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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Apr 19. 2022

마이클 H.웨버 & 스콧 뉴스타드터와 풋사랑

500일의 썸머, 스펙타큘라 나우, 안녕, 헤이즐

Boy meets girl이라는 익숙한 작법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두 남녀는 서로를 만나 풋풋한 사랑을 나눈다. 둘의 이야기를 보며 관객은 함께 설렘을 경험하고, 우연과 운명에 대한 기대도 갖는다. 두 주인공과 그들의 사랑이 아직 어린 점에서, 주변 상황과 별개로 서로에게 온전히 빠져드는 순수함과 함께 만남과 이별을 통한 성장을 읽기도 한다.

<500일의 썸머> - 공원에서

마이클 H.웨버와 스콧 뉴스타드터는 그런 이야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각본가들이다. 스콧 뉴스타드터의 이별 경험을 각색한 <500일의 썸머>를 시작으로 두 각본가는 Boy meets girl 이야기를 조금 비틀거나 수정하며 함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었다. 그중 <500일의 썸머>(2009), <스펙타큘라 나우>(2013), <안녕, 헤이즐>(2014) 세 편에서 인물들은 풋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500일의 썸머> - The Smiths,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우연히, 둘은 만난다. 처음 만난 것은 짧은 순간이지만 눈빛을 주고받기만 해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설렌다. 관심을 가지고 건넨 대화 이후, 인연도 시작된다. <500일의 썸머>에서 톰과 썸머는 우연히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다. 썸머는 톰이 듣는 노래를 듣고 자신도 그 노래를 좋아한다며 말을 건다. <스펙타큘라 나우>의 셔터는 숙취 속에 에이미의 집 마당에서 깨어난다. 모든 파티를 돌아다니며 쾌락에 집중하던 셔터는 그날 아침 에이미와 함께 신문 배달을 다니며 자신이 속했던 곳과 전혀 다른 에이미의 모습에 빠진다. <안녕, 헤이즐>의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은 암 환자 모임에서 만난다. 지루하고 답답했던 모임은 서로를 바라보고 나서 떨리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에이미는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친구를 만든다.

<500일의 썸머> - 서로 다른 취향들이 모여있는 LP 샵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이 좋아한다고 말한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고, 에이미는 셔터의 초대를 받고 파티에 가서 함께 술잔을 나눈다. 상대방의 취향에 관심을 가지고 그 취향을 이해하려 시도하는 것만큼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없다.

썸머는 특히 톰의 취향에 관심을 가지고 갖고 다가서며 그에게 취향을 맞춰준다. 톰이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사랑하는 음악과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귀 기울여 들어주고 그가 꿈을 그릴 수 있게 도와준다. 자신과 맞는 운명적 상대를 찾던 톰에게, 그런 썸머의 모습은 운명과 같이 받아들여진다. 썸머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다소 부족한 톰의 미숙한 행동과 요구들에도 나름의 타협을 가지며 그에게 다가선다. 그녀가 톰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 시간 동안, 톰은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500일의 썸머> - 최고의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아침의 톰

맺혀진 인연 속에 둘은 함께 서로의 세게를 공유한다. 고통을 나누고, 꿈을 공유하고, 행복을 가진다. 그리고 둘만의 세계에 있게 된다. <500일의 썸머>의 톰은 최고의 시간을 보낸 다음 날 거리의 모든 사람이 춤을 추는 것으로 본다. 사랑한 뒤 새로운 세계로 빠져든 톰은 그들과 함께 길거리를 뮤지컬 공연장으로 만든다. <스펙타큘라 나우>에서는 온전하지 못한 사랑만 받았던 둘이 서로가 가졌던 결핍을 공유한다. 가까워진 둘은 열린 공간인 파티에서 벗어나 둘만의 공간으로 향하여 시간을 가진다.

<안녕, 헤이즐> - 안 죽고 너를 괴롭힐 방법을 찾을게

<안녕, 헤이즐>의 연인들에게는 둘만의 언어로 그들의 세계로 향하는 방법이 있다. 어거스터스의 절친한 친구 아이작은 연인과 서로 Always를 되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애이지만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보여주는 둘만의 오글거리면서 귀여운 표현이었다.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의 관계가 깊어졌을 때, 둘은 자신들의 Always로 Okay를 정한다. 즐거운 것보다 고통스러운 게 더 많은 삶이기에 서로가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Okay를 반복한다. Okay와 Always는 현실에서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아이작의 연애는 영원하지 못했고,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의 몸은 괜찮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공평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둘만의 세계에 함께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기에, Okay라는 인사는 계속된다.


