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스튜디오는 새로운 소재로 영화마다 다른 감동을 준다.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평처럼, 픽사에서 다루는 소재는 주인 몰래 움직이는 장난감, 요리하는 쥐, 하늘을 나는 집에 사는 할아버지 등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다뤄졌던 전통적인 주인공들에서 벗어난다. 특이한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그들을 귀엽게 표현하고, 흥미로운 서사 끝에는 감동까지 있다.
스튜디오의 뚜렷한 색채 내에서도, 어떤 연출자가 작품을 맡는지에 따라 소재와 서사에 차이점을 가진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니모를 찾아서>의 앤드류 스탠튼 감독은 의인화된 주인공들 간에 가족적인 정서와 감동을 만들고, <아이언 자이언트>, <라따뚜이>의 브래드 버드 감독은 더욱 다루기 어려운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여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준다.
현재 픽사를 대표하는 감독인 피트 닥터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 <소울>(2020)까지 그의 최근 작품들은 소재를 점차 일상으로 가져왔다. 세 이야기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과 상황으로 이야기에 몰입시킨 뒤 삶과 기억에 대한 조언을 전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업> - Michael Giacchino, Married Life
삶이란 변화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변화란 흔하고 필수적이지만, 주인공들이 겪는 변화는 평범한 사람의 삶에 흔히 일어나는 종류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꼬마 라일리는 전학을 겪고, <소울>의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는 긴 무명 생활 끝에 갑작스럽게 공연 기회를 얻었지만 바로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다. <업>의 칼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앨리는 모험과 가족에 대한 꿈이 있었지만, 잇따른 사건 속에 그 꿈은 깨어지고 좌절되면서 다시 이어진다. 연결된 장면 속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시간에 걸쳐 가지는 변화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그렇게 항상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 삶이다.
변화 속에서 이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인물들에게 찾아온 변화에는 우연적 요소나 법적,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외적 상황도 개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언젠가는 찾아올 변화였다. 이사와 전학으로 살던 공간이 크게 변화하는 것도, 반복되는 도전과 좌절도, 성취하지 못하고 맞는 불완전한 마무리도 충분히 찾아올 수 있는 일이었다. 변화에 적응하여 다음 단계를 살기 위해서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 중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 - 나 대신 달에 데려가 줘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보낸다. 라일리가 아주 어릴 때 만든 상상 속 친구 빙봉은 라일리의 성장 이후 기억 저편에 숨어있었다. 전학 이후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도시에서 생활하며 모든 게 낯설어진 라일리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기쁨과 슬픔 모두 사라져 행동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라일리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며 성장하기 위해서, 즉 기쁨이와 슬픔이가 본부로 돌아오기 위해서 빙봉은 잊히는 것을 선택했다. 빙봉과 함께했던 추억들은 노란빛의 기쁜 기억이었지만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옛 추억은 변화되며 보내줘야 한다.
<업> - 그냥 집일 뿐이야
<업>의 칼 할아버지는 아내 앨리에 대한 기억 속에 쌓여 살았다. 그만큼 사랑이 깊었던 탓이겠지만, 사랑은 세월이 흘러가며 고집이 되어 남았다. 이제 칼은 집, 가구, 사진에 대한 과도한 애착을 가진 괴팍한 할아버지가 되어, 뜻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겠다는 목표를 뒤늦게 이루기 위해 한 행동도 소중한 집까지 통째로 옮긴 것이다. 옛 목표를 가지고 앨리가 떠난 그 시점에 멈춰있던 할아버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 기억 속에 갇혀있지 않으면서부터이다. 꼬마 러셀을 돕기 위해 집 안의 물건들을 모두 집 밖으로 던졌을 때 멈췄던 집은 떠올랐다. 마침내 무엇보다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집까지 끊어냈을 때, 칼은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해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소울> - 나는 내 삶의 매 순간을 살아갈 거야
<소울>의 조 가드너는 평생 꿈을 꿔왔던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공연하고 그들이 그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그런 음악적 성취만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확신하여 긴 무명 생활을 버텨왔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을 저지르려 할 정도로, 그는 그 꿈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삶은 그런 맹목적인 꿈 없이도 넓고 아름다운 곳이다. 어떤 멘토가 붙어도 삶에 대한 동기를 얻지 못했던 22가 찾은 답은 일상 속 행복이었다. 거리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거나 맛있는 피자의 냄새를 맡는 등, 일상을 체험해본 것만으로도 22는 삶을 살아갈 동기를 얻는다. 그리고 꿈이라는 불필요한 환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때, 조와 22 둘 다 새롭게 발견한 일상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업> - 엔딩 크레딧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기억을 남기며 삶 속에 행복을 찾아간다.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 섬이 무너질 때 모든 감정들이 절망했지만, 다시 지어진 섬은 더욱 화려해졌다. <소울>의 22와 조는 이제 매 순간을 반갑게 맞으며 살아갈 것이다. <업>의 홀로 있던 인물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가족이 된다. 엔딩 크레딧 옆에서 칼 할아버지와 러셀, 더그는 서로의 가족이 되어 사진과 같이 기억을 남겨간다.
픽사의 모든 이야기는 어린이와 어른에게 주는 울림이 다르지만, 피트 닥터 감독의 이야기는 특히 지울 기억과 미련이 더 남은 어른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불필요한 미련과 기억에 얽매인 시간들이 떠오르며, 여건 상 쉽지 않더라도 내일부터 이전 것을 버리며 새로운 것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