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로 가는 1001 좌석 버스는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라잡이다. 부산 서쪽의 구석에 사는 나는 버스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해운대행이 항상 부담스럽다. 타 지역도 아닌데 왕복 3시간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며 선뜻 나서 지지가 않는 것이다.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지만, 긴 시간 남편이 혜령이와 점심, 저녁 다 챙겨 먹이며 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길이 조금은 가까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한 번씩 해운대행 버스를 타고 싶어지는 것은 좋아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과 영화의 전당이 왕복 3시간의 버스행을 즐거이 감내하도록 이끄는 애정의 장소다.
무슨 이유인지, 그곳으로 가는 여정에는 일정한 루틴 같은 것이 생겼다. 특히나 글쓰기를 시작하고서부터 가는 길엔 오디오 클립으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듣고 돌아오는 길엔 작가의 서랍을 채운다. 나는 '글쓰기 상담소'의 애청자임을 자처하면서도 매번 알림임 울리는 월요일 저녁에 바로 챙겨 듣는 일은 한 번도 없다. 이상하게 해운대를 가는 날만 되면 머리 한 구석에 밀려나 있던 것이 '이제 내 차례가 되었어.' 라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6주 차 분량 정도를 몰아서 들으면 교통체증구간도 깜빡 잊고 도착지에 거의 다다른다. 나는 그동안 글쓰기라는 화두에 고스란히 젖어들게 된다.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새로운 시작답게 제법 열정을 불사르며 잘 진행되었다. 술술 써지는 솜씨는 원래 타고나지 못했지만 글쓰기에 재미가 붙으며 실력도 조금 느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모아 브런치 북으로 엮고 지인들에게도 알렸다. 무언가 큰 일을 해낸 것 마냥 뿌듯했다. 글쓰기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복잡하다고 한 쪽으로 밀쳐 둔 고민들을 하나의 글로 엮기 위해 내 생각을 뚫어지게 탐구해 볼 수 있었다. 고민의 해결은 미완이라도 한 편의 글로서는 완성해보려는 노력의 시간들이었다.
갑자기 글쓰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삶의 구조조정을 실행해야 하는 다급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닥친 뜻밖의 쓰나미에 나는 억울했다. 내 잘못도 아닌데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복잡한 문제를 다 모른 체 하고 살아갈 것인가, 짐을 나누어 질 것인가. 모른 체 하자니 앞으로 행복할 자신이 없었고 짐을 나누어지자니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가 쓴 글에 발목이 잡혔다. 풍파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불과 얼마 전에 다짐하고 내 손으로 쓴 문장이었다. 이렇게나 빨리 실험에 들게 하시다니, 없었던 것으로 다 무르고 실컷 이기적이고 싶었다.
생각대로 살아지는 사람이길 소망해왔다. 잘 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을 존경했다. 그들을 따라가려 부처님께 귀의했고 책을 읽었다. 얄팍한 입놀림이 아니라 무겁게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고 쓰는 다짐의 글들이었다. 엎어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징징거리지 않고 빨리 받아들이고 해결점을 찾는 일이란 것을 내심 알고 있었다. 글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은 엎어진 물을 외면하는 것보다 더 큰 자책감으로 남으리라. 그렇게 시련을 받아들이자 진정한 시련은 끝이 났다. 격랑에 나부끼던 마음은 안정을 찾았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글의 힘에 그만 짓눌린 것이었을까. 쓰는 것이 두려워졌다. 어쩌면 인생의 슬럼프를 만나 글쓰기 슬럼프까지 원 플러스 원으로 묶어서 처리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밥 먹고 애를 돌보고 일하러 가는 내 일상을 멈출 수 없었듯이 약속한 글쓰기도 어길 수는 없었다. 겨우 시작한 글쓰기가 여기서 중단될까 두려워 또 쓰기는 썼다. 그러나 전처럼 하고 싶은 게 왕성하지 않았듯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질 않았다. 몇몇 가벼운 책을 읽기도 했지만 대체로 시큰둥했다. 일찍 잠들기 시작했다. 아하, 이런 게 슬럼프구나. 겨우 몇 달 쓰고 찾아온 슬럼프라니. 다른 이들은 시련 속에서 더 좋은 글들을 써내던데, 나는 그게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글쓰기로부터 또 도망쳐서 편해질 궁리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못나 보였다. 번거로운 글쓰기와 책 읽기 대신 영화보기와 음악 듣기가 일상의 틈을 메워주었다. 그렇게 서서히 '안 써도 충분히 괜찮아.'라며 또 쓰지 않는 자신을 옹호하는 예전으로 돌아가려 했다.
