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터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진 Mar 02. 2022

‘국민 시인’ 나태주 “시답지 않은 시를 써라”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었듯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거창하고 복잡한 말이 아닌 사랑 어린 말들이다. 이런 이유로 '풀꽃'(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으로 대표되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전국민에게 애송되고 있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앞두고 서울 서교동 카페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사랑과 애틋함이 흘러넘치는 그의 시어로 올 한해의 시간을 다복한 에너지로 채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50년 동안 시를 썼고, 43년 동안 교단에 섰으며, 40권이 넘는 시집을 펴낸 나태주 시인. 시간의 더께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시는 젊음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얼마전 50년 간의 시인 생활을 결산하는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나태주/ 열림원/ 2019년)를 출간했다. “시는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깎아내는 것”이라는 시론을 펼치는 그에게서 오랜 기간 혼자서 쌓아온 부드럽지만 굳건한 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무학자 시인…지나고보니 소외가 재산 됐다”


Q 시인 생활 50년을 맞으셨습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인데 지금껏 나는 어떤 파에도 끼어들지 못했어요. 그래서 매우 힘이 들었어요. 문단에서 위치나 파워까진 바라지 않지만 대우 면에서 많이 소외 됐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늙어보니 오히려 이것이 더 좋아요. 자유스럽지요.


Q 자유롭다고요?


난 파당 없고, 외롭고, 촌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나는 무학자 시인이에요. 대학에서 따로 시를 배우지 않았고 시를 많이 쓰는 선배의 손이 가지도 않았죠. 그래서 그냥 촌스러운대로 나답게 남아있었어요. 그것이 지난 50년 동안 서럽고 외로웠는데 지나고보니 재산이 됐어요. 늙고 보니 외로운 게, 소외가 재산이 된 거예요. 마이너 자체가 재산이 된 거예요. 옛날에는 교수 시인이 겁나게 귀했어요. 지금은 교수 시인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이젠 교수 시인이 아닌 시인이 더 귀한 시대가 왔죠. 더 쉽게 말하면 옛날에 보리밥만 먹을 땐 쌀밥이 굉장히 귀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보리밥이 귀해요. 그래서 나는 보리밥이에요, 하하. 나는 보리밥의 간판을 내리지 않고 그냥 보리밥으로 있겠어요.


Q 이번 시집은 신작시 100편, 독자 애송시 49편,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중 어떤 시에 가장 애착이 가나요?


그런 건 크게 의미가 없어요. 시는 시인이 쓰는 거지만 시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은 독자의 마음이에요. 특히 ‘풀꽃’만 해도 내가 그 시를 내세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독자들이 나를 ‘풀꽃 시인’이라고 불러주는 건 독자들이 준 칭찬이고 선물이고 훈장이에요.


Q 복잡한 세상에 작가님 시가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표현이 쉽고 단순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시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있어요. 보편성은 삼각형으로 보면 밑변이에요. 특수성은 꼭지점이고요. 김소월 선생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밑변이 넓은 거예요.(삼각형 모양을 그려보이며) 보편성이 넓어서 독자층이 넓은 거죠. 윤동주 선생도 그래요. 그런데 이상 같은 시인은 예각삼각형처럼 밑변이 좁아요. 보편성이 부족하고 독자층이 좁다는 뜻이에요. 나는 보편성을 될 수 있으면 넓게 하고 싶어요. 더 넓은 둔각 삼각형으로 가고 싶어요.


Q 작가님께서는 원래부터 보편성이 넓은 시를 추구하셨습니까?


초기엔 나도 상당히 ‘시 다운 시’를 썼어요. ‘시 다운 시’라는 건 남의 시와 비슷한 시란 뜻이에요. 그런데 중기로 오면서 ‘시답지 않은 시’를 쓰고 싶었어요. ‘시답지 않다’는 말은 ‘남의 시’답지 않다는 말이에요. 어디에서 본듯한 시가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시를 쓰고 싶었다는 거지요. 그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이 최근의 시예요.


Q 시어는 어떻게 채집하십니까?


