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나서
최근 전세계적으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뜨고 있습니다. '긱 이코노미'란 빠른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자 임시직을 주로 고용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긱(gig)'은 본래 하루 정도만 열리는 재즈 연주를 가리키는 말이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긱 이코노미'는 활성화되는 중인데요. 가령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배달 어플이 대표적입니다.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는 배달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습니다. 배달원들은 자영업자로 음식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건별로 수수료를 받아서 수익을 얻습니다. 배민커넥트 라이더 모집 광고도 '내가 원할 때 일하고 싶은만큼만'이라는 카피를 걸고 있죠.
겉으로 볼 땐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일한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매력적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모두 말장난 개수작입니다. 고용 형태가 불안정해지고 노동자로서의 지위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리키도 이런 긱 이코노미의 주요한 부분인 운송업에 막 뛰어든 인물입니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아내와 미성년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두고 있지요.
원래는 건설회사 일을 했는데 이곳이 부도가 나면서 여러 잡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었고, 그러다가 당도한 곳이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택배 회사입니다.(여기에도 영국 사회의 현실이 촘촘히 바탕에 깔려 있지요)
주6일 하루에 16시간을 근무해야 하고, 하루라도 펑크를 내면 배상을 해야 합니다. 배송의 가장 기본적 도구인 밴을 회사에서 대여할 수도 있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밴을 사게 됩니다. 리키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힘겨워하고 가족과도 멀어지면서 이로 인해 여러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아들이 전과범이 될지 몰라 경찰서에 출석해야 했던 날에도 회사에 보상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하다가 괴한들에게 폭행과 절도를 당해 부상을 입었을 때 회사는 이것에 대해 보험 처리를 해주기는 커녕 리키가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자신들이 입은 피해 금액을 보상하라고 합니다. 정말 '자유'라는 허울을 씌워놓고 책임을 방기하고 욕심만 챙기려는 긱 이코노미의 단면을 처절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병원에서의 장면입니다. 리키가 다쳐서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데요. 역시나 돈 얘기를 합니다. 그럴때 옆에 있던 아내 애비는 그 전화를 뺏어 들고 벌컥 화를 냅니다. "일주일에 6일씩 일하고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는데 어떻게 직원이 아니에요? 똑똑히 들어 내 가족 괴롭히지마." 영화 내내 온순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일관하던 애비의 울분은 관객인 저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미혼모 케이티가 음식 배급소에서 음식을 훔치다가 걸려서 비참해 와락 눈물을 터뜨렸을 때 다니엘이 와서 따뜻한 위로를 건내죠.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결성된 것이 사회인데, 이제는 역으로 이 사회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화려한 광고 이미지나 현실의 도피처인 쇼, 예능 드라마 속에 가려져 버립니다. 결국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만날 수 있는 창구는 몇 되지 않습니다. 켄 로치 영화도 그 귀중한 창구 중 하나입니다. 거대한 명성에도 소박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영화감독 켄 로치.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서 떠오른 책이 한 권 있었는데요. 바로 만화 <까대기>입니다. 우리나라 작품으로 작가가 직접 택배 운송 노동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만화로 그렸습니다. <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이 만화를 보면 영국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이 제대로 접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의 영화 이야기는 이것으로 하고 다음에 다른 영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