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월광보합 + 선리기연
성공적인 사랑을 위한 조건은 꽤 까다롭다. 두 사람이 가진 마음의 방향이 맞아야 하고, 그 시기도 맞아야 한다. 약간 현대적인 기준을 더하자면,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할 수 없다는 조건까지 붙는다. 하지만 마음은 이론과 같지 않아서, 때로는 정해진 바가 있더라도 새로운 방향으로 마음이 향하곤 한다. 이를 실행하였으면 물론 비난받겠지만, 실행하지 않았으면 그런 이뤄지지 못한 마음에 대한 것이 조금은 애틋한 형태로 남아 영화나 음악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주성치는 사람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에 가장 능한 배우이다. 언어 하나 이해할 수 없음에도 그 행동을 통해 웃게 하고, 그 웃음 끝에 울음도 만들어낸다. 당연히 그가 이해한 마음 중에서는 사랑도 있다. 배우의 경험을 약간 더해, 그의 영화 속 사랑에는 늘 고민에 빠진 끝에 감정을 토하는 대사가 담겨있다. 순애보적인 사랑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거나 웃을 수 있는 갈팡질팡하는 사랑을 그려낸다. <서유기-월광보합>(1995), <서유기-선리기연>(1995) 두 편의 이야기는 가장 주성치다운 웃음을 주면서 그 감정의 굴곡까지 담아낸다. 뒤늦은 사랑이 그려지는 두 영화 속에서 관객은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을 따라가다 울음까지 마주하게 된다.
서유기가 중국에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인 만큼, 두 영화는 서유기의 시작부터 설명하는 것이 아닌 손오공 등 주요 인물들은 관객이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 그를 넘어선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선 첫 편인 <서유기: 월광보합>의 시작부터 손오공이 관세음보살을 대상으로 말썽을 피우다 벌을 받고 삼장이 이를 대속하는 것으로 빠르게 흐르고, 뒤이어 작은 마을의 산적 이야기로 이어지며 본격적인 줄거리를 다룬다.
지존보는 산적의 대장으로 터를 잡아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낯선 여인이 찾아와 그를 포함한 산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환생한 손오공과 그의 옆으로 오게 될 삼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제압당한 산적들은 몰래 여인을 죽이려고 하다가 갑작스럽게 거미 요괴 춘삼십낭으로 변한 그녀에게 크게 당한다. 사태는 머지않아 마무리되고, 이윽고 찾아온 다른 요괴 여인, 백정정을 사랑하게 된 지존보와 지존보를 손오공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하게 된 정정은 조금씩 마음을 키워간다.
영화 속에서 처음 나타나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지워주는 사랑이 된다. 잊기 위한 사랑은 으레 짝사랑 형식으로 이어지지만, 지존보의 활약으로 마음이 쌍방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손오공만을 향했던 정정의 사랑도,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오는 지존보의 모습에 그에게도 마음이 향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둘은 깊은 정을 나눈다. 방황하며 정정을 외면했던 손오공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요괴로서의 끔찍한 모습도 외면하지 않는 지존보의 행동을 통해 치유된다. 손오공과 달리 올았던 지존보의 마음은 정정이 춘삼십낭의 계략으로 죽었음에도 월광보합으로 수십 번 다시 도전하며 그가 그녀를 살리려고 노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사랑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한 길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사실도 영화는 웃음을 섞어 전해준다. <서유기: 선리기연>부터는 정정을 구하기 위해 500년 넘어 과거로 돌아간 지존보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손오공임을 깨닫게 된 그는 더욱 정정을 그리워하지만, 마음과 달리 사랑은 하나만 찾아오지는 않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막무가내 같은 자하는 지존보, 혹은 손오공이 가지고 있던 월광보합을 빼앗는다. 처음에는 월광보합을 되찾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는 척을 한 것이었지만, 그도 그녀와 함께 있다 보니 점차 마음이 변하게 된다. 그럼에도 돌아갈 처에게 향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자 자하도 선을 넘지는 않고, 마침 그 시대에 사는 정정과도 만나 드디어 혼례를 올리려 한다.
하지만 두 여인은 모두 그의 심장으로 직접 들어가 그가 가진 가장 솔직한 마음을 듣는다. 그는 잠이 들었을 때도 정정을 찾는 인물이지만, 그보다 세 배 정도 되는 횟수로 자하 또한 찾는 인물이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은 두 사람을 좋아하는 것 모두 진심이지만 자하를 향한 마음이 정정을 향한 마음보다 크다고 모두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양심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은 두 여인은 모두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여 운명의 상대가 아닌 실제 상대를 고르라며 자리를 비키고 기다린다. 모든 선택이 지존보에게만 남게 된 상황에서, 그는 운명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상대를 구하기 위해 마음을 선포하며 달려든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후회하는 일이라며, 지존보는 미리 말하지 못했던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자하를 선택한 지존보는 이제 속세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선택하여 오공이 되지만, 그 대가로 온전한 사랑은 영원히 고백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오공은 두 번째 기회에서도 개인의 숙명과 사랑이 충돌하게 되어 솔직한 목소리를 전하지 못하고 끝난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잠시 인사는 하지만,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후회 섞인 마음은 손오공에게 계속 남을 것이다.
두 고백에서 오공은 사랑의 유효기간을 만 년으로 쓴다. 그 시작은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써 둘이 함께 갈 수 있지만 끝도 꼭 그렇지는 않다. 자하가 앞으로 환생을 반복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질 동안 오공은 홀로 스스로 정한 시간을 지켜나갈 것이다. 물론 그 기간을 지키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산적으로 등장하여 급소를 밟힐 때마다 웃기 바빴는데, 어느덧 원숭이의 고백에도 감동하여 눈물짓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제천대성의 마음만큼이나 즐겁게 들썩이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사랑은 마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