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한 나에게 주는 휴가
그동안 열심히 쓰고 정리한 글들을 브런치 북 6권으로 마침내 묶어 낸 기념, 제가 따로 하는 사업 프로젝트 하나가 잘 마무리된 기념, 제 생일이 들어있는 달을 기념, 여러 가지 기념할 것들을 종합하여 저는 지난 주말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부산, 혹은 바닷가 마을이 고향인 사람은 아마 이 '바다 고픔'을 이해할 거예요.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을 보면,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도 한강, 더워도 한강, 아침에 일어나 운동할 때도 한강, 슬퍼도 한강을 찾는 것처럼,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놀 때도 바닷가, 데이트할 때도 바닷가, 여름에도 바닷가, 힘들고 슬플 때도 바다 앞으로 갔었습니다.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부산의 청춘들은 젊은 피 모여드는 파티장 바다로 달려가 바다가 연주해 주는 정열의 음률을 배경으로 화려한 청춘의 시간을 만끽하는 법을 배웁니다. 물론 '헌팅', '까데기'를 친답시고 부킹에 목숨 걸고 나이트 오는 인간들처럼 여자들만 찝쩍대며 돌아다니는 날파리 같은 성가신 인간들도 많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첫 미팅도 바닷가에서 했고, 기념일이 있을 때 가족들이 모이는 장소도 주로 바닷가 횟집이었으며, 친구들과 한없이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고 토론했던 장소도 바로 이 바닷가였습니다.
불 멍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물 멍, 특히 바다 멍은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힘든 대자연이 그리는 화려한 서사시입니다. 광대한 하늘을 다 맞비추어 내는 어머니의 품처럼 드넓은 물 품.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까지 사이다 저리 가라 탁 트인 풍경. 야생이 포효하는 듯한 거친 파도, 해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의 신비로운 색 조합이 펼쳐내는 라이브 아트 쇼, 이 바닷가에서 삶의 터전을 찾은 물새를 비롯한 각종 바다 생명체들의 리얼리티 예능,......
물이 때리는 대로 다 맞고 부서져 곱게 얌전해진 모래 위에 앉으면 내 마음도 백사장 몇 만 톤 모래 중 한 알의 유리알이 된 듯 겸허해집니다. 바다의 힘과 아름다움 앞에서 내 영혼을 옥죄던 문제들은 모두 가소로운 돌멩이 조각이 되고, 힘찬 파도를 몇 번 맞다 보면 죄다 부서져 모래로 흩어져 버리는 바다 멍의 힐링.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던 몇 년 간, 저는 너무나 '바다 고픔'에 시달렸었어요. 한강까지 나가보기도 했지만, 한강은 제가 보고 싶은 바다에 비해 너무나 우울한 회색빛 삭막함이었어요. 한강에 위로받으시는 분들껜 죄송합니다. 개취이니 오해 마시길...... 그때 깨달았어요. 나는 어디에 살아도 바다 가까이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다행히 지금 정착한 곳은, 바다와 접한 항구도시이고, 가까이에 해변가 휴양지도 많이 있어, 여차하면 짐 싸서 바다로 휴가를 떠나기 쉬운 곳입니다.
10월부터 다음 해 2월 사이의 바다는 매우 한적해서, 가끔은 내가 이 바닷가 전체를 전세 냈나 싶은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물이 차가워져서 해수욕은 즐길 수 없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먹고 마시고 떠들고 걸으며 인생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가을은 가을 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바다의 맛이 있습니다. 햇살을 탄생시키는 태초의 한 장면 같은 힘찬 아침 바다도, 안개 자욱한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검은 밤 바다도 모두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훌륭한 맛입니다.
바다 내음 가득한 공기를 들이키며 숨을 쉬면, '이거지. 이게 진리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에게는 바다가 비타민, 보약이고, 다시 힘차게 살아갈 힘의 충전소입니다.
이번에도 가서 바다 내음, 바다 공기를 폐부 가득 쟁여왔어요. 이제 또 힘내서 11월을 열심히 뛰어볼까 합니다! 제가 담아온 이 바다 에너지를 글동무 작가님들께도 좀 나눠드리고 싶어서 사진을 올려드리고 글을 썼습니다.