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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an 23. 2022

박막례 “내가 행복하게 살면 성공이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저자 박막례, 정유라 인터뷰

전남 영광에서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이름도 ‘막례’다. 공부가 하고 싶어 아버지를 졸랐지만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죽도록 일만해야 했다. 결혼한 뒤에도 고생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이 집을 등한시해 삼남매를 혼자서 길러야 했고, 덕분에 과일장사, 엿장사, 떡장사, 파출부, 식당일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런 그녀의 인생이 70세에 이르렀을 무렵 대반전이 일어났다. 손녀 김유라 씨가 박막례 할머니와 호주 여행을 떠나 찍은 영상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유튜브 채널이 대박 난 것. 6월 초 현재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은 90만 구독자를 거느리며 순항 중이다. 1990년대 생 밀레니얼 세대 손녀와 70대 할머니가 함께 만들어낸 기적이다.

방송 내용은 할머니의 매력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할머니가 손녀를 위해 ‘대충’ 비빔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시장에서 구입한 천 원짜리 립스틱을 리뷰하고, 치과 갈 때 계모임 갈 때 등 상황별 메이크업 비법도 전수한다. 이 독특한 한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에 세계도 집중하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는 유튜브 CEO를 만난 것에 이어 구글 CEO까지 만났다. 이렇게 많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이 채널의 변치 않는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박막례 할머니의 행복’이다.

박막례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와 유튜브 제작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 김유라/ 위즈덤하우스/ 2019년). 할머니가 계속해서 고생하고 사기를 당하는 대목에서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오고, 또 유튜브로 인생이 ‘빈대떡 뒤집히듯’ 확 뒤집히는 대목에서는 읽는 사람도 덩달아 흐뭇해진다. “맞추지도 않았는디 집에서 따로따로 나왔는디” 지난 5월 30일 서울 한남동 북파크에서 만난 박막례 할머니와 유튜브 크리에이터 손녀 김유라 씨는 모두 파란색 의상을 맞춰입고 왔다. 누구보다 잘 통하는 할머니와 손녀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은 인터뷰 시간 내내 돋보였다.

박막례 “내 인생이 어디까지 꼬여가지고 있을까 그래가믄서 커피를 열 잔씩 마셨어”  

Q 할머니의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유튜브 성공에 이어 책까지 내게 되셨는데요. 처음 책 내신 기분이 어떠세요?

박막례 : 나는 그냥 만화책처럼 얇은 줄 알았어. 그런데 받아보니까 이렇게 두껍더라고.


김유라 : 어렸을 때 꿈 중 하나가 제 책을 내는 거였거든요. 할머니 덕분에 책도 내보게 됐네요.

Q 책에는 2년 전까지 계속해오신 식당일뿐만 아니라 꽃장사, 떡장사, 파출부 등 일하면서 고생하신 얘기도 적혀있어요. 처음에는 떡 사라고 소리도 못 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오늘날 활발한 성격이 되셨어요?

박막례 : 생활에 따라서 그렇지, 그거는. 우리 애들한테도 그랬지만은 내가 남편이 만약에 사고로 무슨 일이 있어서 못벌어묵으면 니야카(리어카)라도 끌고 와서 벌어먹을 능력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상시 말했어요. 살다보면 성격이 바뀌드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못 사는데? 처음에 니야카 놓고 장사했을 때엔 그냥 챙피해도 말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해 넘어 갈 때 막 ‘떨이’로 부르더만 나는 그런 걸 못했어요. 수능날 엿을 하나도 못 팔고 왔을 때가 그때가 진짜로 죽고 싶었지요. 


Q 최근에 인터뷰에서 하신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여. 어떤 길로 가든 고난은 오는 것이니께 그냥 가던 길 열심히 걸어가.” 이 말씀이 화제가 되었어요. 할머니께서는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박막례 : 나는 막 화가 나고 힘들면 그냥 커피를 하루에 열 잔씩 먹었어. 커피 잔을 들고 내가 살아온 걸 정리를 한 거여. 내 인생이 어디까지 꼬여가지고 있을까 막 그래가믄서. (친구에게) 전화해가꼬 신랑 욕도 하고. “니가 나 데려다가 이렇게 고생을 시켜”하믄서. 술도 못하고 그러니까 커피 한 잔 쭉 들어마시뿐서 털어뿐거야.

