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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Oct 02. 2023

허상을 쫓는 사람들

흑사회 + 흑사회 2

성공의 최우선적인 항목으로 돈과 명예가 주로 꼽힌다. 가치 있는 목표인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 및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유대 관계를 간과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쌓는 것은 의미 있는 목표이지만, 이러한 목표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다 보면 사랑하는 이들과의 연결을 잊어버리거나 놓칠 수 있다. 사회적 지위를 높이거나,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는 것도 결국 가장 주변을 놓치면 빈 곳이 생긴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폭력을 기반으로 그 자리에 오르는 조직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부> 시리즈에서 마이클 콜레오네가 보인 행동과 허망함이 그랬고, <아이리시맨>(2019)에서 프랭크 시런과 주변 사람들의 단절이 그렇다. 가장 극단적인 갈등 해결 방법인 폭력을 흔히 사용한 경우, 대화라는 해결책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게 된다. <흑사회>(2005), <흑사회 2>(2006)는 그런 조직에서의 낭만과 헛됨을 자주 다루는 홍콩 영화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표면적으로는 표결로 운영되는 깡패 조직을 설정하여 그 폭력의 발생과 권력의 무상함을 그려낸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흑사회> - 록과 따이디

홍콩 삼합회 워롄싱은 기존 보스가 임기 2년을 채우면 조직원 전체적인 투표를 거쳐 새로운 보스를 뽑는 민주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흑사회>의 시작에서 록(Lok)과 따이디(Big D)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기존에 하던 일도 하고, 아들과의 시간도 보내며 침착하게 살아가는 록과 다르게 따이디는 조금 더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으로 일종의 선거운동을 이어간다.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었던 원로들의 의견으로 인해 록이 표결에서 승리하지만, 따이디는 결과에 불응하여 일부 원로를 납치하여 협박하거나 조직의 권력을 상징하는 용두단장을 절도하는 등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폭력을 도입한다. 급기야 자신을 보스로 한 조직으로 분리하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친다.


영화는 다층적인 인물 관계, 변화하는 동맹, 권력 투쟁 등을 다루며 복잡하게 진행된다. 감독은 추격전에 한결같이 롱테이크를 적용하거나 인물의 감정이 명시되는 순간 얼굴로 클로즈업하는 등 상황을 가장 생경하게 전달하 방법을 통해 관객도 그 암투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렇게 나타나는 뇌물을 동원한 따이디의 선거 운동과 이미지 메이킹을 기반으로 한 록의 선거 운동의 대비도 인상적이었고, 중국에 있던 용두단장을 구해오려는 수하들의 다채로운 구도를 기반으로 한 추격전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흑사회> - 승리한 록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침착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폭력을 행하는 록의 방식이었다. 용두단장을 맡고 있던 조직 원로 풍음은, 따이디와 록의 싸움에 휩쓸려 갖은 수난을 당한다. 조직에 환멸을 느낀 그는 아는 모든 것을 경찰에 털어놓으려고 하지만 록의 변호사에게 그 사실이 전해진다. 록은 주저 없이 풍음의 아들을 교통사고를 위장시켜 죽이고, 풍음에게 그 기사를 보여주어 자살하게 만든다. 이는 복잡했던 권력다툼이 해결된 이후에 다시 반복된다.

<흑사회> - 록을 지켜보는 아들

록과 따이디는 여러 사람들이 희생된 끝에 서로를 인정하며 조직을 절반씩 맡아서 이끌기로 한다. 록의 아들과 따이디의 아내까지 네 명이 낚시하러 갈 정도로 절친한 사이도 된다. 하지만 낚시 중 따이디가 잠시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자, 록은 주저 없이 그를 돌로 죽이고 이를 목격한 그의 아내도 죽인다. <대부>나 <대부 2>처럼 가까운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록은 콜레오네와 다르게 보이는 침착함으로 공포를 유발한다. 묵묵히 두 사람을 암매장하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전까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공포에 질린 록의 아들이 보인다. 하지만 록은 차에 들어가 있으라고 할 뿐 침착하게 하던 살인을 이어 나간다.


<흑사회 2> - 록과 록의 측근들

<흑사회>는 그렇게 권력을 위해 자신의 이미지와 성격을 비롯해 모든 것을 통제하며 나아가는 잔혹한 인물을 그려낸다. 뒤를 이은 <흑사회 2>는 다시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후계를 놓고 다투는 순간을 그리며, 인물들의 가족을 더욱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록은 자신의 대자로 들어온 수하 중에서도 가장 맹목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암살 담당인 제트를 밀어줄 생각이었지만, 사업 담당인 지미가 뜻밖에도 조직 보스에 출마하며 흐름이 바뀐다. 지미는 사업가로 신분을 세탁하고 의사 아들과 변호사 딸을 비롯한 행복한 가족을 꿈꾸고 있었지만, 사업 확장을 위해서는 보스의 권력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되자 거절하던 출마를 선택한다. 사업에 크게 성공한 지미가 보스가 될 경우 권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록은 원로를 죽이거나 지미의 사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다시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흑사회 2> - 위협을 받기 시작한 지미

회장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록과 사업가이지만 회장 자리가 필요한 지미의 대립은 지미의 선택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한다. 늘 사업가로서의 태도를 유지했던 지미는 권력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자 사람을 살아있는 채로 개의 먹이로 주는 등 조직원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후 가족이 개입되는 것은 같지만, 두 인물의 선택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흑사회 2> - 사업가로서의 지미

지미는 늘 조직에 속했다는 부분을 감추려고 하며, 자신이 얻은 부를 바탕으로 아내와 자식들은 깨끗한 삶을 살기 기대했던 인물이다. 아내가 제트에게 협박당할 때도 그에게 철저하게 보복하기보다 이성적인 태도로 대하고, 경찰의 압박에도 순조롭게 응대하는 등 부를 가지면서 사회적 신분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행위도 저지르고, 끝내 경찰에게 이용당해 사업가로서 살 수 없게 되자 가족을 위해 꾸던 꿈을 잃어 홀로 좌절한다.

반대로 록은 아들의 존재와 폭력의 해악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한결같이 은밀함 속에 폭력을 행하던 인물이다. 이미지 메이킹의 대상에 아들이 없었기에, 그의 실체를 본 아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며 상납금을 내는 등 폭력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아들에게 폭력을 가한 이들에게 대신 복수를 행하지만 아들은 오히려 록을 두려워하고, 끝내 록이 죽임을 당할 때까지도 여전히 그의 폭력성으로부터 도망갈 뿐이다.


두 편의 이야기는 부와 명예를 요구하는 가운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어두운 경쟁의 상황에서 인간성과 도덕성이 상실되는 장면을 더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결국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간성과 유대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두 영화는 권력과 성공이라는 허황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잊지 않도록 경고하는 중요한 예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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