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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r 02. 2022

소설가 공지영 “문학은 나의 밥벌이이자 구원”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몰로 뒤숭숭한 시국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비일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 ‘사랑’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이럴 때 사랑의 기억과 그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묻는 소설이 있다. 바로 공지영의 신작 소설 <먼 바다>(공지영/ 해냄/ 2020년)이다. 40년 전 헤어진 첫사랑 ‘요셉’과 미국 뉴욕에서 해후한 중년 여성 ‘미호’. 거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여덟 살 여름의 잊혀졌던 기억의 퍼즐 조각을 되찾고, 비로소 충만한 삶을 회복하게 되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가장 순수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그 첫사랑의 온기를 연료 삼아 우리는 남은 생의 순간을 무사히 살아나가는 것인지 모른다. 이 소설은 다시 그 애틋하고 절절한 첫 번째 사랑, 그리고 성숙한 사랑의 순간으로 독자들을 소환한다. 2월 말 서울 서초동 한 카페에서 작가 공지영을 만났다.

“힘들게 쓴 소설, 빨리 읽힌다는 말 싫어요”

Q 요새 섬진강 근처에 살고 계시다고요?

서울에서의 삶이 영화와 빠른 템포의 드라마 같은 것이라면 섬진강 근처에 사는 건 천천히 시를 읽는 삶이에요. 나는 의식을 못하고 섬진강 쪽에 집을 얻은 것인데 알고 보니 내가 사는 그 곳이 박경리 선생의 <토지> 배경이 된 마을이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지> 1부를 읽고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막상 직접 그 곳에 살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섬진강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고 곧 완전히 이주할 계획이에요.

Q 이번 작품은 본격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회 고발성 전작(<도가니>, <해리>)에 비해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데요.

주변 분들이 이번 책을 읽고 난리가 났어요. 개중 한 분이 그랬어요. “언니 정말 힘 뺐다, 정말 맨 얼굴로 담담히 얘기해주는 것 같아.” 내 스스로가 (사회 이야기를 쓰는 게) 너무 지겨워서 그랬어요. 사람들이 내 소설 빨리 읽힌다고 하는 말이 너무 싫어요. 나는 정말 힘들게 썼는데.

Q 사랑에 관한 소설과 사회 고발 소설, 둘 중 어떤 글쓰기가 더 어려운가요?

다른 종류의 힘듦인 거죠. 그건(사회 고발) 그 자체 내용 때문에 힘든 거고 이건(사랑) 문학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힘들어요. 이게 좀 더 재밌긴 해요. 나중에도 좀 마음도 맑아지고요. 이제 고발은 다큐멘터리에 맡기려 합니다.(웃음)

Q 하지만 둘 다 의미 있죠?

의미가 있죠. 왜냐하면 인간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니까.

“사랑을 얘기하면 죽음과 절망의 기억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Q 주인공 미호는 첫사랑 요셉과 40년만에 미국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서 해후하고,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잊혀졌던 기억을 마주합니다. 장소 설정의 배경을 말씀해주시겠어요?

하나(자연사박물관)는 너무 옛날이고, 다른 하나(그라운드 제로)는 너무 처참한 사건이죠. 2억 5천 년의 시간 앞에서 두 사람의 40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는 게 재밌었어요. 그라운드 제로는 두 사람이 죽음의 공간 속에 들어가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불러내는 그런 대비를 이끌어내고 싶었어요.


실제 그라운드 제로에 갔을 때 죽음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모두는 어차피 언젠가 죽잖아요. 죽어야 할 존재인 우리를 좀 더 잘 살게 해주는 것이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생에서 이기적이지 않았던 사랑의 기억을 얘기한다면 죽음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죠.


Q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하세요?

상대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요. 나는 그게 사랑의 원형이라 생각해요. 보통 첫사랑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하지 않잖아요. 노년이 돼선 손주를 향한 사랑이 가장 그 원형에 가깝고요. 이들 사랑의 공통점은 상대의 존재 외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Q 작가님 개인적 첫사랑의 기억도 이번 작품에 녹아 있나요?

우리 성당에 다니던 신학생을 혼자 짝사랑했었어요. 그게 내 첫사랑이에요. 그 경험은 안 들어갈 수가 없죠.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고 그때의 심정은 내가 잘 알고 있어요.

Q 첫사랑의 추억을 되풀이해 생각하다가 아련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나요?

