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마일 클로저> 출간 제임스 후퍼 인터뷰
산을 오르는 일은 곧잘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우리가 산에 오를 때 대략적인 산의 윤곽과 지도만이 있을 뿐, 당장 할 수 있는 건 한 발을 내딛는 것뿐이듯, 삶을 사는 것도 아주 먼 앞날은 알 수 없지만 당장 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야만 한다. 단, 자기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대략의 ‘꿈 지도’를 살펴 가면서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스물아홉 살 영국 청년 제임스 후퍼에게 인생의 힌트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른 최연소 영국인,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동력 종단하는 ‘폴투폴(Pole to Pole)’ 성공.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올해의 모험가’. 이상은 제임스 후퍼를 수식하는 화려한 스펙들이다. 10명의 외국인이 출연해 토론실력을 뽐내는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 ‘영국 비정상’으로 출연한 그는 이같은 화려한 스펙을 등에 업은 엄친아 청년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책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인간 제임스 후퍼’에겐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모험꾼’ 제임스 후퍼의 신간 <원 마일 클로저>는 한 젊은이가 이 세상에 당당히 대면하기 위해 용기를 얻고, 도전하는 거인으로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제껏 화려한 영광에 가려 공개되지 않은 그간의 시련이나 고통, 그리고 고마운 인연을 통해 오늘과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성장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국은 나를 키워준 나라!”
Q <원 마일 클로저> 출간을 축하한다. 다른 비정상회담 멤버들에게 축하인사나 책에 대한 소감 들은 것은 없었나?
아직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항상 친절하고 착한 네팔 비정상 수잔이 “형 축하합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줬다.(웃음) 다음 주에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에 함께 할 멤버들-수잔, 알베르토, 마크를 만날 예정인데 그때 구체적인 얘길 듣게 될 것 같다.
Q 모험가로 활약하던 당신은 아무 연고가 없는 한국에 유학을 와서 일약 유명인이 됐고, 책까지 냈다. 정말 특별한 인연이다.
처음 한국 온 게 2010년 9월이었는데, 그 결정을 내린 것이 불과 그 해 5월이었다. 4개월 사이에 모든 일들이 빠르게 이뤄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절친이던 롭과 모든 모험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완전한 나만의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아예 다른 사회인 한국에 오게 된 거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한국에서 만날 기회를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한국이 나를 많이 키워줬고, 한국에 감사한다.
Q 한국인 부인 정민씨가 직접 번역에 참여한 점이 멋지다. 책에서도 부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입학하고 그때 등산 동아리에서 정민을 만났다. 처음 새로운 나라에 이주하면 여러 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그 때 그녀가 많이 도와줬고, 함께 등산하면서 친해졌다. 옛날에 자전거 동아리 하고, 산악 탐험을 할 때는 모험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사람에 자신감은 없었다. 타인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많이 걱정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쉽게 친구를 못 사귀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이 어색했다. 그런데 정민을 만난 후로 사람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정민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자다. 익숙치 않아서 잘 못해도 끈기 있게 도전할 줄 안다. 그녀는 하드코어 모험가는 아니지만 앞으로 많은 걸 함께 해보고 싶고, 부인과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Q 보통 부인들은 남편이 모험하기 보다는 안정적이기를 원하는데 정민씨는 특별한 분인 것 같다. 모험을 떠날 때 걱정하진 않나?
걱정은 하지만 “조심하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내가 만약에 모험을 안 했더라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거란 걸 정민도 알고 있다. 내년에 미국 남부 사우스 조지아라는 섬에 갈 계획인데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뭘 하든 어딜 가든 어느 정도 걱정은 있지 않나? 걱정이 없으면 이익도 없다. 내가 뭘 할 때 힘들지만, 거기서 많이 배우고 들어올 때 나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여기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응원하면 자신도 행복해져”
Q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신의 성공적인 모험엔 롭 건틀렛이라는 친구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그런 만큼 사고로 롭을 잃었을 때 상심이 컸을 것 같다.
롭은 정말이지 긍정적인 친구였다. 열한 살 때부터 학교 같이 다니면서 자전거 동아리, 클라이밍을 같이 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들은 거의 다 롭과 만들었다. 처음 롭이 죽었을 때 믿을 수 없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행히 롭의 동생과 리처드와 친해지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 난 종교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믿음은 비단 그 사람이 이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의 영향이 세상에 미치고 있다면 그는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롭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조금 더 밝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우간다에 학교를 짓는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도 시작하게 됐다. 롭이 세상에 남긴 영향으로 인해 그곳의 학생들도 교육을 받게 되는 거니까.
Q 책에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어머니 다니의 이야기도 썼다. 이 이야기 공개하는 걸 망설이지는 않았나?
