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내일이 올수 있을까요

00.2퍼센트의 삶 세 번째

by 하트맨

병원을 다녀오고 당장 생명이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는 말은 들었지만, '청년들의 흔한 급사 원인'이라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많은 약 봉투와 함께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어떻게든 남은 20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그 20일이 동기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군대나 건강문제로 인해 어느 쪽이든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학교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학교를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모습을 골골거리는 환자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희귀 난치병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바뀔 동정 어린시선과 어두워질 표정이 싫었고,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못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사는 삶은 예상보다 더 고단했다. 때때로 가슴에 바늘이 꽂힌 것처럼 따끔거렸고, 어떨 때는 깃털이 들어간 것처럼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었겠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수업을 듣고, 여전히 잇병은 낫지 않아 잘 먹지 못했다. 컨디션은 점점 나빠졌고 하루가 다르게 피로에 절여저가는 내 모습이 처량함과 동시에 괴리감이 들었다. 밤이 되면 누가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피로가 몰려왔으나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온갖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그렇게 한두 시간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러면서도 내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해 달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달라며 빌고 또 빌었다.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되뇌며 묵주를 손에 움켜쥔 채 잠에 들었다.


함께 다니던 동기 몇 명과, 수업을 듣던 전공 교수님들에게만 건강상태에 대해 말을 했다. 종강까지는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도 대비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내 심장이 멈춰 쓰러지게 된다면, 119 구급대가 도착해 골든타임인 4분 안에 병원으로 이송되긴 어려웠다. 학교는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때문에 시간 내에 적절한 처치를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내가 쓰러질 경우 내 상황을 말해주고, 적절한 처치를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가 다니던 학과는 간호학과였다. 대부분의 학생과 교수님들이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고, 건물마다 제세동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고 애썼다.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진채 말이다.


검사를 미룰 수는 없었기에 교수님께 구구절절 연락을 돌리고, 수업 중간에 짐을 싸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수업 도중에 나갔다. 기말고사 전까지 약의 부작용으로 항상 멍한 상태로 있었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조별과제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기로 했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남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큰 고역이었다.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유 없이 쉽게 불안해지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머리 위에서 누가 북을 치는 것처럼 온몸이 둥둥거렸다.

"괜찮다"

심한 날에는 숨쉬기 힘들어 열람실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없이 괜찮다고 되뇌었다. 프린트에, 책상에, 지우개 등 눈이 보이는 곳마다 괜찮다고 써내리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면서도 우울 해지지 않기 위해 남들 앞에서 일부러 더 웃고, 과장된 행동을 했다. 이런 모습이 싫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무너져가는 나를 끌어안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루를 산다거나 보냈다기보다 절벽 끝자락에 서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하루를 버텨냈다. 다행히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가 걱정했던 상황은 오지 않았다. 휴지 다발을 들고 가던 학생회 임원과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던 두 친구,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던 동기, 늦은 저녁 휴게실에 모여 서로 퀴즈를 내주던 다른 분반 친구들, 시험시간 전 초조하게 노트를 보던 동기들, 편의점 앞에 모여 왁자지껄 떠들던 그들에게 내 나름대로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내가 봤던 그 모습들이 그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길 바랬다. 언젠가 학교로 돌아올 수 있길,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진 못하더라도 다시 한번은 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계속]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 소포클레스 -


작가의 이전글난생처음 응급실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