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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May 02. 2022

도시 속 음악

시카고, 라라랜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화에서의 소리는 말, 음악, 음향의 세 가지 유형을 가진다. 세 유형이 조합되어 장면을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거기에 노래까지 얹어 장면을 구성하면 뮤지컬 영화가 된다. 초기 뮤지컬 영화들은 널리 알려진 뮤지컬 공연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주로 시작했지만, 이후로는 영화 고유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뮤지컬에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중심이 있지만, 뮤지컬 영화의 중심은 미국이다. 화면에 옮기기에 적합한 화려한 모습의 뮤지컬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오즈의 마법사>, <사랑은 비를 타고>로 시작되는 고전 뮤지컬 영화가 먼저 만들어졌다. 그래서 미국을 무대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고, 특히 특정 도시를 조명하는 작품들도 있다.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현란하게 옮긴 <시카고>(2002), 할리우드의 꿈을 영화로 표현한 <라라랜드>(2016), 동명의 고전 뮤지컬 영화를 리메이크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가 그렇다. 각 영화는 제목에도 나타나는 도시를 이야기 내내 떠나지 않으며, 이야기 전개와 노래 모두에 반영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시카고> - Razzle Dazzle

시카고는 블루스와 재즈가 유명한 화려한 도시이다. 동시에 도시의 규모에 비해 좋지 않은 치안으로, 마피아가 넘치고 총기 사고가 빈번한 위험한 도시이다. <시카고>의 두 주인공은 도시의 두 가지 특성 사이를 오간다. 벨마 켈리는 공연장 위의 스타였고, 록시 하트는 그녀를 동경하는 보드빌 배우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벨마 켈리는 자신의 파트너였던 동생에게 배신당해 그녀를 죽이고, 록시는 클럽 사장과 친분이 있다고 거짓말하여 그녀를 이용한 남자를 죽여 둘은 감옥에서 만난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화려함으로 범죄를 묻고 다시 관중들의 환호가 있는 공연으로 넘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의 감옥과 가상의 공연장을 연결하고, 법정과 기자회견까지 일종의 공연장으로 연결한 화면은 가십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해 경쟁하는 벨마와 록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카고> - And All That Jazz

<시카고>의 음악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 대신 끈적한 재즈 위주로 구성되었다. 변호사가 부르는 'Razzle Dazzle'이나 록시의 남편이 부르는 'Mister Cellophane'처럼 다른 분위기의 노래도 등장하지만, 중심을 이루는 것은 록시와 벨마의 재즈 공연이다. 재즈의 발상지인 뉴올리언스에서 뉴욕으로 넘어가기 전 재즈는 시카고를 거쳐갔고, 그에 따라 시카고의 재즈도 긴 역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변화무쌍하면서도 퇴폐적인 재즈의 분위기는 감옥과 도시가 가진 위험성과 함께 인물들의 야망을 표현한다. 


<라라랜드> - Planetarium

LA는 할리우드가 있는 꿈의 도시이다. 라라랜드라는 도시의 이명이자 영화의 제목도 환상과 꿈의 세계를 의미한다. 무명 배우 미아와 무명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라라랜드>에서 서로를 만난 뒤 서로의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 도시는 그들의 꿈에 맞추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의 꿈같은 배경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들이 다니는 거리에 재즈 바와 촬영장을 두어 두 사람이 원래 꿈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한다. 오디션을 떨어진 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업을 잃고 풀 파티 옆에서 피아노를 치며 잠시 목표로 향하길 멈췄을 때에도 공간은 그들의 길을 다시 상기시킨다.

<라라랜드> - Another Day of Sun

<라라랜드>의 음악은 화려하고 풍족한 로스앤젤레스의 분위기처럼 색채가 넘치는 복장들을 한 인물들과 함께 주로 표현된다. 고속도로에서 모든 이들이 도시에서 자신이 이룰 꿈을 노래하는 'Another Day of Sun'부터, 꿈에 이르는 길에 고민이 있던 미아의  'Someone in the Crowd'나 미아와 세바스찬이 연애할 때 배경이 되는 'Summer Montage / Madeline' 속에 성공이 줄 화려함에 집중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나빠지는 'City of Stars' 같은 노래에서는 인물들의 색채를 조금씩 빼고, 음악과 꿈에 가장 깊게 빠진 순간에는 핀 조명 아래 놓인 인물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요소를 없애며 현실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꿈의 세계로 향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The Dance at the Gym

뉴욕은 여러모로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빠르고 바쁘고 부유하면서도, 극빈층과 범죄와 인종 간 갈등이 만연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는 조금 더 위험한 치안 속에 갈등이 격하게 표출되었다. 할렘가에서 살아가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백인과 히스패닉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부딪힌다. 이를 배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익숙한 스토리가 적용되어, 백인 갱과 히스패닉 갱 각각의 중심에 있는 토니와 마리아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사랑이 그려진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Tonight

뉴욕은 또한 뮤지컬을 대표하는 브로드웨이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은 갈등과 화해, 사랑과 이별 모두를 노래로 진행하는 전형적인 뮤지컬의 노래 사용 방식을 따른다. 마음도 노래로 표현하고 노래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미국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꼬집는 것도 'America'의 가사로 직접 지적한다. 영화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제하고 뮤지컬 공연을 고스란히 화면에 옮겨놓은 영화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오랜 문제를 다시 꼬집어준다.


<라라랜드> - A Lovely Night

세 도시의 다른 특징대로, 고전적인 방식을 따라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현란한 편집의 <시카고>, 화려하고 밝은 <라라랜드>는 전혀 다른 장면과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성취를 향해간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다. 사랑이나 꿈을 이루려는 성취욕이 없었다면 인물들은 처음 등장한 장면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가십거리에 묻히거나 연인과 다른 길을 가거나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욕망을 바탕으로 한 행동들로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를 넘어선 공통적인 특징은 결국 미국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성취와 성과를 중시하고, 희생이 있지만 발전을 계속한다. <시카고>는 가십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라라랜드>는 꿈꾸는 사람들을 북돋아주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직도 옛 갈등에서 못 벗어나냐며 훈계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세 영화는 도시의 모습과 그 속 음악으로,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다음 목표를 설정하여 나아가도록 자극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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