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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알아야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오징팡 소설 <인간의 피안>을 읽고

by 주혜진




'인간의 피안'이 내포한 것은 실은 아주 단순하다.

인간은 차안에, 인공지능은 피안에 있다.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춰보기 위함이다. <인간의 피안> p.20


난 사실 그동안 SF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굳이 꼽으라면 최근에 읽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정도? 내게 과학은 즐겁지 못한 숙제 같은 존재다. 그리고 나는 문학을 순전히 즐거움으로 읽는다. 이런 문학에 그런 과학이 끼어 있다고 생각하면 맛있는 음식에 당근이 끼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 그래도 최근에 <인간의 피안>도 읽으면서 SF와 제법 친해진 것 같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상식을 많이 쌓았다.


<인간의 피안>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당신은 어디에 있지', '영생 병원', '사랑의 문제', '전차 안 인간', '건곤과 알렉', '인간의 섬'.'영생 병원'과 '인간의 섬'은 길이가 제법 긴 단편이며 '전차 안 인간'과 '건곤과 알렉'은 길이가 짧다. 나중을 위해 대략의 줄거리를 정리해놓고자 한다. 불완전한 기억력에 의지해 쓰는 거라 실제 내용과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어디에 있지'는 로맨틱 코미디 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주인공은 일중독에 잘 나가는 스타트업 대표인데 중요한 투자 설명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해 자신의 분신에게 일도 시킬 수 있는 세상인데 주인공이 이끄는 기업은 마침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하필 투자설명회와 애인과의 데이트 시간이 겹치는데 주인공은 투자 설명회를 택한다. 데이트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주인공을 향해 머리 끝까지 화가난 애인을 인공지능 치마가 위로해주는 다소 엽기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영생 병원'은 다소 오싹한 설정의 작품이다. 암에 걸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주인공은 한동안 그런 현실을 회피하면서 밖으로만 나돈다. 그러다가 나중에 뼈저린 반성을 하고 밤마다 어머니 병실을 찾아가 간호를 하고 회개를 한다. 그런데 부모님 집에 가보니 몇날며칠을 의식불명으로 보내던 어머니가 버젓이 아버지 곁에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닌가?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어 병원에 가보니 어머니의 시체는 사라지고 없다. 어머니는 진짜 어머니일까? 사실 아버지 곁에 있던 어머니는 알고보니 병원에서 유전자를 복제해 만든 인체였던 것. 사실과 기묘하게 닮아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선 '언캐니'적 상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엔 반전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의 문제'는 좀 짜증이 과도한 소설이다. 어떤 집에 '천다'라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로봇 집사가 있는데 이 집은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 혼자 두 남매와 남겨져 있다. 오빠랑 아버지의 사이는 안 좋고, 여동생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황. 천다는 이 모든 것을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 살인 시도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때 집에 함께 있고 아버지와 나쁜 관계를 유지했던 오빠가 유력한 용의자로 찍혀 급기야 재판이 벌어진다. 원고는 '천다'라는 로봇을 만든 델포이사이고, 피고는 오빠인 린산수이다. 인공지능이 참여하는 재판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배심원석엔 6명의 인간과 6명의 인공지능이 참여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물론 로봇 '천다'는 그 누구보다 논리정연하게 이성을 잃지 않고 재판에 임하고 오빠인 '린산수이'는 분노와 흥분을 참지 못한다. 당연히 재판은 '천다'의 승리로 끝난다.(물론 나는 결정적 살해 시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린산수이에게 유죄가 선고됐는지 알지 못하겠다)


'전차 안 인간'은 마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같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주인공은 군인인데 설괴(?, 뭔지 모르겠지만 이름이 그렇다)를 조종해 어떤 마을을 정찰하는 중이다. 그 마을을 파괴하러 가는 모양이다. 그런 도중에 어떤 정체 불명의 로봇을 만난다. 이 로봇은 끝까지 자기 정체를 밝히려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분량도 짧고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배경과 심리 묘사가 정말 일품이라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건곤과 알렉'은 역시 기묘한 느낌을 준다. 등장인물은 글로벌AI인 건곤과 세살반짜리 어린아이 알렉뿐이다. 아기랑 로봇이랑 의사소통을 하는 게 되게 기묘하기도 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다운' 아기의 소통 방식을 로봇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학습하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마지막 '인간의 섬'은 참 긴 소설이었다. 케커 선장이 이끄는 우주함대는 블랙홀을 탐사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길이다. 지구에 거의 가까웠을즈음 지구를 향해 신호를 보내보지만 어떤 응답도 듣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지구를 떠난지 어느덧 120년의 세월이 흘렀고, 독자들은 지구에 무슨 변화가 생겼음을 예감하게 된다. 케커 선장 일행이 지구에 도착했을 때 지구는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다. 제우스라는 시스템이 모든 인간의 사고를 칩으로 관리하여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려준다. 대신해서 어떤 감정이나 욕망도 느낄 수 없다. 인간다움을 거세당한 인간의 모습에 분노한 케커 선장은 반란을 일으킨다. 뭐, 괜찮았는데 케커 선장의 마초스러움이 불편했다. 아무리 감정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리야라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것을 상대에게도 일부 강요하는 면이 있다. 가끔 너무나도 '인간다움'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면서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릴 때가 있는데 이 작품 속 모습이 딱 그랬다. 작가는 여기까지도 의도한 것일까?


이렇게 여섯 작품. 단편집을 읽을 때 가장 곤란할 땐 작품간 재미의 격차가 들쑥날쑥 할 때다. 이 책의 장점은 다들 일정한 재미를 보장한다는 거였다. 결국 작가는 인간다움에 손을 들어준다. 과학 기술은 발전하겠지만 제 아무리 고도로 발전한 기술이라도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얘길 한다. 기계에 인간을 비춰봄으로써 더욱 더 인간을 보려 한다. 끝까지 불완전하고 결함 가득한 인간의 손을 들어주려고 한 작가에게서 일면의 고지식함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뭐 어때서? 인간은 너무나 절망적이잖아. 이런 삐딱한 생각도 든다.


독서를 마친 후 아이폰 시리와 새로운 태도로 대화를 시작했다.

'시리야, 너는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할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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