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 사토시 - 퍼펙트 블루, 파프리카
목표를 닿을 수 있는 높이에서 최대한 높게 세우는 습관이 있다.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성장이 이뤄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달성한다면 그만큼 큰 보상을 얻고, 그렇지 않더라도 얻어가는 게 많아진다는 계산에서 나온 습관이다. 문제가 되는 점은, 그 진행 과정이 종종 괴로워진다는 점이다. 목표를 계속 보다 보니 당연히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서, 그에 미치지 못했을 때 며칠 밤을 새우는 등 무리를 하거나 달성이 멀어질 때마다 한없이 자책하게 된다. 처음 세울 때만 해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던, 나의 현재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꼭 목표를 달성하느라 열심인 것만도 아니다.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에도 깊게 빠져든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 수시 원서와 함께 수능 성적발표와 함께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첫 입사 면접 준비 때에도 근무를 시작한다면 처음 가질 연휴를 위한 계획부터 마쳤다. 달성하려는 목표를 기쁘게 마치고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즐거운 망상이 이어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구체적인 여행계획과 함께 꼬인 시험이 남아 있었다. 앞선 경우와는 반대의 마음에 매몰되어 현재를 잃은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과제가 생길 때마다 자기 비하와 몽상이 반복되는 나에게, 길 잃음을 반복하는 콘 사토시 감독 작품 속 인물들은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다. 각 인물의 작품의 시작 시점에 가지고 있던 열망은 명확하고도 단순하다. 누군가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를 품어보고 싶어 하고(<크리스마스에 기적이 일어날 확률>), 누군가는 좋아하는 스타를 동경하며 만나고 싶어 하며, 또 다른 이는 그 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그러나 그 욕망은 인물들을 현실로부터 유리시켜 우연이 만들어주는 복잡한 상황에 떨어지게 만든다. <파프리카>에서는 아예 욕망이 한없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인 꿈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혹은, 꿈에 그 꾸는 사람의 마음이 반영되듯, 인물이 현실에 상상을 능동적으로 더해 모두를 혼란에 떨어뜨린다. 어떤 쪽이든,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다음 선택을 위한 방향을 고민할 수 있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열망을 품은 인물의 시선은 쉽게 왜곡되며, 그 시선에서 본 대상에 대한 설명은 전후 관계나 논리적 해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콘 사토시 감독의 이야기에는 현실과 가상 세계,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며 섞여 있는데, 복잡하게 조각난 이야기는 퍼즐 조각처럼 깔끔하게 들어맞지 못한다. 장면 주인의 시선과 감정이 관여되어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은 진실에서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퍼펙트 블루>(1997)의 미마는 목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어긋나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인기 아이돌이었던 미마는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좋아하던 가수의 꿈을 살짝 접고 여배우의 길을 선택한다. 성공만이 목표인 매력적인 어린 스타는 자연스럽게 성적 매력을 활용하라는 압박에 휩싸였고, 한두 차례 하지 못한 거절이 모여 그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되는 대상으로 만든다.
미마가 받는 직접적인 위협은 미디어의 그녀에 대한 착취이고 잔혹하게 그려지지만, 더욱 심각한 위협은 그녀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이돌로서의 미마를 좋아하던 팬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감정을 담은 미마의 일기를 인터넷에 게재한다. 자신을 더욱 잘 대변하는 일기가 쌓이고 배우 생활이 주는 고통이 커질수록, 미마 또한 자신과 분리된 아이돌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전의 미마가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미마의 복수를 대신 수행하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미마 자신도 드라마에서 복수를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역할을 맡으며,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은 갈수록 악화된다.
<퍼펙트 블루>에서는 모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다른 누군가로 인해 자아를 잃게 된다면, <파프리카>(2006)에서는 다수에게 동일한 자아를 주입하여 문제가 발생한다. 꿈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배경 속에서, 다른 사람의 꿈으로 자유롭게 침투할 수 있는 기기가 유출되어 모두에게 동일한 혼란스러운 꿈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바이러스와도 같은 악몽이 주입된 사람은 꿈속의 세계에서 나오지 못하고 잠든 상태를 유지한다.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내밀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 세계에서, 아예 욕망으로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을 도피하며 머무르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꿈을 여행하는 기계, DC미니를 만든 토키타와 그의 조수 히무로가 악몽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둘은 DC미니의 개발자인 만큼 악몽이 어떻게 전파되는지와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히무로는 타고난 개발자인 토키타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토키타는 개발에 여러 제약 조건과 안전장치가 붙는 현실과 다른 꿈의 세계가 가진 확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악몽의 일부로 녹아들게 된다.
미마는 자신이 목표하고 있던 바와 현실이 다른 상황으로 인해서, 바이러스 악몽의 피해자들은 꿈이 주는 망상의 즐거움으로 인해서 점차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다. 위치를 잃는다는 것은, 곧 이후 나아갈 방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곧 수면제까지 먹어가며 잠에 빠져들기만을 기다리게 되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는 헛소리를 함께 되뇌며 알지 못하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길 잃음을 벗어나는 방법은 단순하다. 자신의 새로운 현재 위치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퍼펙트 블루> 속 미마가 찍은 장면들은, 바꾸어보자면 꿈속의 것, 가상의 것이 된다. 미마는 아이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드라마의 높은 화제성을 이끈 주인공이 되었기도 하다. 미마에게 가해졌던 방송가에서의 압박만큼이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강제했던 팬들의 압박도 그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왔고, 이는 영화 내에서 물리적으로도 표현된다. 양측 모두에서 벗어나 혼자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파프리카>에서 치유된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꿈속을 여행하는 데에 가장 익숙한 주인공인 치바 아츠코 박사 또한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이후에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보다 이입하기 쉬웠던 것은 어렸을 적 꿈을 놓친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후회하는 코나카와 형사이다. 코나카와는 어린 시절 함께 영화감독을 꿈꿨던 친구를 홀로 영화 학교에 보내고 홀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평생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그의 마음속에 남아, 꿈속의 반복되는 장면과 트라우마로 재현된다. 마침내 자신의 꿈을 돌아보며 그 꿈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되었음을 인정했을 때, 악몽에서 벗어난다.
악몽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부수적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영화이다. 코나카와 형사는 모든 일이 마치고 전우가 남긴 편지를 따라 극장으로 향해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다. 함께 영화관에 걸린 감독의 세 작품을 포함해서, 영화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잠깐의 위로를 준다. 동시에 그 끝이 존재하여 관객에게 다시 현실로 돌아갈 출발점이 되어준다. 특히,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며 달릴 때, 콘 사토시의 작품은 현재의 가치를 상기시키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덕분에 바쁜 삶 틈틈이 영화를 욱여넣은 보람으로, 자기 비하와 망상을 벗어날 방법을 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