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터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진 Mar 02. 2022

소설가김연수“죽이려 해도 안 죽는 인물에 관심이 가요”



천재 시인 백석. 그의 곱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정치적 찬양시를 강요하는 북한 사회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세계를 살아가는 시인이 제게서 오지 않은 말로 시를 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백석은 199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말년의 34년간 시를 쓰지 않은 채 보낸다. 원하는 시를 쓸 수 없던 그의 절망은 얼마나 깊은 암흑색이었을까? 2020년의 남한 소설가 김연수가 백석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김연수가 8년만에 들고 나타난 신작 <일곱 해의 마지막>(김연수/ 문학동네/ 2020년)은 한동안 번역 작업에 몰두하던 백석이 1956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실의 수령을 호명한 시 ‘나루터’(1962년)를 발표하기까지 7년의 세월을 다룬다.


“한 시인이 안 쓰는 과정, 세속적으로 봐서는 실패하는 사람이 되는 건데 이 사람이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이건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 하게 됐어요.”


김연수의 이번 소설은 백석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기록, 사진 등 사실적 자료에서 시작했다. 백석이 안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를 밝히고 한 개인이 완전히 굴복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도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자료로 확인이 불가능한 여백의 자리는 김연수 특유의 따뜻하고 밝은 상상력으로 채웠다.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없는 사회에 살며 좌절해야 했던 백석이지만 그의 인생은 패배가 아니었다고 위로의 신호를 보낸다. 이러한 김연수 작가의 ‘다시 쓰기’는 동시대의 독자들에게도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선물한다.


지난 7월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김연수 작가를 만났다. 진솔하고 따뜻한 그의 시선, 그의 대답 속에서 ‘인생’이라는 단어는 곧잘 ‘글쓰기’로 치환되곤 했다.




“백석이 자기 얘기를 잘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아”


Q <일곱 해의 마지막>은 어떻게 쓰기 시작했나요?


2016년에 이 소설의 후반부가 될 세 편의 연작단편을 썼어요. 당시 진행한 다른 장편이 있어서 이 소설은 원래 사이드 작업이었죠. 올초에 네이버와 오디오북 연재 얘기가 오가면서 이걸 장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앞에서 써놓은 세 편의 앞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거죠. 올해 1월부터 썼고 5월쯤에 다 쓴 것 같아요.


원고지 650매 분량인데 그 중 3분의 1인 240매를 가지고 시작해서 장편으로 만든 거죠. 빨리 쓴 편이에요. 하지만 연작 단편을 쓸 때부터 자료는 보고 있었기에 모은 자료를 가지고 장편을 끝내는 기간만 그 정도 걸린 거죠.


Q 시인 백석에 관한, 그가 살던 사회와 시대에 관한 소설입니다. 한 인물에 강렬하게 몰두하다보니 꿈에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나요?


이야기를 쓸 때 쫙 풀리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요. 이 소설은 모든 게 잘 맞아서 잘 끝났어요. 운이 되게 좋았죠. 제목도 마땅한 게 없었는데 어느 날 ‘일곱 해의 마지막’이란 제목이 딱 보였어요. 만약 영혼 같은 게 있다면 백석이 자기 얘기를 좀 더 잘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줬을 것 같다 싶어요. 쓰는데 누가 제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어요. 제가 쓰긴 썼지만 이 중 몇 개는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있을 정도로요.


Q 백석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대학 다닐 때 선배가 졸업 논문으로 백석에 대해 썼다며 시집을 선물해주었어요. 그 때 백석 시 전집을 처음 보았죠. 당시엔 백석이 해금작가로 소개되던 시기라 정치적인 작가로 오해 했지만 막상 시집을 보니 그런 시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대학 졸업 때쯤 백석이 어떤 사람이고 우리에게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를 알게 됐어요.