여느 풋사랑이 그렇듯, 세 쌍의 연인들 모두 결말에 도달한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남들보다 일찍 찾아온 죽음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다른 인물들은 미숙함으로 인해 함께 해피엔딩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마무리는 그들을 성장하게 만든다. 이전의 인연을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삶을 이해한다.

<스펙타큘라 나우> - 자기소개서 2번 항목: 도전, 고난, 역경의 경험을 서술하시오.

<스펙타큘라 나우>의 셔터에게 삶은 그저 즐기는 것이었다. 파티를 돌아다니고 술에 실컷 취하고 여자를 만나는 쾌락과 현재에 집중한 삶이었다. 도전, 고난, 역경의 경험을 서술하는 자기소개서 항목에 셔터는 당당하게 자신이 즐겨온 일들을 제시한다. 강박에 가깝게 즐거움에 집중하던 셔터의 인생관 뒤에는 그가 가진 결핍이 있었다. 인식하지 못한 채로, 그는 즐거움을 위해 가볍게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흔적을 그대로 닮아간다. 이를 알아챈 셔터의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게만 아버지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었다.

어렵게 찾아간 아버지는 놀랍도록 아들에 관심이 없다. 전화 너머에서는 상냥했던 그는 바에서 나눠마신 술의 계산도 아들에게 떠넘긴다. 쾌락만 추구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을 전하는 모습을 본 셔터는, 그가 가진 삶의 방식이 주는 악영향을 깨닫고 에이미에게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라고 말한다. 에이미와의 연락을 끊고 자신이 가졌던 결핍을 마주한 다음에야, 자신에게 있던 고난과 역경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셔터가 연락을 끊고 숨었던 에이미가 다니는 대학교에 찾아가는 것이지만, 이는 다시 연인이 되기보다는 만나지 않고 책임을 피했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셔터는 에이미를 통해 그의 삶에 이전에 없었던 책임을 찾게 되었다.


<500일의 썸머> - 운명과 우연에 대해 이야기한 벤치

그리고 그 풋사랑은 결말로서 하나의 시작이 된다. 반대로 머물러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없고 이전의 마무리도 되지 않는다. <500일의 썸머>의 연애는 톰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끝난다. 그녀가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던 톰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둘 사이에는 썸머의 싸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었고, 톰은 여전히 썸머의 취향에 다가서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강요했다. 톰은 그녀가 좋아하는 링고 스타도, 그녀가 보고 울던 <졸업>도, 그녀가 나비 문신을 하고 싶다는 말에도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했다. 썸머는 톰과 달리 자신이 읽는 책에 대해 질문한 남자에게 운명의 끌림을 느끼고, 그 운명을 반갑게 맞이한다.

톰의 세계는 한 차례 흑백으로 전환되며 무너져 내리지만, 이윽고 다시 지어진다. 운명이 없다고 말하던 썸머의 생각을 톰도 따르게 되었지만, 우연이 주는 기회 속에서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후 우연이 만들어준 어텀과의 만남에서 적극적으로 다가섰고, 그때 톰의 모습은 썸머와 함께 있을 때보다 밝고 빛난다. 그녀 역시 운명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연은 톰에게 그녀를 보여주었고 톰은 우연이 준 기회를 수락했다. 썸머가 지나가고 만난 어텀과 함께, 500일의 시간이 마무리되어 새로운 1일이 된다.


<500일의 썸머> - day 1

이야기는 모두 연인의 이별로 마무리된다. 각본가의 경험 혹은 원작 소설의 결말이 그렇기도 했지만, 온전히 마무리되기 어려운 서툰 사랑의 모습들은 그런 공통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동시에 새로운 첫 날을 나타내는 장면에서 삭막했던 나무에 잎과 꽃이 돌아오고 해가 뜨는 것처럼, 희망의 시작도 전해주어 관객을 다독인다.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와 성장담에서, 등장인물에게 다가올 다음 사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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