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캣피시라는 물고기가 있다. 유리메기, 또는 유령유리메기라고 불리는 이 열대성 담수어는 몸이 비늘로 덮여있지 않다. 그래서 유리처럼 투명하여 내부가 다 들여다보인다. 성질이 온화하여 다른 물고기를 해치는 일이 거의 없어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유리메기가 죽으면 몸이 하얗게 변한다는데 몸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기름을 분비하기 때문이란다.
유리메기에 관한 정보들을 읽다 보니 오래전 보았던 '사토라레'란 일본 드라마가 떠올랐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마음속을 들켜버리고 만다는 '사토라레'에 관한 이야기다. '사토라레' 역을 미남배우 '오다기리죠'가 맡아 열연했다. 나는 웃고 울면서 10편을 하루 만에 완파했다.
사랑이 시작되던 시기, 남편의 속마음이 너무나 궁금했다. 속속들이 모든 것을 알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누군가의 진실이 여과장치 없이 다가온다면 어떨까. 물론 연애 초기 남편의 속마음이 너무나 궁금하던 때를 생각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로남불처럼 내 마음이 타인에게 생방송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보는 것이든 나의 마음과 마주하는 것이든 진실 앞에 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를 발판으로 영화도 만들어졌지만 이미 익숙해져 버린 설정에 감동이 덜했다. 대신 대사 한 구절이 노트에 남았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짓말은...
다른 사람한테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고등학교 해인사 백련암 수련 법회 때, 원택 스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도 이와 같았다. 서울대를 다니던 원택 스님이 유명한 스님을 뵈러 간다는 친구 말에 얼떨결에 백련암에 따라와 삼천배를 했다. 이 생고생을 했으니 무언가 근사한 가르침을 내려줄 거라 잔뜩 기대했단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하신 말은 딱 한 마디. '속이지 마라.' 였단다. 이게 무언가. 어렵게 삼천배를 했는데, 고작 이 한 마디가 다인가. 게다가 나는 특별히 남을 속이며 사는 사람도 아닌데 하며 실망하며 서울로 돌아가셨단다. 절에 다녀온 것은 까마득히 잊고 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문득 성철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단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로 각색되니 다른 말이 되었단다. 그 길로 다시 삼천배를 하고 성철스님을 뵈었고 '중'이 되어란 한마디 말에 짐을 싸서 내려오셨다했다.
나 역시 친구 따라 강남 온 격으로 죽을 둥 살 둥 삼천배를 끝낸 후였다. 눈이 번쩍 뜨이고 여기서 머리를 깎아야 하나 마음이 설렜다. 물론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 말을 나침반 삼아 살아왔다. 그러나 벗어던지고픈 무거운 갑옷처럼 여겨질 때가 더 많았다. 차라리 돛대가 없었더라면 바람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빈 배처럼 자유롭지 않았을까. 몸과 마음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흡혈메기는 유리메기와 달리 몸이 반투명하여 다른 물고기 아가미로 들어가 살을 조금씩 파먹으며 기생한다. 나는 여전히 몸이 반투명한 흡혈메기다. 세상이 다 그렇지라든가,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법이야 등 듣고 싶은 말에 더 크게 호응한다. 흡혈메기의 세상 속에서는 흡혈메기가 정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질이 온화하여 다른 물고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유리메기의 세상은 내가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며 스스로 퇴굴심을 발휘한다. 살아있는 동안 '빛'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결국 '사리'를 빚어내는 유리메기. '사토라레'로 살아도 괜찮은 사람, 유리메기의 종족이 되어 투명하게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