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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Apr 11. 2022

아론 소킨과 인물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

정해진 규범을 깨는 것은 어렵다. 특히 그 규범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쌓여왔을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규범을 깨어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혁신가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일종의 영감을 얻게 된다. 그들의 삶에 여러 역경과 이를 영화처럼 극복한 과정까지 있을 때,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이뤄낸 성과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아론 소킨은 현존하는 가장 수다스러운 각본가이다. 그의 각본 속 인물들은 상호 간에 수많은 정보를 대화로 공유하는데 그 대화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그는 또한 소재를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다룬다. 대표작인 드라마 <웨스트윙>의 경우 여러 전현직 대통령이 드라마에 빠질 정도로 흥미와 현실성을 적절하게 조화시켰다. 두 가지 특징은 풀어놓을 성공담이 많은 혁신가들을 스크린에 흥미롭게 옮겨놓는 데에 적합했다. 새로운 소통 공간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2010)를 시작으로, 승리에 다른 방식을 적용한 빌리 빈 단장의 <머니볼>(2011), 그리고 혁신을 대표하는 기업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2015)까지 세 혁신가의 이야기를 그의 방식으로 전해준다.


<소셜 네트워크> - 변호사님의 잘난 질문에 충분한 답변이 되었나요?

세 인물 모두 성공담이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기에 맞춰 영화도 인물을 독립적으로 살펴보고 만들어지는 대신 책들을 원작으로 선택하만들어졌다. 모두 논픽션으로 영화화에 적합하지 않은 차분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효과적인 각색으로 영화의 시간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원작의 선형적인 이야기를 마크 저커버그가 가진 두 건의 소송전과 과거 회상을 오가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사실 저커버그는 당시에는 아직 이룬 것도 애매하고, 이름도 덜 알려져 있었다. 지금이야 창사 이후 최대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때까지 페이스북은 큰 역경 없이 순조롭게 성장한 기업이기도 했다. 영화는 오가는 화면 사이에 사소한 갈등들 사이에서 발휘되는 저커버그의 타고난 찌질함을 강조하여 관계를 연결하는 기업의 대표가 가진 관계의 위기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머니볼> - 홈런을 치고서도 그걸 몰랐던 거죠

<머니볼>은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적으면 읽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성공이 중심에 있지만, 이전에 신인 드래프트에서의 새로운 선수 선택 과정과 빌리 빈의 선수 시절 경험, 제임스를 시작으로 세이버매트릭스의 역사까지 다룬 뒤에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선수 영입과 20연승으로 향한다. 영화는 간판스타를 잃은 상황에서 시작해 20연승으로 마무리되는, 쉽게 이해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선택했다. 이를 통해 원작에서 주었던 경영학적 조언을 넘어 삶에 대한 조언과 감동을 준다.

<스티브 잡스> - 1998년 아이맥 이벤트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는 저자가 스티브 잡스 본인과 인터뷰해가며 만든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시작부터 모바일 시대의 시작까지 이뤄낸 인물이기에 닮고 있는 내용이 매우 방대하다. 영화는 그의 삶 전체를 쫓아가는 방식 대신 그를 대표하는 요소인 세 차례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그의 삶을 소개한다. 그 세 가지를 그의 삶에 너무 이른 부분이나 너무 늦은 부분이 아닌 쇠퇴와 재기 시도와 화려한 귀환을 대표하는 매킨토시, NeXT, 아이맥에 대한 것으로 선택하여 인물이 겪은 곡절에 집중했다.