아뇨. 아련함이 더욱 또렷해졌어요. 원래 글쓰기에는 추억을 완성하고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잖아요. 일기 같은 걸 써보면 알잖아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첫사랑은 내게 아련한 채로 확실해졌어요. 그림으로 치면 뿌연 그림이 확실해진 거죠. 옛날엔 번지고 그랬는데 이젠 액자에 넣어서 볼 수 있을 만큼요.(웃음)

Q 주인공 직업이 문학 교수입니다. 이렇게 직업을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작품에 ‘문학’을 좀 많이 넣고 싶었어요. 요새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는 매일 드라마 얘기뿐이잖아요. 드라마에 좋은 구절 하나 나오면 타임라인이 난리가 나죠. 물론 그것도 좋은 현상이에요. 하지만 문학의 활자 느낌도 너무 소중하고 향기롭잖아요.

Q 문학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있다면요?

작년에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어요. 문학은 저의 밥벌이이고 구원이에요.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더 문학을 강조하는 작품들을 쓰고 싶어요.

Q 작품에서 미호와 요셉이라는 주인공 본명이 등장하지만 작가님께서는 그들을 계속 그/그녀로 호명하십니다. 덕분에 3인칭 시점이어도 1인칭처럼 매우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돼요.

내가 우리 말 중에서 ‘그’, ‘그녀’를 제일 좋아해요. 영어의 ‘He’, ‘She’ 보다 예뻐서 자주 써요. 소설을 구상한 뒤에 가장 고민하는 게 이 책의 톤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요. <즐거운 나의 집> 같은 경우는 발랄한 소녀의 입장에서 ‘나’라고 일인칭을 써야 하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경우에는 유정이란 여자가 ‘나’라고 하지만 그 톤은 굉장히 어둡고 음울한 톤으로 가야했어요. <먼 바다>는 굉장히 시 같은 느낌으로 가려고 했어요.

Q 장면 전환도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지더라고요.

그것도 절제를 많이 했어요. 굳이 너무 많이 설명하면 시적인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 여백을 많이 두려 했죠. 나머지는 각자의 첫사랑의 기억으로 채웠으면 해서요.

“김치, 된장 담그듯 과거의 상처 넣어둔 채 오늘의 삶을 살아야”

Q 이번 소설에서 ‘과거와의 화해’라는 화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단순히 개인을 파괴하는 외상이 아니라 성장으로 향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함을 깨우쳤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상처를 건강히 잘 이겨내고 과거와 화해하기 위한 팁을 조금 주신다면요?

좀 놔둬야 해요. 김치나 된장을 담가서 항아리 속에 넣어두듯 과거의 시간도 넣어두고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그것이 완전히 숙성되어서 다른 것으로 변해 있는 걸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때서야 그 과거를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내가 오늘을 잘 살아야 과거도 아름다워져요. 오늘을 망쳐놓으면 아무리 빛나던 과거도 다 나의 오늘을 망치는 재료로 쓰이고 내가 오늘을 잘 살면 과거의 고통도 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재료로 변하죠.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순 없어요. 시간이 가야 해결되는 게 너무 많아요.

Q 마지막으로 한국 문학 제도에 대한 얘길 해볼께요. 최근 이상문학상 논란으로 문학계가 뜨겁습니다. 김금희, 최은영 작가님이 제기한 저작권 논란 및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의 절필 사태로 인해 작가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요. 선배 작가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일단 그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무척 아팠고 선배로서 미안했어요. 저는 제 동기들이 심사해서 이상문학상을 받았어요. 너무 어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거기에 아무 가치를 두지 않았죠. 그 배경에는 문학의 전성기에 책을 팔았기 때문에 생계에 큰 위협이 없었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 같은 경우는 상의 이력이 있어야 삶을 이어나갈 수 있잖아요. 그렇게 창작 조건이 달라졌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문단의 비리는 끝없이 고발 되어야 해요.

다만 비리보다 문학이 더 소중하잖아요. 그래서 문학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해요. 그런 방식으로 저항하지 않았으면 해요. 차라리 그런 것들을 문학으로 표현해내면 좋겠어요. 소중한 걸 하려면 더러운 게 따라오죠. 그래도 소중한 걸 지켜내려면 소중한 걸 더 강화시키는 방법 밖엔 없어요. 버리면 안 돼요. 문학이란 걸 계속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충고를 해주고 싶어요. 어느 분야나 그렇듯 이 세상에 순수한 것은 없어요. 수학 공식이 가장 순수하고 나머지는 순수하지 않아요. 그러니 문학을 포기하지 말고 쭉 썼으면 좋겠어요.

Q 올해에 또 한 권의 책이 출간 예정이라고요. 미리 내용을 살짝 소개해주신다면요?

사람들이 나에게 하도 인생 상담을 해와서 책으로 인생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내가 어떻게 고통을 극복해서 행복해졌는지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에요. 섬진강을 걸으면서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고, 부제가 ‘섬진산책’이에요.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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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3 북DB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9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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