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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추행 저지른 사제가 떳떳한 이유

영화 <신의 은총으로>를 보고

by 주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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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의 은총으로>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는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인 더 하우스> <타임 투 리브> <8명의 여인들> 모두 너무나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두번째 멜빌 푸포가 출연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타임 투 리브>에서 펼친 연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두 가지만 보다 보니 정작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목과 감독의 전작 간에 괴리가 너무 커서 호기심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프랑소와 오종은 리비도가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영화의 제목은 '신의 은총'으로라니 대체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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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프레나 사건'을 그렸습니다. 프레나 사건이 무엇이냐구요? 프랑스 리옹의 대교구 사제였던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자그만치 70명의 스카우트 아이를 강간 및 성추행한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인 알렉상드르(멜빌 푸포 분)는 성장해서 지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내, 건강하게 커준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러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어린 시절 성학대를 저지른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프레나 신부는 알렉상드르가 어릴 때 단 둘만의 장소로 불러내 그에게 키스하고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을 저질렀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겪은 비극적 사건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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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피해자보호위원회 소속 위원 레진 메르와의 상담으로 말이죠. 레진 메르는 얼핏 보기에 깐깐하고 엄격해보이는 중년 여성입니다. 그녀는 알렉상드르의 말을 천천히 들어줍니다. 알렉상드르의 아픔에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비춥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순조롭게 풀린다면 영화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겠지요. 알렉상드르와 상담이 끝난 뒤 그녀는 프레나 신부가 소속된 리옹 대교구의 바르바랭 주교에게 이 사실을 전하지만 이것을 공론화할 마음은 없습니다. 바르바랭 주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역시 프레나 주교와 한 패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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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당의 주선으로 가해자인 프레나 신부와 피해자 알렉상드르의 양자대면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프레나 신부는 알렉상드르를 어린 시절 자신의 학생 대하듯 대할뿐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변명거리 삼을뿐입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아동성폭력을 저지른 프레나 신부는 결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부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담담히 내가 그랬노라고 말하죠. 이러한 태도는 영화 후반부 여타 피해자를 만나면서도 반복되는데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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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는 프레나 신부의 태도에 크게 낙담하고 성당 측에 파면할 것을 요구하지만 성당은 묵묵부답입니다. 견고한 철옹성 같은 카르텔이 존재할 뿐입니다. 결국 성당의 처사에 실망한 알렉상드르는 프레나 신부와 그의 성폭행을 묵인한 리옹 대교구를 고소합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고소로 바위처럼 단단한 카톨릭 사회를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알렉상드르의 피해는 이미 공소시효를 넘긴 상태. 아직 공소시효를 넘기지 않은 피해자들의 행동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다행스럽게 알렉상드르의 고소가 발화선이 되어 여타 피해자들도 행동에 나섭니다. 프랑수아의 언론 인터뷰로 수십명의 피해자들이 연합하게 돼 '해방된 목소리'라는 단체도 결성하여 단체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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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성추행 사실을 묵인하고 좌시한 필립 바르바랭 대주교는 기자들 앞에서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열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일관되게 문제를 은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한 마디를 남기죠.


"신의 은총으로 프레나 신부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다."


이 모든 병폐의 근원 프레나 신부는 영화 마지막까지 침착하고 뉘우치지 않으며 자신의 성폭행을 부인하지도 않는데요. 처음에는 그가 바보같아서 자신의 만행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프레나 신부는 수십년간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성폭행해온 인물이었는데요. 이제껏 그 사실이 외부에 드러나도 특별한 처벌을 받지 않아왔기에 그토록 침착하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당 교구가 모두 공범자인 것이며 비극적 사건을 계속 발생하게 한 주범이었던 것입니다.

movie_image-7.jpg 프레나 신부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나선 피해자들

누구나 살다보면 집단 속 피해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피해자를 발생시킨 집단은 문제가 외부에 드러나 망신을 당할 것이 두려워 오히려 문제를 은폐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일 개인일뿐인 피해자는 문제 제기를 하고 사실을 바로 잡는 게 몹시 힘이 들지요.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프레나 사건'처럼 수십년간 아동성폭행이 반복해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싸움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정에는 좌절도 눈물도 주변과의 갈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겨운 싸움을 견디고 났을 때 비로소 스스로의 자존을 회복할 수 있고, 또 부정의한 구조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더 많은 연대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영화평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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