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의 미래 3부작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을 근거로 한 작품을 SF라고 부른다. 창작되는 시기에 존재하는 과학과 기술,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기에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 예측은 실제 모습과 크게 빗나간다. 그러나 일부 창작물에서 제시하는 미래는 그 영향을 과학자들과 주고받으며 결과적으로 구현되고, 예측이 실현되기도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 오렌지>(1971) 세 작품에서 다가올 수 있는 암울한 미래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의 사건이 발생한 냉전 시기에 제작되어 비관적인 분위기를 반영했지만, 영화가 나온 지 반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그 내용에 공감하며 영화에서 미래를 보게 된다. 시대를 넘어서 전달되는 표현 수단으로써 음악 또한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다음 세대의 관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다룰 수 있는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발전한 기술은 일부의 충동만으로도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리퍼 장군의 독단적인 결심으로 소련에게 핵폭탄 발사 명령을 내리며 시작한다.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 흐르며 파멸을 위해 씩씩하게 나아가는 전투기와 달리, 정치인들과 군인들은 상황을 조금도 진전시키지 못한다. 어렵게 위기 상황을 소련과 공유한 뒤에도, 소련은 미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캐내려 노력하고 미국은 소련에게 다음에 앞서 나갈 요소를 찾는다. 평화를 바라는 이들은 우유부단하여 모든 결정을 제 시기에 내리지 못하고, 전쟁을 바라는 이들은 확고하게 목표의 달성을 위해 자결하거나 기까이 핵폭탄 위에 앉아 다가오는 전쟁을 즐긴다.
핵전쟁이 몇 시간을 앞두고 있음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우습고 즐겁다. 리퍼 장군이 전쟁을 결심한 계기도, 제자리를 맴도는 핵전쟁을 막기 위한 회의의 내용도 한없이 가볍다. 달려가고 있는 전투기와 동떨어진 영화의 분위기는 관객이 전투기의 시도가 어떻게든 막히겠다고 기대하게 되지만, 하필 한 전투기만 통신장비가 고장 나고, 하필 그 전투기의 남은 연료로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물이 있었으며, 하필 그 전투기는 숙련된 움직임으로 모든 방어시설을 피해 간다. 여러 우연이 겹쳐 핵폭탄은 투하되고 뒤이어 발사된 다른 폭탄들로 버섯구름이 연이어 피어오른다. We'll meet again이 흐르며 조성된 안락한 분위기는 전쟁과 동떨어져 보이는 안락한 시기에도 전쟁이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은 우연과 함께 인류의 예측을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진화 이전의 인류부터 다음 진화를 겪은 인류까지 다룬 일종의 교향시와 같은 영화이다. 교향곡의 특성을 반영하여, 영화는 4악장으로 미래를 보여준다. 영장류가 최초로 도구를 사용하며 폭력이 시작되는,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진화 두 주제를 제시하는 1악장을 시작으로 주제가 이어지며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 스케르초로 빠르게 흘러가며 AI와 인류의 대립을 그려낸 3악장, 진화를 마친 4악장까지 이루어진다.
서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3악장은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 안에서 승무원 둘과 컴퓨터 HAL 9000이 부딪히는 모습을 다룬다. 할은 절대 틀리지 않는 컴퓨터였지만 탐사가 이뤄지는 이유는 지구 상의 근거 외부에 존재했으며, 유일한 생존자 데이브는 컴퓨터의 계산을 벗어나는 행동으로 지구에서 그들을 파견한 목적과는 다르면서도 모노리스를 만든 이들이 원했던 탐사가 시작된 이유에는 들어맞는 미래를 만든다.
영화가 1악장을 마치고 인류의 첫 진화를 이끌어내는 모노리스의 등장과 함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제시된다. 모노리스는 인류의 발전을 외적으로 조종하는 존재들의 어떤 도구로 그려지는데, 그 도구까지 인류는 매번 우연히 다가서게 된다. 발전의 결과가 정해져 있더라도 우연은 그 양상을 조금 달라지게 한다. 할의 선택에 따라 디스커버리 호의 유일한 생존자는 인류가 아닌 컴퓨터가 될 수도 있었고, 두 승무원 중 데이브가 생존자로 결정된 것도 우연에 의해서이다. 인류 또한 마찬가지로 모노리스에 대해 탐구하려던 의도와 달리 데이브가 새로운 인류도 진화하여 지구로 복귀하는 예상 밖의 결과를 맞이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도구의 사용과 폭력을 연결 짓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기술은 그 자체로 인류에 위협을 만든다. 기술의 위협은 평범한 사회에서도 작용하여,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면서도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화할 수 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기술(시계태엽)과 자연 상태(오렌지)를 엮어 기술이 줄 수 있는 미래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알렉스는 폭력과 성에 몰두하여 욕망이 이끄는 대로 모든 일을 행한다. 다른 사람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 충족만을 위해 살던 알렉스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루도비코 요법의 실험 대상이 되어 욕망이 뒤집힌다. 성적 욕구나 폭력적 욕구가 발생할 때마다 구토감이 들며, 거리낌 없이 성범죄를 저지르던 모습에서 나신의 여성이 눈앞에 있더라도 만질 수조차 없게 변한다. 기술로 인해 욕망이 거세된 그의 모습은 묘하게 거부감을 유발한다.
거부감의 원인은 알렉스가 불쌍해서라기보다는, 강제로 자유와 선택이 기술을 통해 억제되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언제든 나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한 차례 더 등장하는 욕망의 거세는 감옥의 목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목사는 자신의 권위와 자신이 줄 수 있는 혜택으로 죄수들이 선을 가장하게 한다. 강제로 폭력을 시청하게 만드는 루도비코 요법은 이를 극단적으로 강화한 방식이지만, 사회화라는 것은 이미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루도비코 요법 중 폭력적인 영상과 함께 재생되어 알렉스를 고문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정열과 낙원을 노래하며 마무리된다. 강제된 안정보다는 자유를 제시하며, 영화는 결국 알렉스를 다시 치료 이전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알렉스를 개조한 것도, 원래대로 돌아오게 만든 것도 기술이기에 기술은 여전히 장점도 지니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를 그리면서도, 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우연이 제시된다. 핵폭탄이 순조롭게 투하된 것도, 우주선에서 유일하게 데이브가 남아 다음 인류로 진화한 것도, 알렉스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집으로 돌아가 결과적으로 다시 실험을 받게 된 것도 모두 우연에 의해서이다. 기술 발전은 그 자체로도 위협이 존재하지만 약간의 우연이 섞이면 그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 시대가 거치며 우연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쌓일 내일에 기대보다 큰 불안이 공존하는 이유이다. 발전된 기술로 인해 충돌이 증가하고 강제로 억제된 사회의 모습이 구현된 지금, 자신의 예측에 해당하는 모습에 큐브릭 감독이 끄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