나는 생활에서 사람들과 주고 받는 말에서 시를 찾아요. 저 사람(출판사 마케터를 가리키며)이 아까 내게 ‘입구에 서 있겠어요.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한 말에서도 시가 한 편 나올 거예요. 다니다 급할 땐 휴대전화에 써요. 어떨 땐 말을 한 본인한테 써서 보내기도 해요. 그럼 시가 굉장히 다이나믹해지고 생동감이 생겨요. 시적인 대상이 확실하게 있으니까 시도 확실해지는 거예요. 그런 시를 시집에 넣으면 독자가 “이게 나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상대가 하는 말의 어투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요. 말을 한 사람이 20대라면 20대 독자들이 그걸 딱 받아들여요. 나는 늙었는데도 젊은 말투를 받아들여 훔치는 거지.


Q 훔친다고요?


T. S. 엘리어트란 시인이 말했어요. “위대한 시인은 훔치고 졸렬한 시인은 빌린다” 훔친다는 건 완전히 내 것으로 가져오는 거예요. 가져오긴 했는데 저 사람의 흔적이 지워지고 내 것으로 바뀐 거예요. 이 얘기를 누가 또 받아썼느냐면 피카소가 썼어요. “위대한 화가는 훔치고 졸렬한 화가는 빌린다” 스티브 잡스가 그걸 갖다 쓸 수도 있어요. “위대한 아이디어맨은 훔치고 졸렬한 아이디어맨은 빌린다” 아까 말한 ‘시 다운 시’가 빌린 것이라면 ‘시답지 않은 시’는 훔친 것이죠. 그래서 나는 “졸렬한 시인이 되지 말고 위대한 시인이 돼라.”고 얘기해요. 사람을 훔치고 물건을 훔치고 돈을 훔치면 죄를 받는데 아이디어를 완전 내 것으로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들면 그건 내 것 되는 거예요.



“유식, 유창, 현학적으로 쓴 시는 실패…인류 전체에 적용할 수 있어야”


Q '풀꽃'이 교사 시절 풀꽃 그림을 너무 빨리 엉터리로 그리는 아이들에게 화가나 잔소리하다가 쓰신 거라죠?


애들한테 잔소리 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풀꽃’이란 시는 아이들한테 받은 선물이에요. 그런데 이건 내 덕이 아니에요. 선물이란 뜻은 공짜로 받은 거란 거예요. 내가 그걸 받을만한 바탕을 하긴 했겠지만 예상 밖으로 들어온 소득이죠.


Q 초등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시를 쓸 수 없었겠지요?


아이들의 어법을 많이 활용하면서 생활을 했지요. 제가 입에 발린듯 말하는 창작 원칙 ‘쇼트(SHORT)’. ‘심플(SIMPLE)’, ‘이지(EASY)’, ‘임팩트(IMPACT)’가 그 당시 생활에서 온 거예요. 시라는 것은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의 혀자르기 말이에요. 너무 유식하게 유창하게 현학적으로 복잡하게 말하면 너도 나도 실패예요. 괴테가 얘기했어요.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겐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다” 그래서 시는 계층과 세대와 대상을 뛰어넘어야 해요. 더 좋은 시는 인류 전체에 적용이 돼요. 시도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면 안 돼요.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어야해요. 그것의 표본이 ‘풀꽃’이에요. 제가 가끔 ‘풀꽃’ 때문에 외국에도 갑니다.


Q 외국 독자들 반응은 어때요?


한국 독자와 비슷하죠. 다들 공감하는 거죠. ‘샤이라’라고 하는 알제리 독자는 내 시를 읽고 한국에 두 번 왔다가기도 했어요. 첫 번째는 내 돈으로 초대했고 두 번째는 자기가 돈 벌어서 왔다 갔어요. 제겐 영광이에요.


Q 드라마에서 박보검, 이종석 등 유명 배우가 작가님 시를 읽어 화제가 됐습니다.


정작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건 잘 못봐요. 텔레비전을 잘 안 보니까. 따로 영상을 찾아볼 땐 있죠.방송에 나오면 책 파는 데 도움이 되지 뭐.(웃음) 그러다가 어떤 때는 시집 순위 5개 중에 1위 3위 5위에 들어갈 때도 있어요. 다른 시인들한테 미안하죠.