그들이 이뤄낸 혁신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람들을 그들에게 열광시키고, 그들의 성공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혁신은 새로운 것의 발명이 아닌 새로운 것의 과감한 도입에서 시작됐다. 마크 저커버그는 학교 여학생들의 얼굴을 비교하는 facemash를 만들었지만 취기로 인한 충동 때문이었다. 인기로 인한 서버 다운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수요로 파악하여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은 윙클보스 형제이다. 저커버그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먼저 서비스를 출시했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뤄낸 혁신도 빠른 도입이 핵심이다. 개인용 컴퓨터, GUI, 일체형 컴퓨터를 위한 기술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잡스는 이를 빠르게 적용하여 다른 기업보다 먼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차지했다,  

<머니볼> - 수학적으로 바라본 승리

<머니볼>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의 승리도 그렇다. 안타를 치는 것보다 아웃되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고, 선수의 신체적 특성이 아닌 기록을 중시하는 관점은 머니볼의 해인 2002년 이전부터 존재했다. 야구에 통계학과 경제학을 적용하여 승리를 계산하는 방식 또한 일부 야구팬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빌리 빈이 가졌던 다른 점을, 이를 먼저 적용했다는 것이다. 다른 구단에서 구석에 앉혀놨던 통계 전문가 피터 브랜드를 데려오고, 기존 방식을 고수하던 나이 든 스카우터들에게 새로운 방식을 선언한다. 한 발 빠른 적용은 다른 구단이 그 방식을 모방하기 전까지 머니볼 이론이 효과를 발휘할 시간을 주었다.


<소셜 네트워크> - 법정에서 보자고 선언하는 왈도

또한 그들은 감정보다는 기능과 성과에 집중했다. 그렇기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인물들을 모두 처냈고, 결국 홀로 남게 된다. 잡스와 저커버그는 애초에 타인의 감정을 잘 고려하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했고, 다른 요소를 고려하기에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까지 갈 길이 바빴다. 역사와 약간의 정으로 이어졌던 기존 사람들, 혹은 개국 공신은 무의미하게 자리만 차지하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머니볼>에서는 계획 밖에 있는 선수를 방출하는 장면으로, <스티브 잡스>에서는 워즈니악의 날 선 말들로 이를 드러낸다.

<소셜 네트워크>의 저커버그는 역시 성과를 이루지 못하여 거대한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은 모두 치운다. 시작은 창업 아이디어를 준 윙클보스 형제였다. 이후 숀 파커가 불어넣은 약간의 허세로 인해, 알고리즘 설계를 도와준 공동 창업자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왈도 세브린까지 처낸다. 영화 내에서 왈도가 마크에 의해 해고된 것은 그저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친구까지 칼 같이 처낸 마크의 선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겪는 외로움을 만든다. 

<스티브 잡스> - 애플 리사를 사용하는 리사

잡스는 영화에서나 실제로나 목표에 집중하느라 다른 모든 것을 통제하는 인물이었다. 소방서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비상구를 표시하는 조명까지 가리며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려고 한다. 목표를 향한 그의 집중은 수많은 애플 팬들이 줄을 서서 발표회를 기다리지만 가까웠던 인물들은 모두 그의 적이 되는 상황을 만든다. 차고에서 함께 출발한 워즈니악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아버지 같았던 스컬리와는 서로를 회사에서 내쫓게 된다. 특히 크리스앤 브레넌 사이에서 낳은 딸 리사에 대해 미국 남자 28%가 그녀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통제되지 않은 요소를 혐오하며 공격한 것은 그에게 큰 오점으로 남았다. 영화는 적이 된 인물들과의 대화를 각 프레젠테이션 전마다 삽입하면서 어린 리사의 시선을 직접 보여주어 잡스가 가했던 통제의 희생양이 된 인물의 존재를 확실히 표현해둔다. 


그렇듯 세 혁신가들은 그저 조금 빠르게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고 관계가 무너지더라도 목표에 집중한 인물들일뿐이다. 아론 소킨은 세 인물을 입체적으로 다루면서도 성과는 화려하게, 결점은 친숙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그가 지닌 장점인 많은 대화 속에 인물이 지닌 천재성과 평범한 우리와 가진 공통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실제로 이룬 성과에 비해 정점이 아닌 지점에서 끝나는 이야기는, 그들이 이후에 더 이뤄낸 일들만큼 관객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들이 분명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거둔 성공이 크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뒤 혁신가들을 더욱 동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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