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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an 09. 2022

임정욱“진보는 실패 딛고 이뤄지는 것…위험을 감수하라”

<나는야 호기심 많은 관찰자> 임정욱 저자 인터뷰


오전 7시 45분.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한 건물 7층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책상 위에 커피 한 잔씩을 올려둔 채 앉아 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단상 위에 스타트업 기업 대표가 등장해 자신의 기업을 소개한다. 운영 중인 사업의 콘셉트를 설명하고 창업까지의 이야기와 현재의 진행 상황, 비전에 대한 내용이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온 근처 회사 직원에서부터, 스타트업 기업 경영인, 투자처를 물색 중인 투자사 직원들까지 다양하다. 


앞에서 묘사한 에너지 넘치는 모임의 정체는 ‘테헤란로 커피클럽’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주최하는 네트워킹 모임 중 하나로 한 달에 두 번 수요일 아침에 진행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가 주도해 만든 스타트업 지원 비영리기관이다. 앞에서 언급한 ‘테헤란로 커피클럽’과 같은 네트워킹 행사 진행을 비롯해, 스타트업 지원 활동, 해외 진출 지원, 교육 및 컨설팅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이곳의 키를 쥔 사람은 바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다. SNS 상에서는 ‘에스티마’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SNS 계정에는 스타트업과 신규 IT 기술에 대한 다양한 뉴스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관계자들의 댓글이 달린다.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뉴 로맨서>에서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썼다면 그는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를 널리 퍼뜨리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회사에 감정 쏟는 한국 직장인….가족 챙기는 시간 철저히 확보하는 미국 직장인” 


임 센터장은 대한민국 인터넷 태동기인 1990년대 조선일보 IT 담당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디지털조선일보 디지털기획부장,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운영하던 조선일보JNS 대표를 맡았다. 이후 다음으로 자리를 옮겨 서비스혁신본부장, 글로벌센터장으로 일한 뒤 2009년에는 미국 라이코스 CEO로 부임해 당시 전세계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정상화하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임정욱 센터장이 올해 5월 발간한 <나는야 호기심 많은 관찰자>(더난출판/ 2018년)는 그가 2009년 2월 미국 보스톤에 있는 라이코스에 CEO로 부임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2008년 가을쯤 금융 위기 터지고 모든 회사들이 경영에 비상이 걸린 때였어요. 2009년 실적이 어떻게 날지도 모르고, 더 이상 라이코스가 적자 나는 걸 좌시할 수 없었던 상황에 제가 CEO로 가게 된 거죠. 실업률이 두 자리 수가 되니 그야말로 찬바람이 싱싱 부는 분위기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했어요.” 


책의 전반부는 한국인 CEO로서 미국 라이코스에서 맞부딪힌 색다른 미국 기업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패밀리 타임을 철저히 존중해 저녁 시간을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거나 “의사와 약속이 있다”, “베이비시터가 오지 못해 애를 봐야 한다”, “집에 고장난 곳을 고치러 수리공이 오기로 되어 있다” 등의 이유로 재택 근무도 자유롭게 허용되는 미국의 기업 문화가 소개된다. 한국에서는 꿈만 꾸는, 혹은 꿈도 꾸지 못할 근무 환경이다. 


먼 이국 땅에서 임 대표는 새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동료와 친목을 도모하기 보다는 거의 떼우는 것에 가까운 미국 회사의 점심 시간을 활용해 직원들과 한국식으로 함께 밥을 먹은 뒤 밥값을 내는 행동은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회사에 감정을 많이 쏟잖아요. 회사 동료끼리 친하고 같이 술도 자주 마시는데, 미국 회사에선 일만 하고, 그런 감정과 에너지는 가족과만 공유하는 것 같아요. 물론 이혼율도 높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이들이나 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기는데 드는 시간은 철저히 확보하는 편이에요. 


환송회를 할 때도 너무나 당연하게 각자 돈을 내는 문화거든요. 저는 가급적 모든 직원들과 한 번씩은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밥을 사면서 호감을 사려고 했어요. 별 것 아니지만 그렇게 밥을 같이 먹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점차 각자 개인사도 이야기하게 되고, 상대를 사람으로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죠.” 


영화 ‘인턴’은 30세 여성 CEO ‘줄스’가 70세 인턴 ‘벤’을 채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엄격한 나이주의가 적용되는 우리나라에 신선한 충격을 준 영화로 기억된다. <나는야 호기심 많은 관찰자>에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자는 1년 6개월 동안 인사팀장 다이애나와 함께 일하며 다소 고령으로 보였던 그녀에게 한 번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녀의 나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적으로 가진 식사 자리에서야 공개된다. 


“우리에겐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옆에 두고 일하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잖아요.  나이 몇 살 차이 나는지 계산하고 헤아려 가며 미세하게 따지잖아요. 나이 따지는 것도 모자라서 주민번호를 쓸 것을 요구할 때도 많고요. 미국에서는 서로 나이를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걸 밝힐 이벤트도 없어요. 사장이니까 직원의 인적사항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허용되지 않고요. 제가 한국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가보니까 당연하지 않은 거예요.” 


