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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Apr 02. 2022

선택권을 잃은 사람들

박찬욱의 복수 3부작

복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복수가 사적으로 진행되는 순간, 복수의 기저가 되는 억울함은 복수를 당한 사람에게도 생기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수가 이어지게 된다. 영화의 동력으로 복수가 사용되었을 때는 주로 복수를 완성하고 잠시 얻는 기쁨에서 멈추며, 관객은 복수의 쾌감만 얻고 관람을 마무리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를 현실적인 방향으로 돌려, 복수에 눈이 멀어버린 인물들과 결과가 비어있는 복수를 그려내었다.


복수 3부작의 DVD 판 포스터

박찬욱 감독 작품 중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는 복수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영어 제목에서 인물을 Mr.vengeance와 Lady vengeance로 번역했을 정도로 주인공들은 모두 복수만을 위해 영화 내내 달린다. 질주를 시작한 이상 인물들에게 복수 외에 다른 선택지는 남지 않으며, 영화의 발단, 전개, 결말 모두가 복수로 만들어진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고, 해소되더라도 찝찝하고 음울한 맛만 남긴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세 영화는 모두 납치로부터 시작한다. 납치는 명백하게 계획이 필요하며 의도가 반영되는 범죄이다. 폭행과 살인은 우발적으로 발생할 여지가 있지만, 납치는 다르다. 두 명 이상의 가담자가 필요하고, 감금할 장소도 준비해두어야 한다. 이는 피해자가 복수를 수행할 당위성을 부여한다.

<복수는 나의 것> - 세상에는 말이야, 좋은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어.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의 납치는 아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유괴이다. 영미와 백 선생의 대사로 각각 등장하는 좋은 유괴론에 따르면, 부잣집 아이를 잠시 맡았다가 돌려주고 부자의 돈을 받는 것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이 가고 부모와의 관계도 더 돈독해지는 좋은 유괴이다. 하지만 백 선생은 아이를 납치하자마자 죽이며, 아이를 잘 챙겨주던 류와 영미도 중요한 순간에 아이를 챙기지 못해 죽게 만들어 나쁜 유괴가 된다. 좋은 유괴론에 넘어간 류와 금자는 그 허상으로 인해 가해자로 변화하여 다른 이들의 슬픔과 복수를 불러온다. 또한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류 본인이,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금자의 딸이 납치당하여 피해자이자 복수자가 되기도 한다.

<올드보이> - 수감방. 갇힌 기한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건 슬픈 일이다

<올드보이>의 납치는 어느 날 밤 오대수에게 갑자기 벌어지며, 15년 동안 진행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해서 살던 인물은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반복되는 일과를 보낸다. 갇힌 이유, 갇힌 장소, 감금 기간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던 오대수는 첫날의 무조건적인 원망에서 시작해서 약간의 체념을 거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용의자를 찾기 시작한다. 탈출한 이후에도 자신을 가둔 사람이 누군지부터 찾아 나선다. 


그렇게 영화의 절반까지는 복수의 장을 만드는 배경 설명에 할애된다. 그리고 그 절반이 되는 지점에 원인이 되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준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유괴되었던 아이가 죽고 아이의 시신을 아버지인 박 사장이 안으며 시점이 류에서 동진으로 옮겨간다. <올드보이>에서는 오대수가 이우진과 만나고,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어린이집 교사이자 연쇄살인범인 백 선생의 현재 모습이 등장한다. 그 사건은 이후 인물의 방향을 오로지 복수로 제한한다. 금자의 딸 제니가 그 사람을 정말 죽일 것인지 물어도, 오대수의 연인 미도가 그냥 멈추면 안 되냐고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눈이 멀어버린 순간 달리는 것 외에 선택지가 남지 않는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 - 딸아이의 부검을 바라보는 박 사장