다니는 내 부모이고 어렸을 때부터 이 사실에 익숙해져서 커왔기 때문에 나로서는 공개하는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친한 친구와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 하지만 장모님 장인어른께 불편하지 않을까 가장 걱정이 됐다. 이 문제로 장모님과도 얘기를 했고, 동의를 구해서 공개하게 된 거다. (성전환을 한 어머니 사연에 대해) 조금 더 보수적 반응을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 다행이다. 어제 열린 싸인회에도 아기를 데리고 한 어머니가 오셔서 책에 실린 결혼식 사진에서 이 사람이 다니 맞냐고 스스럼없이 물어보셨다.
한 가지 주의하는 부분은 내 마음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한테는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란 거다. 내 경험만으로 이런 것이 좋으니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Q 그 동안 수많은 모험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세계적인 잡지는 당신을 2008년에 ‘올해의 모험가’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모험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2008년 남극해를 거의 72일 동안 쉬지 않고 항해를 할 때였다. 너무 오랜 기간 땅을 밟지 못하고 잠도 충분히 못 자고 계속 피곤했다. 매일 같은 바다 풍경만 봐야 했고, 사고 나면 제일 가까운 사람이 1000~2000km 거리에 있어 구하러 오는데 일주일 걸리기 때문에 안전하지도 않았다. (머리 뒤를 가리키며) 늘 머리 뒤에 잘못 되면 끝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게다가 날씨도 너무 안 좋고, 바람 불고 파도가 높아지면 10m부터 30m까지 올라가서 너무 무서운 거다. 그런 중에도 너무 심심한 거다. 항해 기간 동안 지구본에선 우리가 하루 100~200km 가는 거리를 확인할 수 없다. 당장 멀리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럴 땐 딱 3시간 후까지만 생각하려 했다. 언제 도착하리라는 큰 희망보단 ‘지금 올라가서 조종하고 내려와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수 있겠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보려고 했다.
Q 당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오베라는 남자> 표지의 오베를 흉내내고 있는 재밌는 사진을 봤다. 실제로 그 책을 읽었나?
부인과 장모님, 장인어른 전 가족이 다 읽었다. 오베는 계속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거부하다가 나중에 받아들이게 되는 인물이지 않나? 장모님이 철학적인 분이신데 이 책을 보며 자신의 상황과도 비슷하다고 생각 하셨다고 한다. (외국인 사위인) 나를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많이 생겼는데 그걸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 고민에 부딪히셨던 것이다.
기부하는 자전거 여행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
Q 기부 자전거 여행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9월에 한국에서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원 마일 클로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를 해줄 수 있을까?
2009년 알프스 몽블랑에서 등산하다가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 롭과 앳킨슨의 도전정신을 기리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다. 세 가지가 중요한데, 첫 번째로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자전거 여행’을 테마로 삼은 것이다. 두 번째는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영향이 세계에 머무르길 바랐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돈을 우간다 학교에 기부함으로써 교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수혜를 입었듯이 말이다. 세 번째로. 다른 일반인에게 모험을 소개시키고 싶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자전거 동아리 활동으로 자신감을 얻어 나중에 큰 모험도 할 수 있었듯이. 그래서 끈기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는 코스를 택했다.
2009년 8월에 영국 최북단 존 오그로츠에서 시작해, 서남쪽 귀퉁이까지 가는 ‘원 마일 클로저’의 첫 번째 여행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프랑스, 2014년에는 프라하에서 영국까지 진행했다. 다가오는 9월 13일 여수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50명이 참여한 코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Q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 유럽의 1000유로 세대, 우리나라엔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처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기가 불안정 하다 보니 현재에 만족하고, 더 큰 꿈꾸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런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한마디 조언이 있나?
친구들 중에도 대기업 들어가기를 고집하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대기업 들어가서도 즐겁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많은 사람이 원하는 직장이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원해서, 돈, 현실이 중요하니까. 한 선택이라면 슬프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라면 돈 많이 안 벌어도 힘들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행복하면 옆에 있는 사람도 행복해 지게 된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서 물론 힘들 때도 있고, 잘못될 때도 있지만, 지금 하고 싶은 걸 안 한다면 그 기회를 다시 언제 가질 수 있겠나 싶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현재 호주 울런공 대학원에서 황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당분간은 학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인간의 이주나 식량생산 방식이 황사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황사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따라가 보기 위해 남미 사우스 조지아를 직접 방문할 계획이고, 내년 봄 3~4월 경 다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연구를 할 계획이다. 내년 여름에도 스페인에서 영국까지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가 열릴 예정이다.
햇살이 쨍쨍한 합정동의 뒷골목, 인터뷰가 끝난 후 점심 먹을 식당으로 향하던 길에 호주에서의 대학원 공부가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땐 미래에 뭘 할건지에 많이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됐다”고, “눈 앞의 몇 시간, 몇 달 단위로 주어진 것들에 충실할 계획”이란다. 역시 모험꾼다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미래이고, 우리는 아주 대략의 지도만을 좇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그의 숱한 모험과도 닮아 있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 북DB 2015.9.8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