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즈 루어만과 폭죽

로미오+줄리엣, 물랑 루즈, 위대한 개츠비

by 돌고래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연극을 그대로 촬영한 영상과 영화는 장면을 자르고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이를 활용하여 영화의 서사 진행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성룡 영화처럼 잦은 편집이나 본 시리즈처럼 편집의 자제로 장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화려한 배경을 묘사한다고 했을 때도 이를 순차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전경과 이를 바라보는 인물 사이를 오가며 응축하여 표현한다.


바즈 루어만 영화는 편집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함에 집중한다. 현란한 조명과 선명한 색채, 신나는 음악 속 연쇄적인 편집과 연결로 빛나는 순간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묘사한다. 가장 빛나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능숙한 만큼, 그 빛이 과도하게 밝게 타오르다 꺼지는 순간까지 극적으로 다뤄낸다.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하기보다는 널리 알려진 요소들을 가져온 <로미오+줄리엣>(1996), <물랑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 그의 능력이 잘 드러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디카프리오.jpg <로미오+줄리엣> - Thus from my lips, by yours, my sin is purged

주인공들은 모두 화려한 삶을 살아간다. 목적이 없던 화려함은 운명을 만나며 의미를 가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각자 가문의 애정이 집중된 사람으로서 무난하게 살아가다, 서로를 만난 이후 서로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물랑 루즈>의 새틴과 크리스티앙은 불분명한 카바레의 세계에서 서로를 보고 꿈을 가지고, 꿈과 사랑 모두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개츠비는 평생 데이지만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한다. 그가 사는 웅장한 저택과 반복해서 개최하는 성대한 파티도 모두 데이지를 위한 것이다.

물랑루즈_편집전.jpg <물랑 루즈> - And I will always love you

접점이 없던 인물의 연결은 감독이 가장 화려하게 구성한 파티 장면에서 드러난다. 로미오는 캐플릿 가문에서 개최한 파티에 참석하다 어항 너머로 줄리엣을 마주한다. 침묵 속에 눈빛을 교환한 뒤 둘의 밀회가 시작된다. <물랑 루즈>의 첫 만남은 속임수로 시작된다. 크리스티앙을 재산가로 오인한 새틴은 그를 유혹하기 위해 직업적으로 돌진한다. 하지만 자신의 요구애 바로 응하는 대신 시와 대사로 사랑을 전하는 그에게 빠져든다. 뒤늦게 그가 무일푼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마음을 이미 크리스티앙에게 주고 나서이다. <보디가드>로 널리 알려진 노래의 후렴을 함께 노래할 때, 카바레 내부에서 폭죽이 터지며 그들의 사랑을 응원한다.

한잔.jpg <위대한 개츠비> -... I'm Gatsby!

폭죽은 <로미오+줄리엣>에서도 두 인물의 만나는 시퀀스의 끝에서 장면의 배경이 되어 터진다. <위대한 개츠비>의 가장 중요한 만남도 폭죽과 함께 마무리된다. 영화 속 첫 파티에서 개츠비가 만나는 인물은 그의 평생의 사랑인 데이지가 아니다. 저택에서 진행되는 파티의 혼돈 가운데에서 닉 캐러웨이에게 자기를 소개하며 가려져 있던 개츠비가 영화에 등장한다. 캐러웨이에게 접근한 첫 목적은 그가 데이지의 사촌이어서였지만, 서로의 행동을 통해 신뢰가 쌓이며 데이지에 대한 사랑보다도 둘의 우정이 부각된다.


smells.jpg <물랑 루즈> - Smells Like Teen Spirit

세 장면을 모두 마무리하는 폭죽은 함께 소개된 인물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재이며, 세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을 대표하는 소재이다. 폭죽은 터지는 그 순간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름답게 빛나며 주변을 화려하게 비춘다. 하지만 그 지속시간은 짧고 그 흩어지는 방향이 다양해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폭죽과도 같은 바즈 루어만 영화의 현란한 편집 방식은 세 영화에도 모두 적용된다. <로미오+줄리엣>에서는 두 가문 패거리가 길거리에서 만나 충돌하는 첫 장면에서,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캐러웨이가 개츠비로부터 잠시 떨어져 환락을 즐기는 장면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물랑 루즈>에서는 카바레의 아름다움과 쾌락이 뒤섞인 혼돈을 보여주기 위해 장소를 소개할 때 거의 매 초마다 장면을 끊어가며 혼란스러움을 유발한다.


화려한죽음.jpg <로미오+줄리엣> - When I shall die, take him and cut him up in little stars

짧은 지속 시간은 인물들의 사랑하는 순간에도 적용되어, 행복이 오래가지 못한다. 폭죽은 잠시 빛나는 순간이 끝나면 재가 되어 사라진다. 세 영화의 사랑은 잠시 희망을 보았다가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비극을 마주한다. 줄리엣은 서로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운명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위장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불운으로 그 계획이 로미오에게 전달되지 못해 로미오는 줄리엣 앞에서 목숨을 끊고, 숨이 끊어지는 로미오 옆에서 깨어난 줄리엣도 그를 따른다. 둘은 비밀리의 결혼해 부부까지 되었었지만, 행복이 지속된 시간은 그 행복까지 도달한 시간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movie_1.jpg <물랑 루즈> - Come What May

<물랑 루즈>의 사랑은 그 시작과 전개 모두 거짓과 기만이 섞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쓰고 새틴이 주연을 맡은 공연의 투자를 위해, 새틴은 투자자에게 향해야 하지만 마음이 그를 가로막는다. 결국 둘의 사랑은 비밀 속에 지속되고 공개되었을 때 큰 역풍을 맞는다. 공연과 어우러진 고백 속에 잠시 행복을 맞이했다가도, 새틴의 죽음으로 일찍 마무리된다. 결국 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무대 위에서의 잠시뿐이었다.

그린라이트.jpeg <위대한 개츠비> - 언제나 밤새도록 초록색 불빛이 빛나고 있어요

개츠비의 사랑은 시간과 환경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는 위대함을 가지지만, 그 과도한 사랑으로 허무한 결말을 맞는다. 별장의 위치조차 사랑하는 사람이 켜는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정한 개츠비의 애정은 데이지에게 끊임없이 닿고, 그에 따라 데이지도 개츠비에게로 조금씩 마음이 향한다. 데이지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그녀는 단숨에 개츠비에게 모든 책임을 넘긴 후 자취를 감추지만, 개츠비는 그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침내 모든 자산과 명성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도, 데이지의 통화만을 기다리다 죽음까지 맞이한다. 데이지와 데이지를 위해 동원된 손님들 모두 장례식에 찾아오지 않고, 오직 캐러웨이만 빈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야기는 모두 불꽃으로 시작해 재로 마무리되며, 화려한 모습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것이 끝났을 때의 덧없음을 함께 보여준다. 오랜 휴식 이후 감독이 선택한 복귀작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로, 현실에서 밝게 빛나다 갑작스럽게 떠난 인물을 다루었다. 빛나는 순간을 그려내는 그의 능력 속에 이번에도 화려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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