그 과정에서 복수자들은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는다. 처한 상황과 수행하는 복수 모두 인물을 변화시킨다. 이는 이전의 장면과 겹쳐지는 사건 이후의 장면으로 나타난다. <복수는 나의 것>의 박 사장은 딸의 부검을 직접 옆에서 지켜본다. 참혹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과 죽음을 안긴 원인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으면서도 그 과정이 시작된 이후로는 침통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범인으로 의심되는 류의 누나를 부검하는 장면에서는, 냉담하고도 건조하게 이를 구경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베개로 얼굴을 눌러 질식시키려는 장면이 두 차례 나온다. 처음은 거짓된 현장 검증에서 가짜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가짜였고, 다음은 진범인 백 선생을 대상으로 하는 복수의 수행이었다. 연출된 광기에서 진심 어린 광기로 변화한 금자의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올드보이> - 다리 위의 어린 우진

<올드보이>에서는 오대수에게 복수를 수행한 이우진이 이전 장면과 겹쳐진다. 오대수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복수를 완료한 시점에서 우진은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누나를 떠올리며 과거의 우진과 지금의 우진이 누나를 붙잡는 모습을 겹쳐 회상한다. 금기된 사랑을 저질렀지만 순수했던 과거의 우진이 흘리는 눈물과 달리 누구보다 잔혹해진 현재의 우진의 눈물은 깨끗하지 않다. 모든 일의 원인이 된 과거의 사건 속으로 잠시 돌아갔던 우진은, 복수를 마쳤지만 달라질 게 없는 허탈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진 외에 다른 인물도 도달한 결말이 개운하지 않다. 복수에 미쳤던 이들은 결국 그 대상을 죽였더라도 복수에 묻혀 구원받지 못하는 결말을 맞는다. 오대수는 혀로 저지른 죄로 인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며 이어나가는, 살아있는 게 더 고통인 삶을 얻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와 박 사장은 모두 자신이 당한 범죄를 가해자에게 잔인하게 되갚지만, 가해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아이가 처음 죽은 강에서 죽음을 맞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인 채로, 그들은 헛된 복수 속에 암울한 결말을 가진다.


<친절한 금자씨> - 피해자들의 단체사진

금자씨의 운명만 조금 다르다. 그녀 역시 복수를 수행하는 최초의 목적은 사적인 것이었지만, 잘 자라난 딸의 존재와 백 선생에게 당한 다른 피해자의 존재를 알게 되자 목적이 바뀐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금자는 다른 유괴 피해 가족을 불러 모은 뒤 직접 백 선생을 처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잠시 고민하던 피해 가족들은 번갈아가며 백 선생과 대면하기로 결정하여 한 명씩 번호표를 뽑아 방에 들어선다. 금자 씨는 그들 모두를 가해자이자 공범으로 만들었지만, 유괴 및 살해 사건의 피해 이후 삶의 어떤 것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던 그들에게 유일하게 선택권을 제공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복수의 집행 이전에, 아이들이 겪었던 고통은 낡은 테이프에 담겨 부모와 관객에게 상영된다. 다른 복수와 달리 부모의 복수는 방법이 잔혹하더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며, 이전까지의 과격했던 금자 씨의 모습도 숭고하게 나타난다.

<친절한 금자씨> - 두부 케이크와 금자 씨

숭고한 복수를 반영하듯, 이미 잃은 딸과의 시간과 예전에 죽인 원모에 대한 죄책감은 그대로이지만 금자와 딸 제니는 함께 잘 지내게 된다. 성장한 원모는 금자에게 나타나 재갈을 물리더라도 남은 가족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그리고 금자는 영화 시작에서 거부했던 속죄의 두부에 얼굴을 파묻는다.


복수 3부작을 통해 복수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도, 3부작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복수를 일정 부분 옹호하게 된다.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지만, 복수는 그들이 할 수 있던 선택 중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지도 아니었다. 복수는 그렇게 해소되지 않는 아이러니를 가진 행위인 것이다. 잔혹하고 현실적으로 묘사된 세 영화의 복수에서, 박찬욱 감독의 선택권 잃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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