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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an 09. 2022

최태성 “암기식 역사 아닌, 사람 만나는 인문학돼야”

<최태성 한국사 수업> 출간 최태성 인터뷰


지난 2월 개최된 평창 동계 올림픽의 핫 이슈는 단연 여자 컬링 국가선수 대표팀이었다.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가 “영미”를 외쳐대던 모습은 온 국민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당시 역사 강사 최태성은 이 장면을 보며 다소 다른 생각을 했다. 


“조선 개항기 때 청나라 정치가 황준헌이 쓴 <조선 책략>이라는 책이 있어요. 개항 이후 열강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이 책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서 조선이 어떤 길로 가야 할 지를 제시한 책이에요. 여기에 등장한 핵심 단어가 ”연미(聯美)”예요. “영미”를 외치는 선수를 보면서 저는 개항기의 ‘연미’가 떠오르더라고요. 일종의 직업병이죠.(웃음)“ 


국가 대표 한국사 강사 최태성이 활짝 웃으며 자신의 직업병을 털어놓았다. 지난 3월 말 <최태성 한국사 수업>(메가스터디/ 2018년)을 출간한 최태성 선생은 인터넷 강의 수강생만 해도 500만 명을 넘어서는 인기 강사다. 서울 대광고에 재직하던 2001년부터 EBS 강의를 시작했고, 현재는 공교육 현장을 떠나 보다 많은 이들이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무료 인터넷 강의를 제작하고, 또한 ‘역사저널 그날’ 등 다양한 역사 관련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온국민에게 역사의 힘을 전파하고 있는 그다. 


”역사는 문제 해설서 같은 역할... 행복에 대한 대답 제시해줘“ 


이번에 출간된 <최태성 한국사 수업>은 선사시대부터 2000년 6.15 남북공동 선언에 이르기까지 키워드 중심으로 한국사 전반을 아우르는 책이다. 시험을 대비하는 수험생은 물론이고 평소 역사 공부에 갈증을 느껴온 성인도 빠른 호흡으로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다. 우선은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위한 실용서의 성격이 강한 책이지만, 최 선생은 역사 공부를 통해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역사를 접한다는 것은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거잖아요. 저는 역사가 인생에서 수학 문제집 뒤에 나오는 해설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 결정을 내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역사를 통해 수십 수백 명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내린 결론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에 대한 대답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해주죠.“ 


책 곳곳은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각 사안에 대한 저자 특유의 해석이 더해진다. 이로써 단순히 외워야 하고 암기해야 하는 건조한 역사 교과목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숨 쉬고 말하는 역사로서 독자에게 다가온다. 시대에 따라 변화한 이들은 살아남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음을 목격하게 된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 저는 이게 영웅의 요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만적)


‘16세기 사림의 시대였다면? 한글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세종대왕님! 15세기에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요.’(훈민정음)


’망하거나, 아니면 혁명하거나 하는 운명의 순간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습니다.‘(임술 농민 봉기)


- <최태성의 한국사 수업> 중

입시 제도의 폐해 탓일까?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에게 역사는 인생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수천, 수만 년 전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하는 과거의 기록이라기보단 외울 거리가 많은 한 교과목으로 기억되곤 한다. 당장 더 많은 지식을 암기해야만 시험에 합격하는 수험생들은 정작 역사를 공부하는 본래 목적으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최태성 선생은 교육자로서 이 간극을 극복해내기 위해 이번 책을 썼다고 말한다. 


“당장 시험 준비로 급한데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거나, 과거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인생과 연결할 시간이 없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그렇게 역사 교육이 끝나버려선 안 돼요. 당장 시험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그러한 지식 사이에 살짝살짝 교감할 수 있는 내용을 언급만 해줘도, 건조한 사실들 속에서 사람 냄새 나는 지점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18년 유배 생활 500권 책 집필 정약용... 현실에서는 패배자였을지 몰라도 역사 속에서는 승자” 


그에게 인생에서 힘들었던 순간 길잡이 역할을 해준 역사 속 인물을 한 명만 꼽아줄 것을 요청했다. 


