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희 Apr 22. 2021

높이고 높여지는 마음

 존중(尊重) -오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사람이며 늑대, 늑대이며 사람인 유키와 아메, 두 남매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를 보고 있었다. 누나인 유키는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동생인 아메는 겁이 많고 소심했 학교보다는 산을 좋아했다. 정성에 대한 고민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두 사람은 등교 문제로 실랑이를 다. 유키는 학교에 나오지 않겠다는 동생과 다투다 홧김에 손찌검을 한다. 얌전하기만 했던 아메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누나에게 달려든다. 둘은 늑대로 변해 으르렁대며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며 한 판 붙는다. 더 이상 아메는 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유키가 쫓아주어야만 했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동생에게 쫓겨 목욕탕으로 도망친 유키는 꺼억꺼억 소리도 숨기지 않고 서럽게 울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나는 금세 크고 두툼한 손, 무거운 그 손이 나를 움켜잡았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다. 두 살 터울 남동생의 손이다. 조폭 비주얼에 순한 양의 성품을 지닌 동생은 운동으로 단련된 아이였다. 학교에서 아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는 동생이지만 나에겐 누나 한 마디에 겁먹는 순한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승우야, 빨리 빨리 빨리 와봐. 큰 일 났어."

나는 자주 다급하게 동생을 찾았다.

"뭔데? 무슨 일이데?"

"불 끄고 문 닫아라."

"승우야, 너 일어선 김에 물, 일어선 김에 귤, 일어선 김에......"

사실 동생도 나의 의도를 몰랐을 리 없건만 불을 꺼주고 심부름을 해 주었다. 세수와 화장실 볼일은 대신 부려먹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나는 집안과 집 밖에서 성격차가 심한 편이었다.  밖에선 성인군자같이 행동하면서도 집에서 꽤나 막돼먹은 성질이 불쑥불쑥 나왔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 화가 났을 때,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듯 성질대로 되지 않는 게 있으면 동생에게 짜증을 냈다. 초등학생 때, 나는 저녁을 먹다가 동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앞에 있던 밥상을 엎었다. 생을 발로 차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있었다. 나의 '욱' 성격을 아는 언니가 동생을 다른 방으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누나가 시키는데 어디서 말대꾸고?'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눈을 부라리면 대체로 순순히 꼬랑지를 내렸다. 때때로 저항도 따랐다. 자존심이 쎘던 나는 '누나'라는 권위에 도전해 올 때,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절대 꿇리지 않겠다는 이상한 전투정신으로 무장되곤 했다. 가오가 밥 먹여준다고 생각했던 시절, 나는 집 안의 스탈린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도 성장했다. 여중으로 진학 한 나는 학교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친구들에게 푹 빠져 살았던 사춘기 시절 집에서 동생과 마주치는 횟수가 줄었다. 때때로 사납게 굴기도 했겠지만 중학교 때 동생에게 부린 행패는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 한 후였던 듯하다. 내가 고3인가, 대학교 1학년인가 세세한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다. 사실 동생과의 싸움은 대체로 내 몫의 음식몰래 먹었다거나 내 물건을 말없이 썼다거나 자기 양말을 내 방에 벗어던져 놓는다거나 하는 사소한 것, 쪼잔한 것이 불씨가 되어 시작되었다. 그 날은 무슨 일로 동생을 '잡으려' 했던 것이었을까? 말다툼 끝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자 손도 번쩍 위로 치솟았다. 관계의 관성 같은 것이었을까, 나는 동생이 반항할 수 있는 인간이란 사실을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몸무게가 100kg에 달하고 키가 180cm 넘는 남자 고등학생 머리를 한 대 치겠다고 높이도 들어 올렸을 그 팔에 처음으로 제가 가해졌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팔을 낚아챈 그 두터운 손과 갑작스러운 쿠데타에 정신은 혼미했 여전히 가오만은 구기고 싶지 않은 허수아비 권력자 손  한동안 허공에서 대치했다. 무거운 손의 힘이 무섭게 느껴지고 심장은 화끈화끈 불타올랐다.

" 손 놔라. 이 손 안 놓으면 니 오늘 내한테 죽는다."

마지막 발악으로 내뱉은 이 말에 동생이 손을 놓아준 것을 두고두고 속으로 감사해했다. 겉으로 드러난 승리 덕에 그때 누나로서의 체면은 지킬 수 있었지만  진짜 자존심이,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것을 보았다. 박정희 같은 최후가 아니라 카스트로처럼 스스로 물러날 수 있음에 안도했지만 치욕의 눈물을 혼자 꺼억 꺼억 흘렸다.


'때린 사람은 잊어도 맞은 사람은 못 잊는다.'는 말은 때때로 거짓일까. 언젠가 동생에게 한테 맞은 거 기억이 나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이 아닌 타인들에게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무례를 범했던 또 다른 기억들이 있다. 사과할 대상을 잃었기에 만회하기 힘든 마음에 새겨진 주홍글씨. 내가 기억해야 할 부끄러움이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그때는 다 사정이 있었으니까, 하는 핑계로도 한 번 새겨진 흔적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피해자는 잊어도 가해자에게는 잊히지 않는 그런 기억들이 있었기에 나는 알게 되었다.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은 능동사이자 피동사였다. 남을 높이는 것은 자신 인간됨을 훼손 시키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킴으로서 다른 사람의 존엄도 지켜질 수 있는 것 동생의 무겁고 무섭던 그 손을 통해 알았다.


울음 뒤에 서로의 길이 다름을 인정한 유키의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산으로 돌아가 큰 울음으로 화답하는 아메의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13살 어린 나이의 아들을 산으로 보내는 하나(엄마)의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옆에서 함께 하는 것보다 선택을 존중하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에게  더 힘든 결정었을 것이다. 유키(눈), 아메(비)는 스스로의 의지와 엄마의 존중으로 꽃(하나)처럼 피어났다. '늑대아이'를 다시 보며 존중(尊重)이란 단어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높을 존(尊), 무거울 중(重) '사람이 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는 모습을 본뜬 글자가 무거울 중(重)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높이는 마음, 평생의 짐처럼 여겨도 좋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시'로 나누는 '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