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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Feb 26. 2022

웨스 앤더슨과 규칙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영화는 화면 안에서 세상을 구성하고, 그 세상은 감독이 바라보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세상은 규칙 속에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하찮은 일들로 그 규칙성과 아름다움이 위협받는 곳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나름의 극적인 사건을 겪지만, 안정된 구도와 따뜻한 색감, 잔잔하면서도 독특한 음악 아래에서 그 일들은 소소한 웃음을 유발하는 동화적인 사건이 된다. <문라이즈 킹덤>(201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프렌치 디스패치>(2021) 세 편은 영화를 거듭하며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그의 세계관이 높은 완성도로 반영된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색채가 널리 알려진 이후에 제작된 영화들이기에 수많은 스타 배우들이 각자 작은 역할로 참여하여 흥미롭게 이야기를 구성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선물 상자 속 제로와 아가사

웨스 앤더슨 영화라는 것은 잠시 멈춘 화면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우선 기본적인 정서를 만드는 파스텔 톤의 화면이 있다. 그 위에 영화에 따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예스러운 느낌을 연상시키거나(<문라이즈 킹덤>), 더욱 밝은 색 위주로 사용하여 화려함을 강화한다(<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혹은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장면을 섞어 드물게 나타나는 색을 강조하기도 한다(<프렌치 디스패치>). 그리고 그 색채 위에 대상을 독특하게 규정하는 화면 구도를 갖는다. 현대 영화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1:1 정방형의 화면도 즐겨 사용하고, 인물들을 화면의 측면이 아닌 정가운데에 배치한다. 인물의 시선도 하나같이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바라봐서 장면을 멈췄을 때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박적으로 가운데에 놓인 대상은 따뜻한 세계 안의 강한 규칙성을 보여준다.


<문라이즈 킹덤> - 수지가 쌍안경으로 열심히 보던 모습

동시에 규정된 아름다운 화면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흔들리는 요소가 있다. 건물들과 풍경은 제 위치에 있지만, 인물들의 가정과 상황은 위태롭다. <문라이즈 킹덤>의 어린이 커플은 가정의 종말을 목격했거나 목격하고 있다. 샘은 부모가 포기하여 스카우트 시설에 맡겨졌고, 수지의 부모님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며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아름다운 외관에도 손님의 수가 크게 줄어 망해가고 있다. 영화의 주 이야기를 이루는 구스타브가 지배인이던 시절에는, 마담 D.의 죽음 및 상속과 얽혀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 자체도 창업주의 죽음과 함께 폐간되는 마지막 호를 준비하고 있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흔들리는 도시와 사회 모습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화면 속 대상들은 그렇게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벗어나고, 규칙으로부터의 일탈과 다시 회귀하기까지 이야기를 영화의 시간으로 전한다.


<문라이즈 킹덤> - 문라이즈 킹덤에서 자유를 누리는 샘과 수지

<문라이즈 킹덤>의 규칙은 보호해줘야 할 대상인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이혼 가정의 아이인 샘에게 사회는 관심 대상이라는 딱지만 붙일 뿐 그를 유기했다. 스카우트라는 규율과 규칙의 집단으로 내처진 샘은, 여전히 주변으로부터의 따돌림을 당하여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규칙을 아예 벗어나기로 결정한다. 수지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집안 내에서의 강한 규칙을 정한다. 하지만 정작 결혼 속에 부부간에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서약은 지키지 못했다. 자신이 속한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항상 바라보던 수지는 샘과 함께 가족을 떠나 옛 왕국의 자리에 그들만의 왕국을 세운다.

이탈자가 발생하자 규칙은 한 발 늦게서야 힘을 발휘한다. 스카우트는 팀을 이루어 샘을 추적하고, 수지의 어머니와 바람피우던 지역 경찰은 두 아이의 탐색에 누구보다 앞선다. 그러나 어른들 옆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바다와 산에서 더 안정적인 시간을 지내는 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이 그들만의 시간이 길어지길 응원하게 만든다. 그들을 오히려 방해하는 세상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왜 떠나야 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제로와 구스타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규칙은 시대보다 한 발이 늦다. 지배인 구스타브는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자존심과 인품을 가진 사람이다. 전쟁과 전쟁이 부른 혼란 속에도 다른 사람에게 굽히지 않는 삶의 방식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옳은 말만 하게 만들어 그를 곤경에 처하게 한다. 제로의 말처럼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나타나기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스타브가 가진 품위는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선사되는 방식으로 결국 인정받는다. 그를 계승하는 제로는 자신의 사랑을 위한 원칙이 존재한다. 호텔 경영과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삶의 방식에서는 구스타브를 따르되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랑의 원칙은 지킨 제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아가사와 아가사가 떠난 호텔 옆에 영원히 남게 된다.


<프렌치 디스패치> - 학생 혁명 지도자 둘의 소박한 회의

<프렌치 디스패치>는 규칙의 일탈에서 나오는 새로움과 성과를 보여준다. 마지막 호의 이야기 중 도시를 소개하는 첫 기사를 제외하고는 혁명과 미술, 요리에 대한 세 기사가 나온다. 세 기사의 주체는 모두 규범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혁명을 이룬다. 68 혁명 속 젊은 청년의 선언문은 정돈된 기자의 언어가 아닌 날 것의 청년만의 언어 속에서 힘을 발휘한다. 학생 지도자 제피렐리는 기자 옆에서는 어린아이였지만 동급생 곁으로 돌아갔을 때 지도자로서 힘을 다시 갖는다.

<프렌치 디스패치> - 감옥 예술가 로젠탈러와 간수 시몽

감옥 속 예술가 로젠탈러는 사회에서 벗어난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재료들과 대상으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 그를 알아본 평론가는 그를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현대미술 평론가 특유의 억지 호소에 기반한 가석방 신청은 허무하게 기각당한다. 모두를 조롱하기 위해 로젠탈러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 작품은 그를 가석방시키는 아이러니를 이룬다.

그리고 요리사는 독으로 새로운 맛을 느낀다. 네스카피에 경위는 작전 과정에서 요리에 독을 넣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도 먹지만, 쓰러지며 자신이 먹었던 어떤 맛보다 새로웠다고 평한다. 그들의 일탈은 잡지에 편집되어 들어가는 과정에서 한 차례 규칙성을 가지고, 다시 잡지의 폐간됨에 따라 사회의 규칙 속으로 흩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각각 사회적, 예술적, 미각적 성과를 이룬다.


웨스 앤더슨은 그렇게 규칙과 규칙으로부터의 일탈을 조율하여 음악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성과가 독이 되었는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렌치 디스패치>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하지만 여전한 그의 색채와 영화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 방식은 그의 다음 규칙으로부터의 일탈이 어떨지 기다려지게 한다.


우연히 웨스 앤더슨, C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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