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저자 김겸 인터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건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의 말. 이 덕분에 자칫 무력할 수 있었던 인간 종은 동물 무리보다 훨씬 큰 인류 집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인간은 모두 그 이야기로써 재구성된 거대한 과거 위를 딛고 서 있다. 이토록 광대한 시간을 우리와 연결시키는 건 바로 과거의 물건, 유물이다.
삼화고무에서 나온 흰색 타이거 운동화 한 짝으로 인해 우리가 1987년 6월의 뜨거운 거리를 뛰어다니던 풋풋한 청년 이한열을 기억할 수 있듯이.
김겸 박사(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장)는 밑창이 다 닳아 부스러져가던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해 낸 인물이다. 김 박사가 운동화를 복원한 이야기는 소설가 김숨에 의해 (민음사/ 2016년)라는 장편소설로 담겼으며, 그가 복원한 운동화는 영화 ‘1987’ 제작의 기폭제가 되어 지난해 많은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남겼다.
김 박사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이전에도 로댕,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예술가 작품 복원 작업을 해왔다. 사람에게 의사가 있다면, 예술품의 의사는 복원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품이 손상되면 다양한 화학적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 처음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예술 작품들이 늘 같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모두 전시장 불빛이 꺼진 후 움직이는 복원가들의 덕이다.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 2018년)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미술품 복원의 길을 전달하는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는 그가 복원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한 이야기에서부터, 거의 가루가 되다시피한 조각상을 기적처럼 되살려놓은 이야기 등 일과 예술,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알알히 담겨 있다.
책에서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를 찾았다. 기자가 연구소에 도착했을 땐 마침 두 점의 작품이 치료를 기다리며 입수된 직후였다.
“한 번 손대면 돌이키기 어려운 복원...나는 작품 자체에 관심 많은 복원가”
Q 저기에 놓인 작품은 일본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이네요.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곳에 오게 됐나요?
액자의 유리가 깨지면서 표면이 찍혔어요.
Q 그 아래의 작품은요?
그 작품은 미국 작가의 작품인데 곰팡이가 피었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막상 직접 보니까 곰팡이가 아니라 물감이네요. 기법도 수채화라고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아니었어요. 워터컬러 모노타입(Watercolor monotype) 기법의 작품이었어요.
Q 이렇게 작품 복원 의뢰가 들어오면 하루에 몇 시간씩 작업하세요?
정말 제 마음대로예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조금이라도 집중을 하기 힘든 상태면 그게 작업에 그대로 반영되거든요. 제가 국립현대미술관의 보존팀장 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도 팀원들이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아도 작업하지 않도록 했어요.
Q 집중도를 요하는 작업이니까요.
한 번 손대면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서요.
Q 작가분 중에 예민한 성품을 지닌 분도 많을텐데요.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그분들보다 제가 더 예민하거든요.(웃음) 오히려 작가 측에서 이만하면 되었으니 마무리 해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Q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매우 소중한 존재를 회생시킨다는 점에서 복원은 의료 행위와 닮았어요.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를 읽다보니 복원가는 예술 작품을 치료하는 의사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보존과 복원이 물질을 다루는 작업이잖습니까?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도 화학이고요. 미술품 복원가가 되는 과정이 의대 나와서 전문의가 되는 과정과 거의 비슷해요. 물론 생명을 살리는 의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손상된 미술품을 복원하는 과정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과 거의 똑같고요. 그런데 저는 작품 자체에 관심이 많은 복원가 축에 속해요. 의사로 치면 환자한테 관심이 많은 의사인거죠.
Q 복원이라는 작업에도 개성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복원 작업 자체는 극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물리적인 것이며 정해진 원칙 하에 진행해야 합니다. 혼자 판단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복원가와 이론가, 작품에 관련된 이들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죠. 문화재 복원과 달리 미술 작품 복원에선 가치를 드러냄에 있어서 어떤 점을 살리고 복원할 지에 대해 판단이 다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너무 깨끗하게 복원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이 일었죠.
Q 너무 새 것처럼 복원해도 문제가 되는군요.
예술품이라는 게 쭉 살다가 지금 우리에게 관리를 받는 것인데 100~200년이 지나면 또 낡은 모습이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모습이 다인 양 실수를 할 수가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잠시 맡아두었다가 넘겨주는 것뿐인데요. 지금 우리가 관리 주체라고 해서 우리 기준에 맞추어야 할지에 대해선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깨끗하지만 50년만 지나도 다시 고색(古色)이 생기긴 하니까요.
Q 보통 ‘불멸의 예술’이라고들 하지요. 책을 읽어보니 오래된 절을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경우도 있던데요.
일본의 잇세이 신궁은 굉장히 독특한 예입니다. 그건 복원이라기보다도 유물이 과거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배우는 작업이에요. 이건 전세계에 예가 없는 일인데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기에 책에 언급을 했습니다.
“대가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사람을 감동시킨다”
Q 웬만한 전시 기획자나 평론가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인데요. 작품을 대할 때 대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소위 말하는 대가, 존경받는 분들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이미 사람을 감동시켜요. 겉으로 드러나는 제일 바깥의 물감 층을 떠받치는 물감 층이 그 위까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거든요. 예전에 이탈리아 출신 작가의 작품을 봤는데 돌 위에 금사를 가지고 조형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작품의 금사가 부러져서 다시 접합하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돌에 구멍을 뚫고 금사를 박아서 돌 아래 부분에서 접착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러진 부분의 돌을 봤더니 완전히 막혀 있어요. 손으로 잡아 뜯지 않으면 영원히 볼 수 없는 공간인데도요. 살펴봤더니 금사 하나하나에 나사선을 만들어서 작은 나사로 다 조여놓은 거예요. 이건 거의 편집증이죠. 그런 것들을 보면 놀랍죠.