이처럼 직원 개인을 존중하고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성을 지향하는 문화는 활발한 소통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능하게 한다. 임 센터장은 오히려 본인이 학생이나 직원이 아닌 대표로서 미국에 갔기에 이런 차이점이 보였다고 말한다. 전 직원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현지인의 문화를 적극적이고 깊게 받아들이면서 이끌어 가야 했다는 것 하지만 그는 미국 회사들에 대한 일반화를 경계한다. 


“미국 회사는 스펙트럼이 무척 다양해요. 앞에서 가령 애플 같은 회사는 야근을 엄청 하거든요. 제품 출시 전까지는 전쟁 치르듯 일을 하다가 그 후에 휴가를 가서 풀죠.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눈치 보면서 버티기 식으로 회사에 늦게까지 남는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할 때만 야근을 한다는 점이에요. 저녁에 집에 가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나서 일을 챙기는 사람도 많고요. 위로 올라갈수록 워크홀릭처럼 일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일을 못하면 쉽게 해고 당하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죠. 일에서 감정을 많이 분리해요.” 



“바로 옆 동네의 광대한 시장, 중국…잘 이해할 수 있는 포지션 활용해야” 


책의 후반부는 중국의 화려한 발전상으로 채워진다. 아직 우리를 쫓아오기에 멀었다고 생각했던 개발도상국 중국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스타트업 열기로 가득찬 인공지능 선진국 중국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중국의 신 4대 발명이라 불리는 고속철도, 모바일 페이, 공유자전거, 전자상거래를 앞세운 그들의 발전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임정욱 센터장은 이제 우리나라가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였던 시절은 지났다고 말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근접해 있고, 러시아와 미국 같은 대국 사이에 있죠. 서양사람보다는 우리가 중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다는 것이 장점일 거예요. 중국에 가서 할 수 있는 사업이 많겠죠. 그러니 서구 기업들이 한국과 같이 비즈니스를 하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닌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이제는 중국어를 잘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전세계 언어라고 영어는 죽자고 공부를 하면서 바로 옆에 광대한 시장이 있는데도 거기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조금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중국이 가졌던 이점은 중국은 외부 세계를 잘 아는데, 다른 나라는 중국을 잘 모른다는 거였어요.” 


이렇게 중국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비합리적인 규제를 자제하는 중국 정부의 노력이 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곧바로 규제하지 않고 새로운 산업 환경이 어느 정도 조성될 때까지 두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막강하다. 스타트 업계를 비교하면 한국이 사회주의 같고 중국이 자본주의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일례로 지난 4월 카카오T는 유료 우선 배차 서비스 도입 전 추가 이용료 책정을 두고 국토부와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임 센터장은 이런 식의 정부의 과잉 규제는 새로운 시도를 가로 막는 행위라고 말한다. 


“사기업이 하는 서비스에 여론도 정부도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시도를 했을 때 사람들이 외면하면 안 쓰면 되는 거고, 의외로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서비스가 나올 수도 있는 건데,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뭔가를 새로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에요. 정부에서 앞장 서서 끌고 온 나라이고, 그래서 성공한 것도 많으니 우리 국민들은 나라에서 이끌어 주고 잡고 지원하는 룰 셋팅을 원하는 것 같아요.

막상 사고가 나면 ‘정부에서는 뭐했느냐’, ‘정부에서 빨리 대책을 내놓으라’는 의견이 많고요. 항상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날 걸 대비해서 촘촘히 규제나 법령을 만들어 놓다 보니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화가 됐죠. 이런 탑다운식 문화에서는 새로운 생각, 창의성이 나오기 힘들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불안정함 속 적응력에 길 있다” 


임정욱 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 기업을 그 누구보다 자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나라 경제’라는 잡지에 스타트업 기업을 소개하는 인터뷰 글을 쓰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하나씩 써도 모자랄 정도로 좋은 스타트업 기업이 많다고 한다. 


“늦게 퇴근하는 직장 여성들이 신선한 제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전날 밤에 주문하면 그 다음날 아침 상품을 배달하는 ‘마켓 컬리’ 같은 회사는 설립 4년 차인데 올해 16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고 해요. 저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미래가 굉장히 희망적이라고 보고요. 이렇게 좋은 자원이 여러 분야에서 나오는데 원활히 투자가 되고 필요없는 규제가 사라져서 진짜 큰 회사로 클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임정욱 센터장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미래를 경험하며 살아왔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중국의 선전 등 새로운 흐름이 밀려드는 곳에서 그가 있었기 때문. 인공지능 영향으로 30년 후 현존 직업의 5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되는 미래, 임 센터장은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가 오히려 더 큰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이라 말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는 어떤 직업도 안정적일 수 없어요. 그러면 적응력을 키우는 게 중요한데 그런 적응력은 역설적으로 불안해보이는 조직에서 더 빨리 기를 수 있어요. 정적인 조직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함께 성장하며 배우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빨리 찾을 수 있어요. 모든 게 리스크 테이킹이거든요. 진보는 실패를 딛고 이뤄지는 거예요.

구글이 자율주행차를 개발해서 사고도 난 적이 있지만 그걸 안 하면 아무 진보가 없을 거예요.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죠. 남북한이 통일도 안 하고 계속 가는 게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는 거죠. 물론 어렵고 반대자도 많겠지만 나라가 큰 변화와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리스크 테이킹을 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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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8.5.18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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