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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y 12. 2021

'시'로 나누는 '情'

박노해 '가난한 죄', '그 겨울의 시', 나희덕 '산속에서'를 나누다

HHH. 우리는 대학 시절의 선후배 사이다. 매달 독서모임으로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났었는데 코로나 탓에 셋이서 얼굴 마주 보는 건 일 년 만이다. 첫째 H는 남자 선배지만 언니 같은 존재다. 비 오는 날을 반가워하고 백석 시를 사랑하는 남자다. 둘째 H는 나다. 선배한테 당당히 밥 얻어먹고 동생에게도 전적으로 의지한다. 셋째 H는 한 해 후배지만 친구 같은 존재다. 외모, 성격 다 다른데 예술과 문학에 대한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하다. 공감을 얻고 싶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지인이다. 며칠 전 셋째 H와 나는 P시인의 어떤 작품들에 대해 격하게 감동받으며 우리의 동질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생 시 한 편 만난 듯 울컥했던 그 시가 남편들에겐 무덤덤한 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공대생 남편과 사는 예민한 여자들이란 점이 우리의 또 다른 공통점이기도 했다. 개인의 취향이지 남자들의 취향은 아니길 바라는 소망은 첫째 H에 대한 기대로 모아졌다. 분명 성별만 남자인 첫째 H는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리라. 내심 기대하며 첫째 H에게 시 두 편을 읽어오라 숙제를 내주었다.




감사한 죄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이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그 겨울의 시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한 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단지 '좋아하는 시'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일 뿐인데 가끔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남편에게서 그러했다. 아무 상관없는 타인이었다면 아무 상관없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다가 시를 읽다가 좋은 구절을 발견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오빠 오빠 이 부분 한 번 읽어봐. 이거 한 번 들어봐' 하며 내밀었다. 때때로 카톡이나 편지에 인용하여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반응은 옆에서 물었을 때 그나마 '좋네, 좀 시끄러운 걸.' 등의 단답식으로 끝이었다. 대뜸 '이 시는 별로네' 같은 이유 불분명 부정적 반응이 먼저 나오면 내가 작가도 아닌데 울컥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꼭 그 구절을, 그 음악을 같이 좋아해 주길 바라서도 아니었다. 누구나 취향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다시 되물으며 이야기가 이어지길 기대하며 건네는 말일뿐이다. '눈치 없기는...' 속으로 그러고 말지만 남편에게 음악이나 문학에서 내가 느끼는 좋은 것들을 공유하는 횟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이런 갈증들은 독서모임에서 마음 맞는 지인들과 대화하며 풀곤 했다.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사람들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았다. 대체로 나는 설득하고 싶은 편이었으나 쉽게 설득당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모든 관계에서 서로 그랬다. 도달할 수 없는 평행선 상에 있었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명목 아래 체념하는 것이기도 했다. 때때로 그런 다름이 참 좋았다. 그러나 끈끈한 유대관계에서 너와 나 사이에서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기대했던 첫째 H의 감상도 남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글퍼진 나는 감정이 앞섰다. 너는 이 시의 어느 점이 좋았어 라고 물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도 갑자기 오버랩되었다. 설명은 짧아지고 그럴수록 논리를 빗나갔으며 마음만 앞서 쉽게 울컥하는 나. 소설과 시에 빗대어 안부와 위로를 나누고 싶었던 내 마음은 저 멀리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고 나는 느꼈다.


소설 이야기, 시 이야기, 책 이야기에 인생에 대한 위로가 범벅이 된 두 시간의 짧은 만남이었다. 출근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나는 온전히 다 나누지 못한 마음을 아쉽게 끓어 안고 다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먼저 버스에 올랐다. 혼자 창밖을 보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의연하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보았다. 이해받고 싶어 하고 좀처럼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내가 보였다. 여전히 같이 공감하고 공감받길 바라는 어린아이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들여다보았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그들은 이런 나를 다 이해해 줄 것이다는 믿음, 그리고 아마 둘은 이런 내 부끄러움을 알지도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참 수업을 하는 데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첫째 H가 오늘 만남에 대한 화답 시를 보내왔다. 밤 10시,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둘째 H가 내가 오늘 그녀의 아들에게 빌려 준 책에 대한 대한 감상을 대신 전달해준다. 지금 듣는 음악을 굿나잇 인사로 공유한다. 늦은 밤,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시를 옮겨 적는다. 저절로 마음에서 얼굴까지 숨길 수 없이 피어오르는 미소. 이런 의남매가 있다고 남편에게 자랑 좀 실컷 했다. 그리고 개운하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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