Q 작가님의 시는 젊은이들에게 유독 사랑 받고 있지요. "시라는 문학형식은 젊은 사람의 몫"이라고 북DB와의 지난 인터뷰에서도 말씀 하셨어요.


시는 젊은 사람의 몫이죠. 그러면 노인네는 없냐? 아니죠. 마음 속에 청춘을 간직하면 노인도 충분히 청춘일 수 있죠. 그리고 좋은 인생은 노년기에 청춘이 가 있는 거예요. 하드웨어는 늙은이인데, 소프트웨어는 어린이에요. 마음이 늙지 않아야 해요. 그걸 ‘늙은 아이’라고 해요. ‘아이 늙은이’가 아니에요. 늙었는데 마음이 아이인 거예요. 그래서 청춘의 문학이에요.


Q 시인이 아이의 마음을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시인은 젊은 사람을 자꾸 봐야 해요. 제 시중에 ‘늙은 시인’이란 시가 있어요. ‘아이들은/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보는데/ 자꾸만 노인들이 나를 흘낏거린다.’ 무슨 소리냐면 내가 늙었다는 소리예요. 길거리를 보세요. 애들은 절대 노인네 안 봐요. 애들은 애들 봐요. 젊은이는 젊은이들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기분 나쁘게 노인네들이 자꾸 나를 보는 거죠. 그 다음 싯구가 답이에요.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을 본다’ 그래서 제목이 ‘늙은 시인’이에요. 내 마음 속의 청춘과 아이 얘길 하는 게 늙은 시인이 할 일이에요. “허리 아파 죽겠다” “나 언제 죽을지 몰라” “인생 허무하다” “나 오늘 치과 갔다와서 이빨 뽑았다” 이런 걸 쓰면 시가 아니에요. 시는 자기에게 상실된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쓰는 거예요.


Q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요즘 세대들은 '성공'보다 '성장'을 원한다고 합니다.


일단 ‘성공’보다 ‘성장’을 바라는 건 참 좋은 상태예요. 아인슈타인이 말했어요.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돼라’ 젊은이들이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성공도 따라오게 됩니다.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장땡이다’란 말이 있죠. 방법과 수단이 나빠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젊은이들이 목적 달성뿐 아니라 과정이나 방법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렇게 된 이유는 일단, 인생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이에요. 경제적으로 옛날보다 좋아졌고, 또 수명이 늘어났어요. 옛날엔 오래 안 사니까 빨리 장가가서 빨리 애 낳았잖아요. 마지막 하나는 능력이 생긴 거죠. 특히 여성들이요. 옛날엔 취직의 수단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죠. 과거보다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봐요. 성공보다는 성장을 추구하는 태도에 매우 찬성이에요.



“2020년 새 날의 새 사람이자 첫 사람으로 살아가길”


Q 신년을 맞아 독자를 위한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니고, 새 날이고 첫 날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내가 살아야 할 남은 삶의 총량 가운데 새 날이고 첫 날이에요. 나는 그 새 날의 새 사람이고 첫 사람이에요. 새 날과 첫 날을 새 사람과 첫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행여 둘째 사람, 헌 사람으로 살지 말기 바라요. 그리고 하나 더 부탁을 한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에요. 사람은 천사가 아니에요. 그러나 세상을 천국으로 생각하고 살려고 노력하면 때때로 세상이 천국이 되기도 할 것이고, 내가 천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애쓴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거예요. 그럼 그 사람도 나에게 천사가 될 것이고요.


Q 작가님의 2020년 목표는 무엇인가요?


없어요. 예를 들면 1월 달에 책을 쓴다던가 그런 건 계획이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서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에요. 영화 ‘기생충’ 봤어요? 물난리 나서 온 가족이 운동장에 대피해 있으니까 기태(송강호 분)가 아들에게 말하잖아요.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은 없어도 내가 바라는 바는 있어요. 욕 안 얻어 먹고 밥 안 얻어 먹자. 밥은 앞으로 얻어 먹고 욕은 뒤로 얻어먹는데 앞으로 뒤로도 얻어먹지 않길 바랍니다.



- 사진 : 임준형(카탈로그원)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 1. 8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9208

매거진의 이전글 요조×임경선 “웃긴 여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