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특수 촬영 전문 스태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감독을 맡게 된 지금도 특유의 미적 감각과 기괴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양서류나 곤충을 매우 확대해서 묘사하거나 인간에 그 특징을 섞은 기이한 크리처를 만들어 작품에 동화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준다.
하지만 시각적 공포를 넘어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럽게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다. 외양이 상대적으로 평범하더라도 욕망에 미친 인간은 기괴한 크리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판의 미로>(2005)는 동화적 세계와 인간 세계가 섞여 있는데, 두 세계의 악당은 모습은 다르더라도 행동이 동일하게 그려진다. <셰이프 오브 워터>(2017)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는 되려 인간들에게 실험당하며 갇혀있는 상태이다. <나이트메어 앨리>(2022)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중 처음으로 인간들만 등장하는데, 오히려 가장 기괴한 모습을 이룬다. 세 영화는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욕망에 휩싸인 사람은 어떤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없이 잔혹해지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부품이나 체스 말로 취급된다. 스스로가 추구하던 욕망에 휩싸여, 나중에는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함에도 스스로가 가진 주도권을 과대평가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힘을 휘두르게 된다. <판의 미로>의 비달 대위는 프랑코 독재정권 하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성공에 심취한 인물이다. 반군들을 거리낌 없이 학살하며,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부수적인 요소로 여긴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스트릭랜드 대령도 마찬가지이다. 연구소에 양서류 인간을 가두고 실험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며 전기충격을 가하는 등 학대와 고문만 반복한다. 두 인물은 특히 폭력이 굳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조차 폭력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모든 상황을 장악한 스스로를 만족스러워한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탠턴 칼라일은 처음에 유랑 극단에 들어왔을 때는 생존을 위한 잠자리와 먹거리 등 일차적인 것만 원했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되고 독심술이라는 기술이 생기자 돈과 명예를 가지고자 하는 야망이 생긴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박수갈채를 받는 단계를 지나자, 더 큰 성공을 위해 스스로를 강령술사로 자칭하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금전적으로 활용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그 역시 욕망에 몰입하며 점차 폭력적으로 변한다.
목표에 매몰되어 가까운 사람도 신경 쓰지 않는 이들에게 여성이나 어린아이, 흑인 등 당시의 사회적 약자는 혐오의 대상이거나 거슬리는 존재일 뿐이다. 부족한 힘과 능력에도, 영화 속 사회적 약자들은 순수한 의지로 그들에게 대응한다. <판의 미로>에서 정부군의 폭력에 맞서는 반군은 약자를 위주로 조명된다. 붙잡혀 고문당하는 이는 말을 더듬고, 총격을 받아 다리를 절단하는 이는 노인이며, 가장 용맹하게 앞서서 정보를 빼돌리는 사람은 여자 하인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전장 가운데에서 평화와 환상을 꿈꾸는 주인공은 어린 여자아이 오필리아이다. 이들은 군홧발에 맞서 자유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려 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양서류 인간을 돕는 사람들은 1960년대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동료 젤다는 흑인이며, 룸메이트 자일스는 성소수자이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은 같은 인간임이 의심스러운 스트릭랜드보다는 양서류 인간의 입장에 공감하여 그를 돕는다. <나이트메어 앨리>에는 스탠턴의 아내 몰리만이 순수함을 지켜낸다. 스탠턴을 사랑하여 함께 도시로 향하지만, 그가 선을 넘자 누구보다 앞서 경고하며 폭주를 멈춰 세운다. 방법과 정도는 다르지만 그들은 소극적으로나마 욕망에 미친 이들에게 맞선다.
그러나 순수함은 욕망에 맞설 뿐 그 폭주를 온전히 저지할 수는 없다. 비달 대위, 스트릭랜드 대령, 스탠턴 세 사람은 끝내 욕망에게 모든 행위를 맡겨버린다. 특히 자신이 완전히 통제한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계획에서 어긋났을 때, 반군들이 창고를 탈취하여 승기를 잡거나 실험 대상을 데리고 탈출하거나 가장 큰 사기의 판이 틀어질 때, 이들은 이성을 잃고 그저 달리게 된다. 결과는 다르지만 욕망은 완전히 분출되어 빈 것만 남는다.
<판의 미로>에서는 결국 비극을 불러온다. 반군들은 주둔지는 빼앗았으나 오필리아를 구해내지는 못했고, 소녀는 비달 대위에게 죽는다. 오필리아가 판에게 부여받은 과제 속에서의 죽음은 모든 과제를 완수하여 동화 세계의 공주로 돌아간 것이지만, 판과 판이 행한 마법들은 오필리아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순수한 환상이자 현실로부터 벗어난 거짓이다. 동화의 세계까지 빌려 폭력성과 위선을 비판하는 영화는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어 대상을 가리지 않은 잔혹함을 보여준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결말은 <판의 미로>와 같은 순간에 이르지만 현실 대신 환상으로 향한다. 양서류 인간을 바다로 돌려보내려던 엘라이자는 추격해 온 스트릭랜드 대령에 의해 총상을 입는다. 하지만 양서류 인간의 능력으로 상처가 치유되며 함께 바다로 들어간다. 세계에 속하지 못했던 엘라이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살아가야 했던 어인이었다. 절대악에 맞선 사회적 약자의 단결을 보여주던 영화는 그들을 같은 곳에 포함시켜 완전한 단결을 만든다. 그렇게 둘은 욕망의 세계를 벗어나 순수한 물의 세계로 돌아간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탠턴 칼라일은 욕망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넘겨준다. 처음 유랑 극단에 들어가 생존을 위해 가지고 있던 라디오를 주고,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자 독심술 스승에게 몸을 준다. 이어 도시에서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낯선 이에게 자신의 과거를 넘긴다. 신체와 허구만 남은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를 스스로 믿으며 위험에 도달한다. 계획이 흐트러지자 그는 연달아 살인을 저지르고 모든 것에서 도피한다. 생존의 욕구로 시작하여 성취욕까지 도달했던 그는, 결국 다시 가장 원초적인 욕구만 갈망하게 된다. 끝내 스스로의 신체까지 철창 속 기인 역할로 팔아넘기며,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달 대위는 아들에게 어떠한 것도 남기지 못한 채 죽고, 스트릭랜드 대령은 자신이 무시했던 어인이 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자마자 죽으며, 스탠턴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거의 죽은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존재들은 모두 제 욕망에 의해 모든 것이 종결된다. 기이한 존재들보다 더 기이해져 버린 그들의 모습과 한없이 하찮아진 결말을 통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욕망의 위험을 경고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