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시리즈 완전 진중권 저자 인터뷰
“남들이 날 좋아하게 하는 건 내 몫이 아니에요. 고양이가 날 좋아하면 된 거예요. 알렉산더 대왕이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났을 때 ”나는 모든 걸 다 갖고 있으니 네가 갖고 싶은 걸 말해라. 그럼 내가 다 주겠다.“고 했더니 디오게네스는 “햇빛 가리니 좀 비켜달라”고 말했다죠.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건 알렉산더가 갖고 있는 권력이잖아요. 우리같은 먹물들은 그냥 디오게네스인거죠. 서로 욕망하는 게 다른 거예요. 남들이 내가 바랄 거라고 착각하는 거, 거기에 대해 나는 전혀 욕망이 없어요.“
지난 5월 23일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휴머니스트/ 2018년)을 출간하며 시리즈를 완간한 진중권 동양대 교수를 만났다. 올해 4월 출간된 ‘인상주의 편’을 끝으로 총 4권의 시리즈가 마무리된 것. 고전예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수천 년 서양미술사의 궤적을 꿰뚫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시리즈는 감히 어렵고 복잡한 미술사의 숲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믿음직한 길잡이다.
진중권 교수의 미학적 시선이 가미된 미술사는 시대적 흐름과 미학적 담론을 모두 꿰뚫는다. 미술 초심자들도 이야기를 읽듯이 흥미진진하게 접근할 수 있다. ‘재미’뿐 아니라 ‘깊이’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들은 모두 권위있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쓰여졌으니까.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동안 ‘진중권은 역시 진중권’이었다. 하이톤의 음성, 빠른 말 속도, 허위라고 판단한 것을 향한 성역 없는 비판.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의외의 모습도 보았다. 식물 인테리어로 장식된 카페에 진열된 화분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루비도 자주 언급했다. 그럴 땐 세상에 알려진대로 ‘모두까기 인형’이 아닌 마치 ‘귀여운 소녀’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이 시대의 미학자, 전투력 만렙의 논객, 고양이 루비 아버지 진중권과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블랙리스트’, ‘강사직 해고’ 보수 정권 하의 10년…개인 원한은 없다
Q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시리즈가 완간되기까지 10년 걸렸습니다. 정치적으로 이 기간은 보수 정권이 득세했고, 작가님 개인적으로는 불이익을 얻었던 시기이기도 한데요. 지난 시간을 개인적으론 어떻게 소회하나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은 탄압을 받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학교 강사직 그만두고 그랬죠. 그런데 난 학교에서 정규직 교수도 아니고 비정규직 강사였거든요. 수업은 학교 도와주는 개념으로 나간 거였고, 내가 그 시간에 강연을 가면 더 많은 돈을 받거든요. 자른다고 해서 나는 '그래. 잘라라.' 했죠. 그리고 내 원칙은 적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필리핀 비행학교 가서 비행기 타면서 더 재밌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원한은 없어요.
다만 안타까운 건 두 정권 사이에 우리 사회가 후퇴했다는 거죠.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 만들 때 우리는 이미 도토리(싸이월드의 가상 화폐) 주고받고 있었고, MP3 플레이어도 우리가 먼저 만들었고, ‘지하철 개똥녀’ 사건 같은 것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3년 후 호주에서 일어났어요. 세계 최초로 인터넷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그런 흐름이 10년 사이에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 투자한 22조 원을 AI(인공지능)나 IoT(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요?
Q 이번에 완간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미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사라는 콘셉트를 띄고 있는데요.
사실 이 책이 본격적인 미술사는 아니에요. 이미 ‘잰슨 미술사’나 ‘곰브리치 미술사’처럼 여러 종류의 본격적인 미술사 책이 나와있거든요. 다만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그런 미술사로 바로 들어가게 되면 수많은 화가의 이름과 작품 이름의 홍수에 빠져서 익사를 하게 돼요. 가령 서울시 지도를 딱 주면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럴 때 이른 바 관광지도 같은 것 있잖아요. 여기는 홍대, 여기는 망리단길, 여기는 가로수길로 짚어서 주요한 구역만 표시해준 뒤 그 길을 다녀오게 되면 일단 전체적인 서울의 상이, 거리의 모습이 머리에 들어오잖아요. 그런 용도로 쓴 책이라고 보면 돼요.