분단 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제일 좋은 시 같은데 이런 서정적 시를 쓴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회주의 체제 아래의 북한이라고 해도 남 몰래 시를 썼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면 ‘어떻게 썼을까?’라는 질문, 그게 최초 발단이었어요. 사실 자기 시를 지키기 위해 몰래 썼을 거라는 건 동화적인 생각이었어요. 2000년이 되니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한 시들이 남한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시들을 읽어보니 현실은 그렇게 동화적이지 않고 너무나 가혹한 세계였더라고요. 살아야 하고 그래서 최대한 맞춰주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만 했겠죠. 그 때는 시를 보고 판단을 할 수가 없었어요. 맞춰주려고 이렇게 쓴 건지 아니면 재능이 쇠퇴해서 이렇게밖엔 못 쓴 건지.


백석이 삼수로 쫓겨갈 때 나이가 만 46세였거든요. 제가 백석을 처음 접한 20대 때는 현실감이 없어서 완전 나중 얘기로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제가 만 46세가 되더라고요. 백석이 쫓겨갈 때의 나이가 됐다는 걸 알고 그 심정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인생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마음이었을 것 같은 거예요. 시를 안 쓰고 34년을 사는 마음은 어떤 것일지 들여다보고 쓰기 시작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이 시를 안 쓴 건지 못 쓴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Q 백석이 시를 안 쓴 거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나요?


백석이 쓴 시 중에 ‘흰 바람 벽이 있어’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매료됐는데, 이 두 개의 시를 쓸 당시에 백석은 결혼도 실패하고 직업도 잃은 상태였어요. 이 때 백석이 30대 초반인데 옛날 사람이니 오늘날로 치면 40대 중반쯤 되는 정서예요. 40대 중반의 루저 남성이 쓰는 스타일의 시가 있거든요. 백석의 시도 그렇게 시작하는데 두 시의 결말에 가면 백석이 항상 고개를 드는 동작을 해요.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는 누워 있다가 벽을 보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도 괴롭게 있다가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하고부터는 다른 게 시작되거든요. 그런 시들을 봤기 때문에 백석이 자신의 실패를 대할 때 뭔가 다른 방식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러자면 이 사람은 (자신의 삶이)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아마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못 쓴 건 아니고 안 쓴 것일 것이다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어요.


백석이 북한에서 했던 작업을 다 읽어보니 자기가 쓴 시와 번역한 결과물이 대비가 되더라고요. 번역물은 소련 작가들이 쓴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검열이나 간섭을 못 했어요. 하지만 자기가 쓰는 시는 검열도 비판도 심했기 때문에 투박하게 일부러 못 쓴 거죠. 그걸 확인하고 나서는 확실히 안 쓴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시인이 안 쓰는 과정, 세속적으로 봐서는 실패하는 사람이 되는 건데 이 사람이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이건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 하게 됐어요.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세계가 가한 압력에 굴복해야 하는 모양이 취해졌을 때 개인은 완전히 굴복당하고 마는 걸까? 아니면 여기서 빠져나올 방법이 있는 걸까? 여기에 답하는 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Q 백석이 처음으로 현실의 수령을 호명한 시 ‘나루터’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슬프지만 좀 웃겼어요. 너무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쓴 느낌이 역력했거든요.


그 시가 엉망진창이에요. 시의 끝에 가면 ‘다시’라는 표현이 겹쳐서 두 번 나오는데 백석이 시를 그렇게 쓸 리가 없죠. 합평하면서 다 고쳤기 때문에 백석이 썼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면 인생 자체가 그렇게 보이게 돼요”


Q 2020년의 남한 소설가 김연수가 20세기를 살다간 시인 백석에 대해 쓴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이야기라는 것은 들려주기인데요. 백석의 생애처럼 어떤 근원적인 이야기가 존재할 때 저는 이걸 ‘한 시인이 시를 안 쓰게 된 이야기’로 썼지만 어떤 사람은 ‘시를 못 쓰게 된 이야기’로 쓸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죠. 가혹한 체제 아래의 허약한 인간을 그리면서 ‘인간들은 다 불행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거예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이야기를 계속 고치는데요. 잘 쓰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일을 수많은 버전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본인 자신의 인생도 수없이 다른 버전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이야기의 속성이에요.


