야 훗날 편하겠지 하는 계산이 있었다. 열 개를 주면 하나는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내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길들이고 싶었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 만큼 너도 나를 지지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이 있었다. 몸의 수고로움은 기꺼워하지 않으면서 얄팍한 말로만 쉽게 사랑을 돌려받으려 했다. 누구 말대로 '좀 좋은 조건을 제시한 통 큰 거래'였을 뿐이었다. 세상 밑지는 장사가 어디에 있다고 그런 계산기를 두드렸을까.  


  ‘기브 앤드 테이크’에서 테이크를 절단하고 ‘기브 앤드 기브 앤드 기브’를 할 수 있는 삶을 사랑이라 하자고 철학자 강신주가 말한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고 사랑의 실천이 인내와 희생이라고 한용운 시인이 노래한다. 주고도 준 것이 없다고, 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찬란한 태양이 기적을 몰고 와 ‘특별한 자양분’을 나누어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가즈오 이시구로가 말한다.


클라라는 '잘 되어서 기쁘다, 후회가 없다, 진정 좋았다' 고 했으나 야적장에 남겨진 그녀가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아직 ‘테이크’에 미련이 남은 작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을 전하는 건 나의 기쁨을 위함이요, 사랑한다는 말을 다정히 받아주고 안아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대가일지도 모른다고. 클라라가 발견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그 무엇은 바로 사랑이었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클라라와 태양


사랑으로 나를 증명하려 하지 말자. 내가 나를 드러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드러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계산법이 아닐까. 그의 소설답게 밑줄 그어지는 문장은 많지 않았다. 대신 문장과 문장 사이가 보이지 않는 슬픔과 사랑으로 가득 찼다. 차가 옆에서 식어가는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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