Q 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인상주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까지 총 4권의 책 중에 저자로서 가장 신나게 쓴 권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글 쓰면서 재미있었던 건 1권의 고전예술 분야에요. 왜냐하면 거기는 재미있는 논문만 골라서 썼거든요. 어떻게 이미지를 읽는지, 원근법이 무엇인지, 또 가까운 걸 짧게 뒤에 있는 걸 길게 그리는 러시아의 역원근법 등. 이런 일들이 너무 재밌잖아요. 제가 가장 관심 갖는 분야는 2권에서 다룬 모더니즘이에요. 20세기 초, 정말 위대한 시기죠. 그때 예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얘긴 다 끝난 것 같아요.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던은 오히려 예술이 조금 맛이 갔다는 생각을 하고요.
Q 가장 근래에 출간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은 시대적으로 ‘고전예술 편’과 ‘모더니즘 편’ 사이에 존재하는데 책으로는 가장 나중에 나왔어요.
사실은 총 3권(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으로 완성이 된 건데 ‘고전예술 편’과 ‘모더니즘 편’의 시대적 텀이 너무 긴 거예요. 책으로 강의를 할 때도 너무 급작하게 고전에서 현대로 넘어가다 보니까 과도기를 가지고 3~4주 정도는 인상주의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예 그럴 바에는 한 권을 쓰자고 해서 썼어요. 무엇보다 인상주의는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기의 예술이잖아요. 현대예술은 아직도 어렵고, 고전 예술은 너무나 멀고. 현대인의 삶을 다뤘으면서도 구상예술이니까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화가를 물어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후기 인상주의의 고흐 같은 화가를 얘기하죠. 아쉬움이 느껴져서 이번에 보충 격으로 ‘인상주의 편’을 출간하게 됐어요.
Q 1권 고전예술의 시대 범위는 고대 이집트 예술에서부터 20세기 미술까지 굉장히 넓은데 그 이후 권으로 갈수록 시대 범위는 좁아지는 대신 중심 주제들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어요.
사실 1, 2, 3권이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계속 높아져요. 1권이 제일 쉽고, 이번에 나온 4권 ‘인상주의 편’이 그것보다는 조금 어렵지만 쉬운 편이고, 2권 ‘모더니즘 편’ 들어가면서부터 어려워져요. 특히 3권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은 어려울 거예요. 사람이 매일 같은 수준만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읽어나갈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느낌들을 갖는 게 중요해요. 앞 내용을 읽었으면 선행 지식이 있잖아요. 그 다음 건 좀 더 쉽게 읽고, 그 지식을 취하면 그 다음 건 조금 더 쉽게 읽게 되니까 난이도를 조금 높여나가도 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잡게 되었어요.
“어려운 책 읽어야 업그레이드…쉬운 책은 휘발되어 버려”
Q 아직까지 대중에게는 미술사, 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고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는 데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이 책보다 더 쉬운 미술사나 미학 책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우리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해요. 제가 바닥까지 내려가서 할 자신은 없어요. 왜냐하면 글을 쓰면서 나도 재밌어야 하는데 너무 밑으로 내려가게 되면 제가 재미가 없거든요. 난 책 쓸 때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 어렵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설정을 해두고 써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저장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책을 읽는다는 건 하드디스크에 지식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프로세서를 훈련시키는 거라고 봐요.
인간의 두뇌는 좋지 않아서 저장을 해도 자꾸 증발해버려요. 책 읽고 일주일 지난 뒤 생각해보세요. 뭘 읽었는지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죠. 하지만 인간 두뇌라는 프로세서는 어떤 면에서 컴퓨터보다 좋아요 왜냐하면 컴퓨터 프로세서는 그 자체로 좋아지지 않잖아요. 하지만 인간의 프로세스는 쓰면 쓸수록 업그레이드가 돼요. 그래서 약간 어려운 책을 읽고 그걸 소화했다고 하면 내가 넓어진 거예요. 그 정도 난이도의 책을 다음에 읽게 되면 쉽게 소화가 되죠. 그렇게 계속 수준을 높여나가서 자기 용량을 넓혀나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옛날에 어려워서 못 읽었던 책이 쉽게 들어오는 거예요. 사람이 똑똑해지는 거죠.