자신의 인생을 최대한 밝은 버전으로 이야기해보라고 했을 때 보통은 잘 못하죠. 고착되어 있고, 트라우마도 있어서 괴로운 버전으로밖에 안 돼요. 그래도 억지로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면 인생 자체가 그렇게 보이게 돼요. 처음엔 거기 동의하기 굉장히 어려운데 한 번 듣고나면 이렇게도 이야기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위로는 온다고 보거든요. 좋은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위로도 넓은 시야에서 와요. 우리는 눈 앞에서 밖에 못 보는데 소설이 인생 전체를 넓게 보여줄 때 갑자기 벅차오를 때가 있거든요.


Q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위로네요.


이런 점에서 소설과 논픽션은 달라요. 논픽션은 사실대로 써야 하는 거고요. 소설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 거예요. 해석의 문제죠. 백석의 이야기도 다른 소설가가 얼마든지 또 쓸 수 있어요. 실제 본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다는 이 사실만 있는 이 사람을 제가 어떻게 재구성을 했는지 저한테 좀 더 중요한 문제였어요.


Q 계속 다시 쓰고 고쳐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진 않으신가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개인 능력에 의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쓰기는 외부와 부딪히면서 나오는 거예요. 도움을 많이 받아야 돼요. 길 가다가도 도움을 받고요. TV 보다가도 도움을 받고. 세상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는 거죠. 골방에 쳐박혀서 머리를 쥐어짜고 그런 이미지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 거죠. 그게 천재적인 작가 이미지예요. 괴로우면 좋은 글을 못 씁니다. 저는 천재 개념이 없고 작가는 글 쓰는 기술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생활의 달인’ 같은 TV프로그램을 열심히 봅니다.


Q 작가이면서 번역도 활발히 했다는 점에서 백석 시인과 김연수 작가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백석에게 특별히 이입이 된 지점이 있었나요?


백석이 만 46세 됐을 때 어렵게 쓰지 말고, 문학적으로 쓰지 말라고, 인민들이 알아듣게 직설적으로 쓰라는 압력을 받았는데요. 그렇게 서정적으로 글 쓰던 사람이 그런 압력을 받으면 너무 괴로웠겠죠. 시대가 바뀌면서 ‘대세를 좇아가는 게 옳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을 거예요.


제가 소설을 쓸 때도 제 작품에 대해서 ‘새롭지 않다’, ‘낡았다’, ‘옛날 생각 난다’는 압박을 받아요. 대사가 많고, 쉬워져야 하고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식의 새로운 문학에 대한 압박이 제게도 들어와요. 북한처럼 못 쓰게 하진 않지만 내가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다는 정도의 압박은 있는 거죠. 백석도 그런 시대에 안 따라가고 못 쓰게 된 거죠. 안 씀으로써 우리에게 중요한 시인이 되었다는 걸 알고서는 저도 큰 위로를 받았죠.




“1인칭보다 3인칭이 좋아져…자유를 찾은 기분”


Q 늘 1인칭 시점을 강조해오셨어요. 2013년 ‘문학동네 채널 1’ 팟캐스트에서 1인칭 화자가 판단을 가미한 내레이션을 통해 모순을 드러내야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김연수 작가의 작품 중 흔치 않게 3인칭을 택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이젠 1인칭이 가진 한계가 너무 보여서 그렇게 쓰기가 어려워졌어요. 1인칭 화자는 스스로 미화를 해요. 제가 그걸 못 견디게 됐어요. 예전엔 사변적으로 말하는 게 좋았는데, 그래서 감성 작가인지 모르겠지만(웃음), 시간이 지나면서 1인칭 화자가 자신을 미화하는 걸 못 견디게 되었어요. 이제 3인칭이 좀 더 편해졌어요. 당분간 3인칭으로 가거나 1인칭으로 가도 설명하는 1인칭이 될 것 같아요.


Q 그렇게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어떤 시점에 가면 자기라는 게 굉장히 성가셔져요. 빨리 이야기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를 드러내려고 하다보면 망할 가능성이 많아요. 제 소설 속에 등장한 사람이 무슨 생각할 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혼자 논평하고 있을 때도 있죠.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 들면서 이런 게 점점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저란 사람은 소설 쓰는 기술자 정도로만 남아야지 너무 나서면 소설 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Q 스스로에게 좀 더 엄격해지신 건가요?


