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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Mar 11. 2022

팀 버튼과 동심

가위손,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는 화면 안에서 세상을 구성하고, 그 세상은 감독이 바라보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팀 버튼 감독에게 세상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각박한 곳이다. 두드러진 차이가 있는 사람들은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결국 외로워진다. 세상은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점으로 해낼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굳이 딱딱함을 유지하는 곳이다. 감독은 그렇게 세상에서 밀려난 외톨이들을 위해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라는 힘을 준다.

<가위손> - 낯선 공간에 들어온 에드워드 시저핸드

팀 버튼 영화 주인공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덤보>의 아기 코끼리처럼 낯선 공간에서 움츠러든 모습이기도 하고, <프랑켄위니>에서처럼 무모하고 위험한 일도 저질러버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의 주인공처럼 호기심을 끄는 모험에 주저함 없이 달려들기도 한다. 이는 어른인 인물들도 마찬가지여서, 묵직한 이미지의 히어로 배트맨조차 팀 버튼 감독 영화에서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모습과 어린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은 어른의 세상과 만나 부딪히고, 상처가 생기고, 동화와 이야기를 만든다. <가위손>(1990), <빅 피쉬>(200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은 그런 동심과 동화적 세계에 대한 팀 버튼의 생각을 보여준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가위손> - 상처를 입힐까 봐 조심스럽게 킴을 안는 에드워드

<가위손>은 어른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이다. 발명가는 에드워드 시저핸드에게 기초적인 예절 교육은 했지만, 갇힌 성에서의 교류 연습은 도움이 될 리 없었다. 우연히 마을로 오게 된 에드워드는 다른 사람을 만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가위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기에 실수를 저지르고,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서투른 행동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 뒤에 아이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기꺼이 나서는 그의 모습은 서로를 헐뜯고 이용하려는 마을 사람들과 대비되어 순수함이 돋보인다.

에드워드를 정원을 가꾸고 미용을 하는 도구로 보지 않고, 마음을 알아주던 사람은 킴 가족, 특히 킴이었다. 방에서의 조금 요란스러운 인사로 시작했지만,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남자친구 짐과 대비되는 모습에 킴은 점차 끌린다. 킴이 웃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깎아내린 눈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고, 킴을 위해 처음으로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어른의 세계에 맞지 않았던 에드워드는 결국 성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와의 이야기는 킴의 손녀에게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여전히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여전히 성에서 눈을 내리고 잔디를 조각하며 킴을 기다린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 윌리 웡카의 초콜릿 호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순수하게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만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를 찾는 이야기이다. 윌리 웡카는 초콜릿 공장을 효율과 생산성 대신 상상력과 환상으로 채웠고, 수십 년간 비밀로 해왔던 공간을 황금 티켓을 얻은 아이들에게 공개한다고 선언한다. 황금 티켓을 넣었다고 알린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긴 했지만, 아이 중 하나에게 공장까지 물려준다는 선택은 그만큼 자신의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마도 순수했을 의도와 달리 아이 5명 중 4명은 물량 공세와 계산으로 티켓을 구했고, 찰리만 행운 속에 황금 티켓을 얻는다.

아이들 앞에 나타난 윌리 웡카는 아이들보다 더욱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이뤄낸 모든 것에 대해 칭찬받고 싶어 하며 다른 아이들의 정신없는 행동을 참지 못한다. 잘못에 대한 상상력 가득한 처벌 속에 윌리 웡카보다 세속적인 아이들은 하나씩 탈락하고, 때 묻지 않은 찰리만 마지막까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찰리는 가난한 생활 속에도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고, 꿈을 사랑하는 만큼 가족도 사랑했기에 윌리 웡카의 제안도 거절한다. 조금 더 넓었던 찰리의 순수한 마음은 오히려 윌리의 어린 시절 상처가 치료되도록 돕는다.


<빅 피쉬> - 운명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다가가는 에드워드 블룸

<빅 피쉬>는 팀 버튼 영화의 모든 주인공들이, 그리고 팀 버튼 감독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과 상상력의 의미를 보여준다. 윌 블룸은 금전적으로 크게 성공한 삶을 살지만, 자신이 다 성장했음에도 아버지가 동화 같은 옛이야기만 들려주자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 하지만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은 그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 순간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인물이다. 아버지가 들려준 인생 이야기는 상상과 현실이 섞여있다. 하지만 그런 동화 같은 시각이 있었기에 운명을 믿었고, 운명을 믿었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만 알고도 수년을 기다릴 수 있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꽃만으로도 행복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수선화 꽃밭에서 사랑을 고백해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극단 생활과 병영 생활, 직장 생활 모두 이야기처럼 흥미롭지는 않았겠지만,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즐겁게 전달하기 위해 고통도 각색되고 편집된다.

<빅 피쉬> - 아버지와의 마지막 이야기

아버지가 가장 많이 반복한 이야기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 큰 물고기를 잡은 이야기이다. 고향의 강에는 정말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그 물고기는 반짝거리는 것에 이끌렸다. 아버지는 결혼반지를 미끼로 쓰지만 한 차례 실패하고, 결국 아버지에게 잡힌 물고기는 반지를 토해낸다. 그리고 그날, 윌이 태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이야기 중 유일하게 정확히 밝혀졌듯, 아버지는 출장 중이었고 어머니만 홀로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두 이야기 중 아버지는 자신이 얻은 행복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첫 번째 것을 선택하고, 윌 또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그 뜻을 받아들인다. 정말 오랜만에, 아마도 어른이 된 뒤에는 처음으로 윌은 길고 긴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려준다. 이야기 속에 아버지와 아들은 병원과 현실에서 도망치고 함께 순수한 세계로 넘어가 삶의 마지막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마무리짓는다. 


팀 버튼 영화에서 보여주는 동심은 처음에는 낯설고 답답한 행동으로 표현된다. 다른 인물의 시각이나 다 큰 관객의 시선으로는 성장의 정체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세상에서 그들만의 발자국을 만들도록 했다. 순수함이 없었다면 가위손의 눈도,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도, 에드워드 블룸의 깊은 사랑도 없었을 것이다. 동심에서 벗어난 어른의 마음이 하는 일과 대비되어, 그 단계로 굳이 나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빅 피쉬>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동화는 듣는 관객에게 미소와 행복을 만들었다. 모두들 이야기를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순수한 마음에 동화되어 그 세계를 즐기는 것이다. 팀 버튼의 이야기도 그처럼 영화를 보는 순간만이라도 현실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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