Q 독서의 과정이 지식의 습득이 아닌 두뇌 훈련의 과정이란 말씀이네요.
저도 어려운 책을 읽으면 첫 번째 독해할 때 반은 이해 못하거든요. 2독하면 60%, 3독하면 70% 이해해요. 그 정도 이해했을 때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100% 이해하기는 불가능 하거든요. 내가 읽고 이해가 안 될 때 이렇게도 해석해보고, 저렇게도 해석해보고, 어떨 때는 해봤더니 바로 통할 때도 있고, 안 돼서 좌절할 때도 있고요. 그렇게 기대가 충족되고 좌절하는 과정 속에서 훈련이 되잖아요. 그게 책 읽기라고 생각해요. 다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하면 그건 나는 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휘발하고 증발해버리는 거니까.
책을 읽을 때도 그냥 읽는 게 아니라 하다 못해 블로그에라도 글을 쓰는 식으로 쓰기 위해서 읽는다는 개념으로 읽으면 도움이 돼요. 이렇게 한다면 책이 다시 읽힐 거예요. 글을 쓰다보면 내가 잘못 읽었단 생각이 금방 들어요. 다 읽은 것 같은데 쓰다보면 바로 막히거든요. 다시 들춰보면서 책을 제대로 읽게 되는 거죠.
Q ‘인상주의 편’ 서문에 반려묘 루비에게 고마움을 표하셨고, 또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천년의상상/ 2017년)라는 책도 펴내신적이 있는데요. 유독 고양이라는 동물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나요?
키우게 됐으니까요.(웃음) 개를 키웠으면 개를 좋아했겠죠. 고양이는 내버려두면 자기가 다 알아서 하거든요. 같이 살면서도 귀찮게 안 해요. 오히려 내가 귀찮게 하는 게 있죠. 물론 ‘개냥이’들도 있지만 우리 루비는 까칠해서 끌어안아야 마지 못해 1분 정도 있다가 다시 몸부림쳐요. 내가 다가가면 도망가요. 그런데 저 멀리서 꼬리를 살랑살랑 치거든요. 이건 “내가 널 싫어하는 건 아냐. 좋아하는데 그냥 귀찮아. 나를 내버려둬.”라는 의미예요. 같은 고양이 과로 개처럼 애정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너 나 좋아하냐? 좋아하면 됐어. 싫어하냐? 그럼 할 수 없지.” 그런 쿨한 태도가 잘 맞아요.
Q 가수 조영남 씨 ‘대작 사건’ 때 전문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증언하셨죠. 조영남 씨에게 처벌이 내려진 걸 보면 법정 안에서는 현대 미술의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가령 ‘모더니즘 편’에서 소개하신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기성품 변기를 전시장에 싸인만 해서 가져다 놓았는데 오늘날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죠.
(법정에서는) 아예 이해를 못 해요. 법정에서 무엇을 갖고 싸우느냐면 그림에서 조영남 씨가 몇 퍼센트 작업했는지를 가지고 따져요. 조영남 씨 변호사 측은 많이 작업했다고 주장하고, 저쪽에서는 조영남 씨가 거의 작업을 한 게 없다는 식으로 싸우고 있어요. 아직도 인상주의 시절에 갖고 있던 예술 관념에서 해방되지 못한 거예요.
조영남 씨 반대쪽 증인으로 나온 분 말을 들어보면 조영남 씨가 화가라는 사실을 인정 못하겠다는 거예요. 미술대학을 나온 것도 아닌 가수가 그린 그림 값을 2천만 원 받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라고 봐요. 그런데 미대 나와야만 화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오히려 차별인 것 같아요. 콘셉트 제공보다 그림 작업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의 육체노동으로 창작 행위를 보는 거잖아요.
Q 사실 외국에서도 유명 작가들은 마치 공장 같은 작업실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조수를 고용해 작업을 진행하는데요.