예매해 둔 연주회 일정이 가까워오자 가는 김에 미술관도 다녀오자 싶어 예약을 했다. 사실 전날만 해도 슬쩍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요즘 무얼 봐도 시큰둥한데 멀리까지 가려니 발걸음이 가볍진 않았다. 얇은 범우문고 책을 가방에 한 권 넣고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서는데 햇살이 좋았다. 일찍 나선 참이라 서두르지 않고 버스에 올랐다. 일요일이라 좌석에 여유가 있었다. 앞자리 창가에 혼자 앉아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을 쐬며 앉았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흘러나오는 은유의 목소리가 귀를 기울였다. 17회 글쓰기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저번엔 대충 들었던 회였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온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창밖을 보았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1. 늘 하던 익숙한 글쓰기를 그만둔다.
2. 쉬면서 쓸데없는 일들을 하고 나를 좀 가만히 놔둔다.
3. 익숙하지 않은 다른 글쓰기를 시도해본다.
이런 실질적인 조언에서 시작해 '슬럼프. 그것이 봄바람처럼 내 삶에 찾아오거들랑 잠식당하지 마시고 글쓰기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서 술렁술렁 잘 타고 넘으시길 바랍니다.'라고 마무리되는 한 편의 오디오 클립을 듣는데 바람이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문득 20년 전에 외우던 좋아하는 구절, 키타가와 에리코 각본의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왜 있잖아요
뭘 해도 잘 되지 않을 때
그럴 땐 신이 주신 휴가라고 생각하는 거죠.
무리하지 않는다
초조해하지 않는다
분발하지 않는다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좋아지는 거죠
쿠보타의 la la la love song 이 울려 퍼지며 피아노 앞에 선 주인공. '언제나 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뭘 해도 되지 않을 때 그럴 땐 신이 주신 휴가라고 생각하는 거야.' 20대에 꽂혔던 이 대사가 지금도 이렇게나 달콤하게 나를 감쌌다.
도시의 대로변이지만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 그 길을 따라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2층부터 보라는 안내자의 말에 알겠다 대답하고 3층으로 성큼 올라갔다. '이토록 아름다운'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4월 말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었다. 가상의 웅장한 파도가 장관을 이루는 작품 <황홀과 익사 사이> 덮쳐오는 파도에 몸을 내맡겨도 안전한 가상현실의 공간. 웅장한 파도 소리가 질리지 않았다. 잠깐 쉰다고 커피 한 잔 하며 꺼내 읽은 수필집. 한참 머물게 되는 '기꺼이 운명의 직녀, 클라우 도우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이 너를 실 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라는 글귀. 모든 게 지금 이 순간을 향해 조금씩 준비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여드는 운명 같은 해석. 내가 오라 한 게 아니었듯 가라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파도처럼 공포스럽게 밀려왔던 심드렁함이 황홀하게 밀려나가자 빵 하나로 가시지 않는 허기가 밀려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쓰고 싶은 것들이 허기와 함께 몰려와 먼저 들어가겠다고 작가의 서랍을 두드린다. 당장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지만 그 아이를 세상에 내보낼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너는 좀 더 익어라,라고 다독이고 다른 녀석을 물색해보았다. 금방이라도 내게 잡혀줄 것처럼 달려오던 녀석들인데 도무지 손에 잡히지가 않고 빠져나간다. 그래도 좋다. 물고기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돌파구가 보이는 것만 같다. 매번 돌아오는 1001 좌석 버스는 글쓰기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길라잡이었다. 글쓰기 상담소에서 시작해 작가의 서랍을 채우는 해운대행 여정의 루틴은 오늘도 예외 없이 적중하고야 말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노트북을 켰다.
'해운대로 가는...'으로 시작되는 글쓰기 슬럼프 극복기. 일곱 단락을 다 썼는데 컴퓨터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 순간 후루룩 쓴 이 글이 날아가버린다는 생각에 '아'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후다닥 엔터 버튼을 누르니 다시 밝아지는 컴퓨터 화면. 안도하며 저장을 누르고 나니 남편이 '안 잘 거야' 하고 물어온다. 매번 늦게 자는 남편이 웬일인가 싶어 시계를 보니 한 시가 훌쩍 넘었다. 글이 채워지는 속도는 늦었지만 글 쓴다고 앉아 있는 시간은 유난히 빨리 가버리는 건 매번 똑같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미완의 글이 내심 아쉽지만 글도 삶도 천천히 즐기며 음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핑계를 대며 노트북을 덮는다. 신이 주신 휴가를 좀 더 즐겨도 되겠다 싶을 때, 인생의 슬럼프에 쉼표가 찍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