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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Mar 19. 2022

울타리 부숴버리기

에드가 라이트의 세 가지 맛 코르네토 3부작

영화는 결국 현실로부터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는 것이다. 자신보다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나 고생 끝에 행복이 오는 모습을 보며 위로의 시간을 얻을 수 있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가진 완성도를 보며 감탄하며 즐길 수도 있다. 반대로 가장 말초적인 자극에 집중하여 재미를 주는 영화도 있다.


그런 자극과 재미에 집중한 영화를 오락 영화라고 부른다.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의 오락성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정 영화를 오락 영화로 분류하는 것은 그 영화를 통해서는 두 시간가량을 오락처럼 보내는 것 외에는 얻을 게 없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담겨 있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장르가 그렇듯, 장르 본연의 역할에 가장 충실하며 영화가 깊어지면 예술이 되고, 오래도록 되돌아보게 만드는 명작이 된다.


코르네토 삼부작의 포스터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들, 특히 세 가지 맛 코르네토 삼부작이 그렇다. 코르네토는 이탈리아의 콘 아이스크림 브랜드 이름이다. 아이스크림이 건강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싸고 맛있게 허기를 채워주는 것처럼, 영화는 맛있게 관객을 만족시킨다. 딸기 맛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부터 바닐라 맛의 <뜨거운 녀석들>(2007), 페퍼민트 맛의 <지구가 끝장 나는 날>(2013)까지 자극적이고 화려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와 아이스크림 삼부작이라는 다른 이름처럼 잔인함도 꽤 동반하지만 그 과장이 심하고 인위적이어서 오히려 잔인하지 않다. 대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맥주와 아이스크림과 함께 영화를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 Queen, Don't stop me now

우선 쉽고 빠르다. 편집을 통한 템포 조절로 영화 내내 신나면서 느려지지 않는 느낌을 만든다. 평범한 일상 장면에서는 수많은 컷으로 끊어 지루하지 않게 하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장면의 속도는 유지되지만 스토리의 속도가 빨라진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좀비를 만나도 달리는 대신 좀비와 같은 속도로 걷고, <지구가 끝장 나는 날>에서 깡통의 추격은 술집과 술집 사이로 제한되어 이동 시에만 다급한 모습을 보이는 등 빠른 장면을 기대할 때에는 느린 장면을, 느린 장면을 기대할 때에는 빠른 장면을 주며 속도 변화로도 재미를 준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상황에 알맞은 노래까지 추가하여 장면을 완성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템포 속에 이야기를 쉽게 전달한다. 세 작품 모두 나름 반전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까지 편안하게 전개된다. 후반부를 암시하는 복선들은 거의 모든 대사와 장면들 속에 있는데, 정말 다량으로 제시되며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반전까지 기다림 속에 참았다가 충격받는 대신 반가움 속 즐거운 마음으로 폭발적인 후반부를 맞이할 수 있다.


<뜨거운 녀석들> - 사이먼 스키너, 표정만 봐도 범인이다

또한 모든 것을 조롱한다. 장르를 조롱하고, 인물을 조롱하고, 불필요하게 어려운 모든 것들을 조롱한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좀비 영화, <뜨거운 녀석들>은 음침한 닫힌 사회의 스릴러,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은 외계인 침공 영화의 틀을 가져왔다. 그리고 해당 장르에 존재했던 클리셰들을 과장스럽게 드러내 웃음을 유발한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좀비 영화에 늘 등장하는 답답한 주변 사람들이나 사랑하던 사람이 좀비로 변하자 차마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뜨거운 녀석들>의 시골 어르신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건들을 노골적으로 은폐하며 외부인들을 적대시한다. 범인으로 유력한 사이먼 스키너는 사건 현장마다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대놓고 의심을 산다. 세 영화 모두에서 주인공이 멀쩡히 있는 길을 그대로 가지 않고 굳이 울타리를 뛰어 넘어가듯, 장르의 익숙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독특한 길로 향한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 좀비보다는 숙취 해소가 먼저다

그렇다고 그 악인들을 응징하는 주인공도 멀쩡하지만은 않다.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가 연기하는 두 주인공은 둘 중 하나는 아예 맛이 가있고, 다른 하나도 나사가 조금 빠졌거나 잘못 끼워진 사람이다. 독특한 의사결정 방식과 그와 맞지 않은 재난 상황에서의 빠른 행동력으로 주인공답지 않으면서 주인공 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빌려 과도하게 복잡해진 모든 것을 비판한다. 이득에 구애받지 않는 우정을 통해 이기적인 사회의 인간관계를, 틀에 맞지 않아 버려진 게리 킹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단조롭게 재단한 사회를, 옛 영화들의 이름으로 즐기기 어려워진 예술을 비판한다. <지구가 끝장 나는 날>에서는 아예 직접적으로 흉물과 예술 사이에 있는 현대미술 작품이 악당이 되어 주인공 일행을 노린다.


<지구가 끝장 나는 날> - 살아남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또 마신다

그리고 내가 맞고 너희는 모두 틀렸다는 마음 편한 결론을 준다.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범인이거나 악인이다. 사건이 시작되던 시점에서 주인공은 별종 취급을 받지만, 결국 그만 옳았으며 기이했던 선택도 정답이 맞다. 그를 신뢰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좀비가 되고, 그가 의심하던 사람들은 연쇄살인 사건의 공범이거나 외계인이 인간을 대체하고 놓은 깡통이었다. 방황하고 실패자 취급받던 주인공들이 결국 해피 엔딩을 맞는다는 점은 현실을 피해온 관객에게 교훈보다 먼저 안심을 준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결말이 가진 특별함도 있다.


세 영화 모두 삶을 뒤흔드는 대형 사건이 일어나지만, 있던 일을 억지로 되돌리며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들은 거기에 잘 적응해 살아간다. 좀비로 변한 친구와 함께 게임을 즐기고, 머리 대신 축구공이 있더라도 직장생활과 가장 노릇을 한다. 사고를 조금 치고 뒤죽박죽이 되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별 탈 없다는 묘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뜨거운 녀석들> - 안 넘어진 척 계속 달려가기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의 모든 일들은 돌고 돌아 끝내 세상의 끝 술집에 갔을 때 해결된다. 무모해 보였지만 그 행동은 결과를 만들었다. 세 영화 모두 나타나는 울타리 넘기는 거의 다 실패한다. 대신 넘어진 대로 일어나서 나아가려던 방향으로 달린다. 울타리가 무너지면 몸으로 뚫어서라도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무모함도 결말에 도달하면 어떨지 모른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왔듯이, 망가지고 방황하며 실패자가 되는 것까지 자신의 권리이다. 에드가 라이트는 그렇게 재미와 자유를 원하는 관객에게 원하는 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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