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흑흑... 손을 쳐서... 으흐흐... 안 그랬으면... 흐흐... 내가... 물을 안 쏟았을 건데... 으흐흐... 언니가..."
현아랑 둘이서 장난을 치다가 혜령이가 손에 가득 든 물을 쏟았다. 현아가 '네가 쏟았잖아, 고혜령.' 하고 동생을 놀리려고 한 마디 했다가 저녁 식사 시간 내도록 온 가족이 혜령이의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우리는 달래기, 혼내기, 공감하기 등 심각하지 않게 돌아가며 한 마디 했고 그 말들에 따라 울음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됐다. 목이 쉴 정도로 울어재낀 혜령이는 현아의 체스 두 판 약속과 '내 탓이오.'사과를 받아들이며 울음장의 막을 내렸다. 한 번씩 혜령이가 울 때면 가족들은 "니 딸 맞네." 하며 나를 쳐다본다. "맞다 맞아 딱 내 딸이다." 싶어 그 진상 같은 행동에도 나는 자꾸 감싸고만 싶어 진다. 밥상머리 눈물 바람, 어릴 적 나의 단골 레퍼토리. 내 마음을 알아줘서, 내 마음을 몰라줘서, 어쨌든 울만큼 울어야 끝이 났다.
'울기는 왜 우노.'
어렸을 때 참 자주 듣던 말이다. 답을 요하지 않는 책망의 말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 말에 더 서운해져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주로 섭섭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닥치면 눈물이 흘렀다. 밥을 더 먹고 싶은데 살찌니 그만 먹으라고 밥그릇을 뺏길 때, 밥상 위로 눈물이 뚝, 소리 없이 떨어졌다. 옷을 사러 갔는데 언니는 예쁜 옷을 척척 고르는데 나는 맞는 옷이 없어 이 가게 저 가게 전전하다 예쁜 옷이 아닌 맞는 옷 한 벌 겨우 골랐을 때, 그 옷도 예쁘다 누가 한 소리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흘렀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남매끼리의 싸움에 휘말려 같이 손바닥을 맞을 때 숨 넘어가듯 서럽게 울었다. 내 감정에 취해서 울 때는 조용하게, 억울해서 울 때는 시끄럽게 소리가 났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울지 말고 똑바로 해라.'
그것이 가능하면 눈물을 왜 흘리겠는가? 설명되지 못하는 감정들 때문에 툭툭 튀어나오는 게 눈물이 아닌가. 물론 눈물은 요물이다. 말로 하기 어려운 내 심정을 토로하기에 참 효과적이다. 때로는 눈물 한 방울로 다 이해받고 용서도 받는다. 왜 울음으로 표시했느냐에 대한 힐책. 나는 너로 인해 곤란하다는 말. 혜령이에게 당해보니 나도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 때가 많다. 그러나 눈물을 감정의 무기 등으로 비하하는 말을 들을 때면 억울한 생각도 든다. 눈물은 계획하에 터져 나오거나 막아지는 게 아니었다. 우는 것도 울지 않는 것도 의지대로 잘 되지 않았다. 봇물처럼 수위를 재어볼 수 있을 때 터지기도 했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슬프나.'
이 질문에 나는 분명 '네'라고 답하는 경우는 백에 하나 정도뿐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서 내 슬픔이나 시련을 이유로는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 진짜 감당하기 버거운 일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건가 의아했다. 그래서 여전히 브라운관 세상이 나를 제일 많이 울리는 대상이다. 울라고 만들어준 그 어설픈 장치들에 하염없이 감정 이입하며 눈물을 훔친다. 가족들은 그래, '승희 좀 봐라. 곧 운다 운다.' 하며 놀려대곤 했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기대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부응한다. 친구의 친구 이야기에도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금세 밥도 잘 먹었다. 뉴스 속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어머 어머 불쌍해서 어쩌나.' 눈물이 순간 그렁거려도 남은 차를 잘 마셨다. 쉽게 울지만 눈물의 흔적은 오래 남지 않았다.
많이 운만큼 많이도 잊는 사람이었기에 눈물의 이중성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순간의 진심일 뿐 무용하다 싶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눈물을 '타인의 고통이 느껴지는 축복이 나에게 왔다.'로 정의 내린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도 근사해질 수 있구나 싶었다. 이왕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라면, 나도 내 눈물을 멋지게 설명하자. 그 마음을 잘 간직하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에 관대해지기, 우는 사람을 받아들여주기, 다른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기, 나를 위해서 울어도 자책하지 않기. 눈물조차 유용하기를 바라는 이 욕망, 나는 내 눈물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요즘도 눈물은 시시때때로 나를 방문한다. '나한테 다 말하지 그랬니.'라는 위로의 말에도, 산 안개로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저 건너의 풍경에도, 글렌 굴드의 골든베르크 연주곡 속 허밍 소리에도 화선지 먹물 번지듯 눈물이 스몄다. 416 TV에서 세월호 7주기 추모 영상을 보는 10분 내도록 통곡했다. 오늘도 보험회사 상담사 연결을 기다리다 꼬마 아이의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전화를 받을 예정입니다.'란 안내 멘트에 울컥했다. 내 눈물은 마음이 1mm 정도 이동했다는 알림 표시일뿐이다. 그게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르지만, 서정시의 시어처럼 고유하게 남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