Q 외국 미술관이나 갤러리로부터 의뢰를 받은 경우도 있었나요?
프랑스 컬렉터, 프랑스 재단과 일을 네 번 했었어요. 하나는 프랑스 소재 재단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우리나라 전시 중에 사고가 났죠. 우리나라에서 크게 뉴스가 안 되었던 게 그 작품 설치를 프랑스 사람이 직접 와서 했거든요. 당시에 복원 불가능하다고 했던 걸 전시를 위해서 응급처치를 해서 전시가 가능해졌어요. 그 다음 전시가 상하이에서 7개월 후에 있는데 그쪽에서 제게 완전히 복원을 해달라고 의뢰가 온 거예요. 5월까지 여기가 그 작품들로 꽉 차 있었어요.
Q 유럽은 우리보다 복원 문화나 기술이 훨씬 발전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시아 국가의 복원가인 선생님께 역으로 의뢰가 간 거군요.
제가 오히려 이걸 왜 한국에서 하느냐고 되물었죠. 이메일과 국제전화를 주고 받으며 복원을 마쳤습니다. 한 번은 프랑스의 대형 갤러리의 의뢰로 독일 미술가 안젤름 키퍼의 오브제 작품을 복원하게 됐어요. 작품 하나가 거의 가루가 될 정도로 완파가 된 상태였어요.
Q 그럴 땐 어떻게 맞추시나요? 인내심인가요?
조금은 타고난 게 있어요. 예전에 일본에서 작업할 때 일곱여덟 시간 마루에서 목조 작업을 하고 칼만 두 시간 갈 거든요. 그러고 집에 오면 자기 전까지 퍼즐을 했어요. 5만 피스짜리 일본 설화에 나오는 눈의 여신 그림을 맞춘 적이 있었는데, 하얀 옷을 입고 있는데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그림이라 거의 이미지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일부러 그걸 사서 앉아서 들여다 보곤 했어요. 잘 때까지 어떤 땐 두 조각 꼽고 끝내기도 하고요.
Q 조금은 그런 인내심을 요하는 과정을 즐기시나보네요.
20년 전엔 불상 작업도 했는데요. 경북 직지사 성보박물관에서 자리를 펴고 불에 탄 불상 복원 작업을 하던 중이었어요. 갑자기 학예사분이 오셔서 조심스럽게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묻는 거예요. CCTV로 제 모습을 지켜봤는데 제가 5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은지 보러 온 거죠. 그 얘길 듣는 순간에야 화장실에 가고 싶을 정도로 제 배가 빵빵해져 있는 걸 알게 됐죠.
Q 그 정도로 긴 시간 집중해서 작업을 하다보면 부작용은 없습니까?
그래서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어요. 관절이라는 관절은 다 이상이 있고요. 제가 왼손잡이인데 10여년 전에는 왼팔을 전혀 못 쓰게 되어서 오른팔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정작 왼팔이 낫고 나서는 오른팔을 전혀 못 쓰게 됐어요. 힘줄에 생기는 근초막염이라고 하더라고요. 계속 동일한 걸 하면 생기는 병인데 완치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을 빨리 다른 분들께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이한열 운동화’ 작업은 ‘가치 복원’에 대한 믿음 실감한 계기
Q 책에는 미술품만이 아니라 평화의 소녀상, 이웃 주민의 경대, 로봇 장난감 복원도 도맡아 한 이야기가 소개 되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입니다. 어떻게 작업을 하게 되셨습니까?
운동화가 누군가 신으면 운동화지만, 그걸 누가 오브제로 갤러리에 가져다 놓으면 작품이잖아요. 이한열 열사 운동화는 폴리에스터 우레탄이라는 재질인데 문화재에선 그런 합성수지 재료가 없잖아요. 처음에 운동화가 바스라졌을 때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서 박물관 보존실 몇군데에 문의를 하시다가, 세 분 정도가 제 연락처를 전했고 이후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제가 현대 미술 작품들을 다룰 때 그런 재료도 많이 다루니까 제가 맡아 진행하게 된 겁니다.
Q 운동화라는 매개물로 이한열 열사와 간접적으로 인연이 닿았는데요. 작업한 후의 감회가 어땠는지요?
사실 복원이라는 작업에서 가치를 복원한다는 게 굉장히 추상적이고 믿음이지 않습니까?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는 2년이라는 시간 안에 그 추상적인 믿음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해줬어요. 운동화 복원하고 일 년 만에 김숨 작가님이 란 소설로 복원 과정을 썼고, 또 1년 후인 2017년엔 ‘1987’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죠.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펑펑 울었어요.
장준환 감독이 신문 인터뷰에서 “이 모든 이야기는 운동화 한 켤레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지금 젊은 친구들에겐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게 너무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그걸 얻어내기 위해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잖아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한 켤레가 이야기가 되어 사회적 영향력으로 뻗어나가는지를 직접 본 것이니까요. 저에겐 정말 잊을 수가 없는 기회였죠.
Q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단 한 점의 원작을 복구하는데 골몰하는 ‘복원’이라는 작업이 유효할 거라고 보십니까?
‘복원을 인공지능이 하는 시대가 올까?’라는 질문을 하곤 해요. 부분적으론 할 수 있겠지만 이 직업은 없어질 수가 없어요. 유물은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그 시대를 자국으로 남기거든요. 복원도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이 간섭이 되는 과정, 깊은 기록을 남기는 과정이고요. 단순히 감쪽같이 복원하는 문제뿐 아니라, 작품이 가진 가치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만들어내는 작업을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봐요.
- 글 : 주혜진(북DB 기자)
-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DB 2018. 8. 3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86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