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진지하게 품은 적이 있다. 빵순이인 나는 아파트 앞 동네 빵집 문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곳에 서면 행복하고도 괴로운 선택의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로켓, 카스타드, 소시지빵, 밤식빵과 단팥빵. 어떤 자식이 제일 좋으냐 묻는 어리석은 질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지런히 진열된 매대에 손을 뻗었다 말았다 했다. 수능 문제 푸는 학생처럼 초조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골라 담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타인에 의한 기쁨의 순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어떤 빵을 공짜로 끼워주실까. 순수한 기대가 주는 두근거림을 즐겼다. 사실 그 서비스 빵은 어떤 것이 되든 아쉽지 않았다. 덤에는 너그러움이라는 가치가 담겨있었다.
빵집 주인아저씨는 빵을 만드셨고 아내분이 매장을 담당하셨다. 아, 우리 집이 빵집이라면 어떤 빵을 바구니에 담을지 선택하는 이 괴로움을 면하지 않을까. 그렇게 빵을 좋아했어도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손으로 빚어내는 모든 것들에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손으로 옷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반죽을 능숙하게 성형하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존경심이 느껴진다.
얼마 전 동네 오래된 빵집이 문을 닫았다. 사과 폐스트리가 일품인 가게였다. 케이크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여 식구들 생일 케이크를 담당하던 곳이다. 버스 정류장 앞의 대로변인 데다 오래된 단골손님도 꽤 있는 동네 인기 빵집이었다. 프랜차이즈 가게가 몇 발자국 옆에 생겼어도 10년 가까이 자리를 유지하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 나도 생겨나는 여러 빵집들을 탐험했고 포인트 제도에 굴복당했다. 그 가게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 한 겹 한 겹 벗겨 먹다 보면 사과잼이 있는 마지막 한 입에 다다르던 그 마법 같던 사과파이. 그것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생각하니 좀 잘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더 아쉬운 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를 설레게 한' 덤이 완전히 사려졌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포인트보다 만질 수 있는 따뜻한 정을 저버린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남에게 덤으로 무언가를 건넬 수 있는 것이 일상이 되는 삶이란 얼마나 근사한가. 나같이 덤에 진심인 손님이 건네는 '감사합니다' 란 인사를 듣는 인생.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런 작은 행동이, 이런 작은 온기가 삶을 살아내게 하는 어떤 힘이 아닐까. 고운 눈빛과 다정한 안부를 전하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나만의 빵 반죽을 빚는 일 아닐까. 그 반죽이 잘 부풀어 오르길 기대하는 즐거움은 물론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