”역사 속엔 그런 인물이 정말 많아요. 그중에서 한 명을 꼽자면 정약용 선생이에요. 정약용 선생은 정조가 살아서 든든한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주었기에 그 덕을 많이 본 인물이에요. 하지만 정조가 죽으면서 나락으로 빠지거든요. 결국, 천주교와 관련이 되었다는 이유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돼요. 


제가 정약용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을 해봤어요. 몹시 절망적이고 살아가는 게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배 기간 정약용은 무려 500권에 달하는 책을 써요. 왜 이렇게 많은 책을 썼는지에 대해 대한 얘기가 아들에게 쓴 편지에 나와요. ’만약 내가 지금 책들을 통해 내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사상을 남기지 않는다면 역사에서 나, 정약용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정약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면 형조에 남겨진 기록처럼 죄인 정약용이 아닌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으로 기억하잖아요. 이건 역사의 거울 앞에서 정약용이 이긴 거예요. 당시 현실에서 그는 패배자였는지 모르지만, 역사 속 정약용은 승자로 기록돼 있어요. 역사 속엔 이런 인물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얘기했지만, 역사는 사실을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에요.“ 


그의 강의 수강 후기에는 시험 합격에 고마움을 전하는 인사뿐 아니라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겠다‘, ’중간중간 나를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의견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단순히 성적을 올려주는 선생님 그 이상의 위치에 ’큰별쌤‘(최태성 선생의 별명)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논란의‘ 2018 공무원 연도 시험... ’희미한 논리의 선‘의 장치 필요했다 


지난 4월 8일 최태성 선생은 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2018년 공무원 시험 한국사 과목에 출제된 연도 나열식 성향의 문제를 향해 ’한국사 교육을 왜곡하는 저질 문제‘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단 저는 출제위원분들의 심정을 이해해요. 공무원 시험이 자격증 시험이 아니라 당락을 결정지어야 하는 변별력 시험이거든요. 중요한 건 출제를 하시는 분들이 역사에 종사하는 분들이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낸 문제가 앞으로 역사 교육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저 연도 나열식 문제를 출제하면 역사 교육은 암기 과목이 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물론 암기를 해야겠지만 시간의 순서대로 희미한 논리의 선을 두는 장치가 분명히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최태성 선생은 지난 2016년 재직하던 대광고등학교를 떠나 사교육 업체인 이투스교육으로 이적한 바 있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이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이 김영란법이에요. 김영란법 하면 부정청탁금지만 생각하지만, 공무원들의 외부활동 제한까지도 포함하고 있었어요. 저로선 무척 고민이 되었지요. 결국, 20년은 공교육에서 학생들을 위해 일을 했다면 나머지 10년은 더 많은 대중을 위해 역사 강의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한국사와 관련해 교양, 수험 등 모든 목적을 만족시켜주는 사이트를 구축하고 싶었던 게 꿈이었는데 이투스에서 이런 강좌 제작을 지원해주기로 해서 그런 인터넷 공간을 열게 됐죠.“ 


현재 최태성 선생의 공식 홈페이지 ’모두의 별별 한국사‘에는 중‧고등학생 및 성인을 위한 무료 강좌가 서비스되고 있다. 그에게 앞으로 걷고 싶은 길, 그의 꿈을 물었다. 


”많은 사람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말해요. 하지만 저는 명사(名詞)가 꿈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과거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동사(動詞)의 꿈을 꾸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늘 고민하고 실천했던 사람들이란 거예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동사의 꿈을 꾸고 있어요. 


내가 누구와 비교해서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 가장 잘 하는 것 하나씩은 있잖아요. 그것 하나로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저는 한국사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누구나 쉽게 역사 속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인문학 본연으로서의 역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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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8.4.20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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