Q 수다를 떨다보면 조금씩 잊혀지던가요? 

박막례 : 그제 잊어불고. 밸 세월 다 살았어. 자꾸 물어보지 말어. 허허허허.

박막례 “재밌게 해야겠다 쓰면 더 안 나오더라고”



Q 손녀분과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나고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인생의 2막이 열렸습니다. 손녀분 자랑 좀 해주시겠어요?

박막례 : 손녀 얘는 뭐 자랑 할 것도 없어요. 잘 하니까. 학교도 넘들은 막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내는데 얘는 그런 것도 안 했어. 스스로 대학교도 붙었고. 학교서 상이란 상은 다 타와도 누구한테 칭찬도 안 받고. 하도 타오니까 그냥 타오나보다 그랬지. 그렇게 대단한 기집애여. 얘 동생이 타오면 상 타왔다고 난리가 나지, 그런데 얘는 (상 타와도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언제 한 번 울음이 터져가꼬. 그렇게 칭찬 한 번 해주기가 힘들더라고.

김유라 : 중2병이었죠.(웃음)

Q 할머니께선 처음에 유라 씨가 할머니와 여행을 떠나려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걱정되진 않으셨어요?

박막례 : 나는 처음에는 유라가 회사를 그만두는지 몰랐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까 회사를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유라한텐 안 물어보고 우리 딸한테 물어봤어요. “유라는 왜 회사 안 나갔대?” 그랬더니 “엄마, 여행 데리고 가느라고 회사 그만뒀잖아” 그래서 내가 “그거 미친X 아니냐?” 막 뭐라고 했어. 그랬더니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 “엄마, 걱정하지마. 유라는 어디로 가든지 자신만만 하니까.” 그러더라고. 어딜 가든지 잘한다 그거야. 그러니까 나는 회사 안 가니까 미안하잖아요.

Q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 처음보다 많이 유명해졌는데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편집할 때 부담감은 없으세요?

박막례 : 뭐를 재밌게 해야쓰것다 하면 더 안 나오더라고. 대본 있으면 못해. 잊어분게. 그거 생각해야 하니까. “할머니 무슨 내용 찍습니다”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 씨부려 쌓는겨.

김유라 : 그런 걸 안 느끼려고 해요. 다만 할머니랑 재밌는 일상 컨텐츠를 찍을 때 시의성을 따져서 하려고는 하죠. 우리 둘만 재밌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예전엔 그렇게 했었지만 지금은 워낙 많은 구독자들이 봐주고 계시니까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요. 옛날보다는 좀 책임감 있게 하는 편이에요.

Q 세계 각지로 여행도 다니며 다양한 모험도 하시고 오늘처럼 인터뷰도 하시려면 체력 관리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특별한 비법이 있으세요?

박막례 : 그런 건 없어. 우리 엄마ㆍ아빠가 체력은 잘 낳아놨는가봐. 체력 그런 것은 내가 신경 안 써요.

Q 호주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스위스에서는 패러글라이딩도 하시던데요. 무섭진 않으셨어요?

박막례 : 내 나이 정도 먹은 사람 중에 누가 그런 걸 하겠어요. 엄두도 못 내지. 옛날에 가평 가면 놀이기구 타는 거 있어. 친구들은 다 무서워서 못 타. 저기 위에서 뚝 떨어지는 거 있더만. (김유라: 할머니, 번지점프를 했다고?) 저기 케이블 같은 거 있어. 똑 떨어지는 거 있어.(케이블 코스터로 추정) 친구들은 나하고 다른 한 명, 둘이만 했어. (운영 요원에게) 주민등록증 줬더니 여길 무서워서 어떻게 타느냐고 그래. 처음에만 무섭지 안 무섭다고 그랬어. 내가 간이 좀 큰가봐요.

