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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ug 05. 2021

사진-추억 한 장

 


 피렌체의 두오모는 사랑의 성지가 되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은 후부터였다. 공부삼아 일본어 문고판을 사전 찾아가며 읽었는데 그 덕에 더 애틋해진 책이다. 후에 한국어판으로 유려한 흐름에 정신을 맡기고 한 번 더 읽었다. 영화까지 보았으니 '인연'이 있는 작품이다. 교회의 첨탑, 빨래가 널려 있는 창, 끝없이 이어지는 적갈색 지붕과 사랑의 낙서들. 이국적 풍경과 피렌체 두오모가 가지는 상징들을 동경했다. 어느 겨울, 준세이가 자전거를 타고 복원장으로 향했을, 피렌체 좁은 거리에 나는 서 있었다. 준세이와 아오이의 10년 전 약속처럼, 나도 책을 읽은지 10년 만이었다.


 좁은 계단을 한 걸음씩 올랐다. 추위를 잊었다. 간혹 뚤린 창으로 비치는 피렌체의 풍경이 다리를 위로했다. 계단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마음이 쓰였지만 계속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나의 준세이가 그곳에 있을리 없었다. 천천히 두오모에 오르는 여정만으로도 나의 낭만은 량 초과였다. 현실이, 품어왔던 환상보다  더 극적이었을 때 기쁨의 셔터 소리가 펑펑 울렸다.  2010년을 코앞에 둔, 고층 빌딩이 익숙한 동아시아인은 당장이라도 단테가 살아돌아올 것 같은 그 풍경과 사랑에 빠졌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책과 사진기는 든한 동행자였다. 금도 좋은 글, 은 사진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없는 아마추어지만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망했다. 예술가 지망의 DNA가 매체를 바꾸어가면서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쳤다. 필름 사진기가 일정 노동량을 달성하고서도 잔업에 시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예민하게 두리번거리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는 것이 글과 사진의 공통점라 생각했다. 을 포장지 삼아 추억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기까지 와서 뻔한 사진은 찍고 싶진 않았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청개구리가 되어야 했다. 잘 찍은 사진의 필요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힘이 들고 어깨가 무거웠다.


 외로움은 좋은 친구였지만 때때로 나를 울적하게 했다. 까르보나라에서 나는 향은 견딜 수 없었고 우피치 미술관은 이른 폐장을 했다. 눈을 크게 뜨고 걷는 것에 지쳤을지도 모른다. 길 한 복판에 우두커니 섰다. 눈에 익은 두오모 올려다 보였다. 힘을 내려놓,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늘 있어지만 보이지 않던 것이다. 낯선 것만 보려다 익숙한 것에 반격을 당했다. 하늘이 하늘다운 나라였다.


 구름이 이따금
 달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쉴 틈을 주네


 바쇼 하이쿠의 시가 떠오르는 하늘이다. 여백 속에 나만 아는 마음의 말들이 숨어있다. 많은 사진들이 인화되었지만 좋아서 자주 보는 것은  사진이다. 가보지 못한 광활한 곳의 풍경 사진도 독특한 시선이 담긴 예술적 사진도 좋다. 그러나 일등은 아니다.  내 서툰 여행일기나 고백 편지가 '냉정과 열정 사이보다' 더 애틋하듯이,추억이 여백 곳곳에 숨어 있어 힘 내려놓고 떠올려볼 수 있는 사진. 그것이 내겐 좋은 사진이다. '쓰여진 글 좋은 글'이란 명제는 참이나 '좋은 사진 잘 찍은 사진'이란 역은 성립하지 않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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