원래 작가들이 자기 그림이 팔리기 시작할 때 그림 판 돈으로 가장 먼저 조수부터 고용을 해요. 내 그림이 도처에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림 한 점을 그릴 때 한 달, 두 달씩 시간이 걸리면 일 년에 여섯 개 정도밖엔 생산을 못한단 말이에요. 또 우리나라 알려진 작가들 다 조수 썼거든요. 그럼 이것도 다 공동 저작권을 인정해 줘야 하나요? 다른 나라에서는 미술도 다들 대공업 생산으로 가는데 우리는 아직도 작은 공방 생산으로 가야한다는 거잖아요. 이걸 법정에서 정했다는 게….(헛웃음)
“우리가 아는 모든 사실에는 구멍 있다…이것 인정 못하면 음모론 빠져”
Q 현재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신데요. 어떤 내용을 가르치시나요?
오늘은 AI가 만든 오바마 연설 동영상에 대해 얘기했어요. 오바마가 연설을 하는데 사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화면인 거예요. 이런 게 상용화 되면 결국 미래의 법정에서는 사진도, 동영상도 증거물이 되지 못할 거예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도 프로그램일 수 있으니 그 자체를 사실로 믿을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거죠. 이걸 읽지 못하면 매트릭스의 주민이 되는 거고, 읽어내는 사람은 매트릭스의 아키텍트가 되는 거예요. 사실 우리 주위에 음모론이 많잖아요. 음모론을 팔아먹는 사람이 설계자이고 음모론에 속는 사람이 주민인 거죠.
이번에도 다큐 영화 ‘그날, 바다’를 보고 사람들이 막 소름 돋아했잖아요. 그런데 그 영화의 주장대로 세월호가 고의로 침몰됐다면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아져요.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가질 수는 없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은 구멍이 나 있는 거예요. 음모론은 그것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말하죠. 남들은 모르는 걸 자신은 알고 있고, 이 세계가 사실은 소수의 음모로 흘러가는데 그 음모를 나만 꿰뚫고 있다고요. 앞으로도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피할 수 없는데 가상이 가상이라는 의식은 하고 있어야 해요. 이걸 의식하지 못하면 선동 상황이 되고, 세뇌가 되고, 나아가 사이비 종교의 상황이 되는 거예요. 지금 그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Q 지난 북DB 인터뷰 때 “자기계발에 목적의식을 가지면 몰락하게 된다. 좀 더 여유있게 놀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놀 땐 어떻게 노시나요?
집에서 작업하고, 고양이랑 놀고, 집에 작은 테라스가 있는데 꽃 갖다 놓고, 물 주고 놀아요. 또 집이 성산동인데 근처 연남동이 되게 재밌어요. 재미있는 가게들도 생기고 맛집도 많고요. 그런 걸 관찰하죠. 거기서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상권이 밀려오는 게 보여요.
Q 많은 한국인에게 미학이라는 말을 처음 각인시켜준 사람일 것 같아요. 어떤 미학자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별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왔다, 갔다, 스쳐지나가는 거예요. 워낙 악명이 높고 좋게 기억될 것 같지 않아서(웃음).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았던 거면 돼요. 죽는 날은 내가 선택하고 싶어요. 병원에서 끙끙 앓다가 죽기보다는 죽기 좋은 날을 택해서 죽고 싶어요. 태어나는 건 내 맘대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죽는 순간만큼은 내가 선택해서 죽고 싶어요.
Q 성역 없는 비판으로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데요. 선생님께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나요?
남들이 날 좋아하게 하는 건 내 몫이 아니에요. 고양이가 날 좋아하면 된 거예요. 알렉산더 대왕이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났을 때 ”나는 모든 걸 다 갖고 있으니 네가 갖고 싶은 걸 말해라. 그럼 내가 다 주겠다.“고 했더니 디오게네스는 “햇빛 가리니 좀 비켜달라”고 말했다죠.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건 알렉산더가 갖고 있는 권력이잖아요. 우리같은 먹물들은 그냥 디오게네스인거죠. 서로 욕망하는 게 다른 거예요. 남들이 내가 바랄 거라고 착각하는 거, 거기에 대해 나는 전혀 욕망이 없어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DB 2018.6.1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5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