Q 체력도 좋으시고 담력도 좋으시네요. 

박막례 : 건강은 내가 무릎만 안 아프고 허리만 안 아프면 속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당뇨도 없지 혈압도 없지 그러니까. 오늘은 정형외과 내일은 한의원. 이렇게 갈라가면서 가. 이거(유튜브) 허다 보니까 정형외과 가도 엄청 친절하게 더 열심히 봐주고, 한의원에 가서도 원장이 직접 침 놔주고 그렇게 잘하드라구요.

김유라 “제가 진부하다고 느끼는 걸 할머니는 더 새롭게 느끼셨어요”  

Q 유튜브 시작한 후에 발견한 할머니의 새로운 모습이 있을 것 같아요.

김유라 : 할머니는 원래 제가 알던 것보다 더 호기심도 많고 자신감도 넘치시는 분이었어요. 그 전까지 제가 알던 할머니는 식당에서 장사만 하던 모습이었는데 새로운 곳에 서 있는 할머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방송을 하면서 세상에는 더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제가 진부하다고 느끼는 걸 할머니는 더 새롭게 느끼니까. 시청자들 사랑을 많이 받으니 더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

Q 유라 씨께서 PD로서 볼 때 할머니만의 매력은 뭐라고 보세요? 

김유라 : 의외성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주제를 드려도 다른 크리에이터와 다른 반응이 나오니까 PD로서는 새로운 주제를 가져오고 싶은 의욕이 생기죠.  

박막례: 나는 재밌는 것도 모르고 그냥 씨부려 쌓는데 “할머니, 대박, 대박” 하니까, “잘했어 잘했어” 하니까. 나는 그냥 지껄여놓은 소린데.

Q 지난 4월 유튜브 CEO 수잔 워치스키가 할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왔을 때 경험은 어떠셨어요?

박막례 : 유튜브 사장이랑 만나니까 내가 그 양반 말을 들어봐야 하는데 너무 반가워가꼬 너무 조아가꼬. 내가 하고자픈 말만 다해부렀어.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Q 유라 씨께는 할머니가 인생 스승일 거 같아요. 할머니께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뭐가 있을까요?

김유라 : 저는 어디 가서 절대 손해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가 손해봐서 잘 된 걸 보니까 나도 어디 가서 양보도 해야겠다는 자세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Q 할머니께서는 손해 보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으셨어요?

박막례 : 내가 넘 도와줘가꼬 후회하면 그건 덕이 아니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절대 넘한테 바보짓도 안 하고 그러잖아. 나는 누구 도와주면 후회없이 그냥 도와주는 거지. 나는 우리 딸한테도 “항시 니가 이해보려고 하면 안 되고 손해보는 것이 너한테 덕이 온다”고 그래. 그런데 우리 딸은 또 젊으니까 그 생각은 안 하겠지.

Q 할머니께서는 정의하시는 성공한 인생은 무엇인가요?

박막례 : 내가 행복하게 살면 성공이지 돈 가지고 따지믄 안 되지. 행복허게 살고 있는 사람도 밥 세 끼, 없는 사람도 밥 세 끼, 내가 행복하게 살면 성공이야. 응? 엄마 성가시게 안 하고.

Q 유라 씨께서는 PD로서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 어떻게 커나갔으면 좋겠나요? 

김유라 : 유튜브가 큰 매체가 되면서 다른 한 편으론 자극적인 콘텐츠가 어린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너무 수익적인 면에만 집중이 되기도 해요. 우리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다루지도 않고 수익을 쫓으면서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유튜브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줄 수 있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박막례 : 편들아 할머니 책 나왔으니까 책 좀 꼭 읽어봐라. 항시 건강하고. 항시 할머니가 고맙게 생각한다.

- 글 : 주혜진(북DB 기자)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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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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