아니요. 오히려 자유를 찾은 것 같은데요. 소설에서 꾸미지 않아도 되니까요. 산문도 나 자신에 대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왜곡이 돼요. 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위선적으로 쓰는 식으로 중간을 지키기가 되게 어려워요. 그 중간에서 쓴 산문이 작년의 <시절 일기> 같은 산문이에요.


Q 작가님께서는 줄곧 개인에 관심을 보여오셨는데 작가님께서 관심을 갖는 개인은 주로 어떤 사람인가요?


어렸을 땐 대의를 위해 죽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고요. 지금은 “너는 완전히 끝났어”라고 했는데도 안 죽는 사람에 관심이 많아요. 끝까지 안 죽고 버티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백석이 대표적인 경우죠. 시인으로도, 시민으로서도 끝났는데 34년이나 더 살았거든요. 그 원동력이 뭔지가 궁금했어요.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안 죽는 사람들.


Q 백석이 끝까지 안 죽고 버틴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백석이 가진 밝음의 힘이겠죠. 북한에서 쓴 글들을 봐도 이 사람한테는 그런 밝은 자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자살하지 않을 수 있는 힘. 그게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심성일 것 같고요. 그게 없었다면 자기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라고 하면 자살했겠죠.



“다작의 비결? 쓸 수 있으면 썼기 때문”


Q 현재 작가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것인가요?


불교에 관심이 많아요. 불교 책을 계속 읽는 게 요즘 취미예요. 경전도 아니고 불교 관련 신간이 나오면 계속 찾아 읽어요. 예전엔 여행 책을 많이 읽어서 여행 책이 있으면 샀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불교 책을 수집하듯이 읽고 있어요.


Q 진행 중인 작품을 여러 편 서랍 속에 넣어두고 병행해서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현재 몇 작품 정도 가지고 계세요?


지금 쓰고 있는 게 하나 있고요. 한 네 편 정도 가지고 있는데 다 역사 소설이에요. 지금 쓰는 건 임진왜란 때 이야기고 다 종교인과 관련된 이야기예요. 세 개는 카톨릭과 관계가 되고. 하나는 혜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혜초는 예전부터 쓰고 싶었어요.


Q 그 작품들도 언젠가는 세상에 나오겠네요?


모르죠(웃음)


Q 단편집이나 산문집 출간 계획도 있나요?


제가 읽은 소설과 거기에 맞는 음악을 연결해서 쓴 글들이 있는데요. <청춘의 문장들>과는 조금 느낌의 책으로 올해 안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Q 거의 매년 새로운 책을 내시는데요. 이런 다작의 비결은 뭔가요?


쓸 수 있으면 썼으니까요. 물론 쓸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요. 다만 저는 다른 취미가 거의 없어요. 책만 읽고 영화도 안 보고 드라마도 안 보고 음악만 들어요. 잡기가 능한 유형이 아니죠. 불교책 수집 정도 하고요.(웃음) 그 외에는 크게 돈을 쓰지 않아요.


Q 작가님께서는 이야기를 쓰는 것과 읽는 것 중 어떤 게 더 재밌나요?


원래는 읽는 게 더 재밌었죠. 저보다 잘 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제게는 록스타 같은 존재였어요. 그런데 글을 잘 쓴다는 게 뭘까요? 제가 오랫동안 쓰다 보니 제게 ‘좋다’라는 느낌이 들면 남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아요. ‘이 정도면 보기 좋다’는 느낌. 부수적으로 사람들에게 “좋습니다”라는 말을 듣죠. 말로 할 수 없는데 찝찝한 게 있다면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주변에서 “괜찮아”라고 해도 찝찝할 때가 있어요. 거북한 느낌? 시원한 느낌? 환해지는 느낌? 어두워지는 느낌? 그건 분명히 정확하게 오는 것 같아요. 본인이 사실 제일 잘 알고 있는 거죠.


- 사진 : 임준형(카탈로그원)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 8. 12 북DB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90089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가 공지영 “문학은 나의 밥벌이이자 구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